귀농(歸農)정착 사업과 생태적지역공동체운동
이정호(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1. 들어가기
귀농운동의 현 단계는 귀농교육을 넘어서 귀농자 정착에 관한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귀농운동의 특징은 ‘준비과정이 길고, 전환이 전가족적’이라는 것이다.
대략 따져도 약 2-3년의 도시에서의 준비과정과 3-5년의 귀농지에서의 정착과정이 필수적인 과정이며, 젊은이들의 혈기에 바탕한 개인의 결단보다 더 어려운 가족간의 합의절차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하니 귀농정착이라 함은 시간적으로는 장기적으로 지켜볼 일이며, 한 가족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이사를 넘어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 해야 그것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지난함을 수반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지난 10년의 역사속에서 ‘성공적인 귀농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지금쯤 대략 귀농운동의 초창기 사람들이 그려낸 삶의 궤적이 한 순번 돌아간 그 즈음이다. 그래서 그것이 가능했던 조건들에 대한 분석적 접근이 후배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그럴 즈음이기도 한 것이다.
이하에서는 그동안 우리 단체를 비롯한 전국의 지방귀농학교를 추진한 단체들의 경험을 통해 나타났던 실제적으로 귀농을 단행하고, 유지하고, 지속한 예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자 한다. 약간의 교훈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2. 귀농운동의 흐름과 향후 과제
1) 귀농담론(談論)의 사회적 정착과 아직은 먼 대중적 귀농
귀농운동은 교육운동에서부터 시작했다. 교육운동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범적 선례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귀농운동의 단계는 이러한 귀농교육의 사회적 조건들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해 왔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귀농교육의 인프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귀농교육을 진행할 공간과 구조를 갖추는 문제이다. 둘은 귀농교육을 진행할 강사들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셋은 귀농교육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이다.
귀농교육의 하드웨어에 관련하여서는 전국귀농운동본부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그리고 각 지역의 귀농학교를 진행한 단체들의 노력으로 전국적으로 12개의 이론과정과 몇 개의 실습과정을 형성했다.
귀농교육의 강사들을 형성하는 문제도 또한 위의 단체들의 노력으로 그 폭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귀농교육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에서는 현실속에서 단체들의 귀농교육 이외에도,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인터넷을 통한 귀농카페의 활동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귀농교육의 인프라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기관 그리고 이러한 단체들과 인연 있는 우리사회의 지식인 그룹의 역할이 사실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귀농교육은 대중화 이전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왜냐하면 귀농교육이 대중적으로 넓게 퍼지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귀농에 정착한 사람들의 모범적 활동이 병행되어야 하기에 그러하다.
귀농교육이 살아 있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귀농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교육이 귀농교육을 대중화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아직 ‘귀농교육을 받고, 귀농을 단행하고, 귀농지에 정착한 사람들’의 존재는 미미하다. 지금부터 귀농운동은 이 과제를 풀어야 한다.
지난 10년의 역사를 통해 귀농운동의 주체들은 귀농담론을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데는 일정한 성과를 내었다. 이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내재해 있던, 고향과 자연에 대한 그리운 동경을 사회적 흐름으로 만들어가는데 있어 한발짝 진척을 이루어 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제 남겨진 것은 이러한 고향과 자연 그리고 농업에 대한 그리움이 단순히 ‘과거’로의 개별적 회귀가 아니라, 인류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여는 ‘보편성’을 띌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작업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축복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음’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로 남겨둬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아주 소수일지라도 우리의 길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일궈가는 좀 때 이른 주체들임을 자각하고, 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길이다.
2) 귀농지 정착사업의 현황과 과제
지금까지 10년의 귀농운동은 ‘교육운동’의 방식이었다. 그랬기에 ‘교육’이라는 일정한 형식적 절차와 그러한 절차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은 이 땅의 지식인 그룹에 한정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분명 귀농운동의 성과는 있었다. 일단 장기적 관점에서 귀농운동을 진행할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귀농운동의 초동주체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들 초동주체들이 귀농지에 잘 정착하는 문제이다.
귀농운동의 초창기 주체들은 ‘점(點)’이 되는 방식으로 귀농을 단행하는 경향을 가졌다.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점차 뜻 맞는 사람들간의 ‘선(線)’을 형성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도 원래의 지역민과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초창기 불굴의 의지로 산간오지마을로 향했던 귀농선배들의 걸음은 말할 것도 없이 고된 과정을 수반했다.
그래도 귀농운동에 있어서 상징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실상사와 그 유역’에 귀농지를 마련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식구들도, 초창기 지역주민들이 실상사의 사업에 못마땅해 하는 것을 넘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협력을 위한 간담회’와 ‘지역민과의 한마당’ 등 수 많은 문화행사와 소통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단체가 추진하고자 하는 ‘생태적지역공동체’를 위한 노력도 약 7년간의 오랜 기다림과 지켜봄을 통해 비로소 작년부터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우리단체의 경험에 비쳐볼 때, 그리고 몇몇 지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귀농운동의 현단계는 ‘귀농자간의 연대, ‘지역민과의 조화’, ‘지역적 생산협동’, ‘지역형물류센터 및 가공센터 마련’등의 문제로 나아가야 할 시기이다. 이것은 귀농운동이 몇 개의 지역일지라도 ‘면(面)’을 구성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문제이다.
앞에서도 봤듯이 현재 농촌사회에서 지역민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배타성’을 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지역민들의 배타성’을 넘는데 있어서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그것을 해결키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지역민과의 조화’를 위해서는 ‘귀농자간의 연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래야 ‘생산 - 가공 - 유통’에 관한 최소한의 힘이 마련된다. 이를 통해 ‘지역민과의 조화’를 위한 구체적인 매개가 형성되는 것이다.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및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그리고 각 지역의 귀농학교에서는 각기 인연있는 사람들간의 귀농자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네트워크가 각 단체들의 인연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추세에서 몇몇 지역별로 한 단체가 모범지역을 만들면, 각 단체에서는 특정지역의 귀농자들은 특정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에게 귀농자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3. 귀농운동의 사회적 위상과 개인적 전망
1) 귀농운동과 시대정신
(1) 귀농운동의 내부동력(動力)
이 시대의 귀농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귀농에 뜻을 둔 사람들의 주변관계에서도 살필 수 있고, 귀농을 바라보는 지자체나 정부의 태도와 사회적 조류에서도 살필 수 있다. 개인의 안팎을 두루 살폈을 때, 귀농에 대한 꿈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귀농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는 개인은 피곤하다. 이 피곤함을 능히 넘어설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은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삶을 성찰적으로 살아내는 힘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성찰하는 삶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경쟁적이고, 자기욕망 충족적 삶을 살아온 모습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일정한 기간동안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삶의 방식’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은 대단히 지난하다. 지속적으로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시차를 두고 밀려온다. 따라서 이 과정을 함께 꾸려갈 도반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한 개인이 자기성찰을 제대로 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함께 이 일을 도모한다면 이 과정이 그나마 덜 어렵고, 준비의 철저함이 조금 더 훌륭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힘은 ‘사회적 성찰’의 힘이다.
개인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래서 개인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대하여 항시 깨어있게 마련이다. 기왕이면 사회에 기여하는 바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 원한다. 귀농운동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또한 그렇다.
특히 최근 귀농운동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래서 귀농운동의 주체들은 우리시대의 귀농이 과연 어떠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가?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귀농운동의 주체들은 온전히 시대정신을 구성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물어본다.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봤을 때, 아직은 그렇지 못함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성찰하는 힘을 가꾸어 가는 것과 사회적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 귀농운동의 주체들을 통해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우리들의 뜻은 높으나 개인들이 그 뜻을 실현해 갈 수 있도록 성숙하지 못했거나,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진정한 뜻과 의미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거나 하는 것의 어디쯤 우리 귀농운동의 좌표는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2) 귀농운동과 시대적 과제
물론 이 시대의 모든 문제를 귀농운동을 통해 풀 순 없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몇가지 시대적 과제에 대한 귀농운동으로부터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살펴보자.
하나의 메시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평화적 토양을 형성하는 메시지이다.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생태계파괴’와 ‘전쟁위험’으로부터 빗겨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두 가지의 시대적 위기를 반영한다. 현대사회는 인류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직접적 위험이 항상한다는 문제이다.
귀농운동은 이 문제에 대하여 ‘평화적 지속가능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기본토대를 제안하고 있다. ‘유기농업’과 ‘협동적 지역공동체’는 이러한 사회로 향하는 강력한 토양을 형성할수 있는 원천이다. 귀농운동은 이 두 가지 과제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메시지는 실업문제로부터의 해방이다.
사회는 점점 더 1차, 2차, 3차 산업에서 자동화, 기계화의 경향이 높아간다. 대신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구체화 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이 경향은 그대로 적용된다. 성장도 저성장으로 들어섰지만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로 본격 진입한 것이 최근의 경제동향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이 단지 고용이 어려워지는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투자처가 없는 자본이 비생산적인 아파트와 토지투기로 몰려드는 ‘만성적 투기자본주의화’의 단계로 본격화 되어 그것이 국민경제적 어려움으로 구체화되는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 이러한 경향이 이론적 우려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현재진행형’으로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의 구체화가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노동의 유연성’이다. 사회의 가장 아래에서부터 대중들의 삶은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사회의 근본토대를 흔들어서 급기야 전체 국민들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본다.
귀농운동은 이러한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생명산업과 지속가능한 에너지산업’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살려내는 운동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서 우리사회의 토양을 튼튼히 가꾸는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2) 건강하게 성찰하는 삶과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
(1) 귀농운동과 개인의 각성
현대 도시인들에게 있어서 건강하게 살고, 명상하는 삶이 유행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꿈은 실현되기에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웰빙이니, 명상수행이니하는 흐름들이 가지는 요구는 사실 절박하다. 이것은 생명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사회적 표현이다. 내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니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산업도시문명에 대하여 철저히 따르면서 행하는 웰빙과 명상수행을 위한 노력은 며칠의 수련회와 식탁이기주의를 향한 외국산무농약농산물을 찾는 것으로 그치게 된다. 문제는 생명에 대한 문명적 차원의 위협이고, 이를 해결키 위해서는 문명적 차원의 위협요인을 제거해 가야 한다. 그러나 산업도시문명을 철저히 인정하는 개인들은 이러한 생명의 위협에 대한 근원적 원인진단을 하지 않고 현상적인 원인진단에서 머물러 버린다. 그래서 그것의 해법이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 그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적절한 진단을 전제하지 않는 해법은 문제를 풀지 못한다. 다만 문제를 더욱더 꼬이게 만드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건강하게 성찰하는 삶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는 절실하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우리는 지난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것이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통한 문명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2) 귀농과 사회운동의 만남 -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
우리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길을 가는 것에는 기존을 것을 버리는 과감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제시하는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통한 문명의 전환이 이러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능히 넘어설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가지느냐는 것이다. 어떠한 개인도 그것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면 개인적 양보를 위한 결심을 할 여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개인의 합리적인 기회비용을 이끌 수 있는 가치인 것이다.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대략 네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겠다.
첫째, 산업사회문명에 대한 대안의 차원이다.
산업사회는 규모화, 집중화를 통한 독점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사회의 결과는 소수의 독점세력간의 경쟁과 갈등을 불러오고, 이것이 국가간의 경쟁으로 발전한 것이 ‘제국주의적 밀림의 법칙’이며 극적인 표현이 전쟁이다.
경쟁과 갈등을 전제로 한 산업사회의 귀결은 ‘에너지와 식량’을 둘러싼 끝없는 갈등과 전쟁이다. 이를 피할 길은 현재의 문명체계에서는 없다. 현재의 문명체계에 대한 근원적인 대안체계를 모색하는 일은 이 때문에 필요하다. 이러한 대안적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가 자연계와 인간계가 만나는 ‘생명권에 입각한 도농의 상생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를 평화국가로 지켜가기 위한 차원이다.
이 일은 단지 구조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귀농자들이 우리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 항목이다.
우리들이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생산의 협동과 가공협동 그리고 유통협동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체계가 반드시 국제적인 농산물거래시장에게도 능히 대안적이어야 한다. 국제적 농산물시장의 ‘비협동적 생산원리’와 ‘원거리유통’ 그리고 ‘익명의 소비’를 넘어서는 전략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가정책을 통한 국제농산물의 공세로부터 우리 귀농자들을 지켜내는 힘인 것이다.
소지역도농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사회시스템에 대하여 게으름을 피운다면, 우리의 귀농정착도 더딜 것이며, 나아가 귀농운동이 산업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셋째, 자치민주주의를 향한 민주화 운동차원이다.
이것의 맥락성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개혁운동의 한차원 진전의 문제이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운동이 군부독재에 대한 일반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의 단계를 넘어, 계급민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들의 인권과 평화적 공존이 가능성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러한 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형태의 민주적 과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오고 있다. 그것은 자치민주주의를 향한 요구이다. 90년대 중반이후 우리사회 대중들은 ‘통치의 대상’에서 ‘자치의 주체’로 자신의 위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95년 이래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지자체 선거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의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와 표의 향방 그리고 이와는 맥락을 좀 달리하지만 새만금과 핵폐기장을 둘러싼 지자체와 지역주민들간의 불화 등은 지역의 사안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치적 요구가 반영된 중요한 사안들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요구를 ‘생활민주주의운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넷째, 순환적 가치에 대한 개인적 각성의 차원이다.
현대사회의 중요한 화두는 ‘건강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의 조화’이다. 개인의 건강에 대한 문제이던, 경쟁사회에 대한 회의이던 우리의 귀농에 대한 꿈은 이러한 화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귀농에 대하여 진지한 접근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경향은 그렇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가 ‘순환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그것을 진리적 차원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요체이다. 개인의 명상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연과의 전체적 흐름’으로 일관되게 연결하는 경험을 하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개인의 삶이 사회라는 맥락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화되는 과정을 온전히 살피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순환적 가치가 개인적 차원에서 왜곡되었을 때, 대체의학에서는 그것을 병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순환적 가치가 사회적 차원에서 왜곡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이를 병리현상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초입에 우리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러한 공부의 결과가 개인에게 적용된 말이 ‘건강한 삶’과 ‘의미있는 삶’이 아닌가 싶다.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은 이러한 각성된 개인들이 사회를 재구성해 가는 방법론을 상징적으로 개념화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률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가 현실의 상황과 만나서 구체화 될 것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차원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귀농운동은 장기성을 띄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대중화의 전망도 불투명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충분한 숙의는 개인의 귀농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적 전망을 내 올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4. 귀농정착(歸農定着)과 생태적지역공동체운동의 관계성
1) 귀농정착을 위한 몇 가지 유형
그동안 귀농교육과 귀농자 정착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가장 정착률이 좋은 귀농유형이 있다. 몇 가지 유형을 소개하면서 살피기로 한다.
대략 귀농자들이 귀농에 접근하는 유형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하나의 유형이 전원형, 혹은 펜션형 귀농정착유형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략 50대 이후세대가 추구하는 유형이다. 대도시에서 일정 규모의 투자액을 가지고 귀농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우는 가장 쉬울 것 같지만, 사실 귀농단행과 정착에 있어서 그리 큰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살펴보면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접근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문화적 이질감과 고립감을 이겨낼 충분한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 펜션형의 경우를 택할 경우 이것도 자금력과 경영력에 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두 번째의 유형은 운둔자형이다. 이는 백두대간의 산중을 찾는 ‘극단적 자연친화적’ 혹은 ‘문명거부형’ 귀농을 단행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는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귀농운동의 초기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오는 유형이기도 하다. 이 유형을 택하는 분들의 경우는 결단력이 꽤 높은 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은 귀농교육을 단계에서 정착까지 기간이 짧고, 귀농 이후 교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후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 번째의 유형은 ‘생태적, 공동체적 귀농’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귀농운동의 초창기에 이런 분들의 경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경향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유형의 경우 대략 3-5년의 귀농준비기간을 설정하여, 다소 여유있게 귀농을 단행할 결심을 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의 귀농정착 방법론에 있어서 집단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2) 귀농정착과 생태적지역공동체운동
지난 경험동안 실재적으로 살펴보면, 귀농정착률이 가장 높은 유형은 생태공동체적 귀농유형이다. 무엇을 가지고 정착률이 높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는 귀농자들이 귀농을 단행한 사례와 그러한 분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정착률에 대하여 살피고자 한다.
지금시기 귀농교육을 받고 귀농을 단행한 사람들의 경우 몇 프로의 분들이 귀농을 단행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통계가 잡혀져 있지는 않다. 다만 약 3년전에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니, 귀농교육을 받고 2년정도 있으니, 약 20%의 이하의 분들이 귀농을 단행했다는 계산을 한적이 있었다.
물론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며, 불교귀농학교가 대략 10명 중 1명이 귀농을 단행했고, 실상사귀농학교 동문이 대략 60%에 육박하는 프로테이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을 역으로 지금까지 불교귀농학교의 졸업생 약 500여명과 실상사 귀농학교 졸업생 약 250여명을 합산하면, 대략 750여명의 20%(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 프로테이지는 높아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인 150분 정도가 귀농을 단행한 것으로 계산할 수 있겠다.
이것을 다시금 현재 실상사 인근 및 넓게는 지리산유역으로까지 확산하여 귀농자들의 정착과 비교해보자. 현재 실상사 인근에 대략 귀농자들이 약 4-50여명이 이사해 왔으며, 실상사 인근의 몇 개면을 제외한 지리산유역으로 확대하면 대략 6-70(우리단체의 실상사작은학교나 한생명 등 여러 인연으로 이사 온 이들을 합하면 대략 200여명에 이르는 분들이 실상사와 지리산유역으로 이사했다고 보고 있다)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해 볼 수 있다.
그동안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통해 귀농을 단행한 분들의 약 50% 가까이의 분들이 실상사 및 지리산유역으로 귀농을 단행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분들의 경우 초창기의 극히 몇 분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많은 분들이 길게는 7년 정착하고 있으며, 대개 2-5년 동안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우리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인연으로 귀농을 단행한 분들의 경우 중에 현재 연락이 가능한 분들의 경우 실상사 이외에 정착한 경우에도 실상사귀농학교를 통한 인연으로 몇몇 분들이 함께 귀농지를 정해서 함께 귀농하거나, 귀농교육동안에 맺은 강사선생님들을 인연으로 하여 주변에 정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부산귀농학교의 경우도 특정한 지역에 자신들의 공동체마을을 구상하고 대상마을과 귀농교육을 꾸준히 연계하는 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홍성지역의 경우를 보면 그동안 홍성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운동의 성과중의 하나로 귀농자들의 귀농지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기존의 생태적 지역공동체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 귀농자들이 꾸준히 깃들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략 두 가지의 장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
하나는 문화적 골립감을 넘을 수 있는 지역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업농을 통하던 ‘반농 - 반업’의 방식을 통하던 지역의 특성에 기반한 사업을 함께 만들고, 생산과 가공을 협동하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곳이기에 그렇다고 보여진다.
5. 생태적지역공동체를 위한 인드라망의 활동
(1) 생태적지역공동체에 대한 구상과 장기비젼
우리단체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산내지역에서 생태적지역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실상사사부대중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 역량을 바탕으로 한생명이 지역민 및 귀농자들과 협력하여 ‘생태적지역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2004년까지를 살피면, 98년 실상사농장 개설, 실상사장기귀농학교 개교, 2000년 작은학교 개교, 2002년 한생명 창립, 2003년 방과후학교 개설, 2004년 탁아방개설 등을 통해 지역사업을 추구해 왔다.
과정을 살피면서 볼 수 있듯이 2004년 이전까지는 지역공동체 형성에 초점이 맞추어지지는 못했다. 수 십년을 내다보면서 지역속에서는 장기적인 사업이고, 범불교적이고 전국적인 성격을 가지는 성격의 일들을 주로 진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11월에 처음으로 실상사 유역주민들과 함께 지은 ‘친환경(인증없음)쌀'을 우리의 회원들에게 팔았다. 이전까지는 주로 실상사농장의 작물을 ’불교생협‘을 통해 간헐적으로 팔았으나 이 사업을 통해 지역민과 한생명이 공동으로 생산한 물품을 회원들에게 팔게 되었던 것이다.
(2) 지역경제공동체에 대한 몇 가지 실천을 위한 향후과제
올해의 경우 두 가지 특징적인 사업이 진행중이다.
첫 번째가 한생명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친환경농업지구’를 위해 ‘영농조합법인’을 추진하는 것이다. 상반기에는 이 논의가 본격화 된 것 같지는 않다. 하반기에는 아마도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불교생협운동본부’에서 한생명을 통해 지역귀농자들과 지역민들의 농산물을 유통할 수 있는 방안을 공동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한생명에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생명사무실 1층에 공동매장을 만들어서 한편으로는 지역민들의 농산물을 합산하는 역할과 유기농산물 가공품을 판매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같은 움직임은 우리단체의 활동이 이제 이념형 지역공동체나 공동보육의 단계를 넘어, 지역적경제공동체를 추구하는 단계로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앞의 두 과제인 ‘친환경농업지구’를 위한 ‘영농조합’이나, 뒤의 한생명의 공동매장설립을 위해서는 지역민과 귀농자간의 경제적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향후 이러한 현실의 요구를 풀기위해서는 ‘경제협력의 방식’이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단체의 각 기관이 참여하여 최소한의 자금을 마련할지 혹은 실상사유역에 경제조합을 준비해야 할지를 모색해야 할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보여진다.
6. 나가기 - 불교계에서 생명운동 확산하기
2005년 상반기에 특징적인 사업중 불교계에 뿌리를 내리고자 한 구체적사업은 ‘친환경공양미운동’이다.
이 사업의 구상은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2005년 1월 7일 ‘봉은사 - 인들라망생명공동체 친환경공양미실천협약식’을 통해 구체화된 사업이다. 지금은 봉은사와 봉원사 그리고 삼보정사가 친환경공양미사업에 동참하고 있으며, 불광사와 금강정사 그리고 석왕사에 사업을 제안해 놓은 상태이다.
친환경공양미운동이 본격화 되기 위해서는 하반기에서부터는 ‘친환경공양미협약식’이라는 대표단위의 행사 이외에도 ‘친환경공양미실천운동’의 방식이 각 사찰의 사부대중들의 서약방식으로 구체화되어 대중운동의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일라고 보고 있다.
불교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두 번째 사업은 ‘인드라망불교대학’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이 사업은 구체적으로는 서울에 ‘인드라망교육센터’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에는 인들라망교육센터의 마련과 더불어 ‘인드라망불교대학’을 위한 구체적 활동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2005년 8월)
이정호(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1. 들어가기
귀농운동의 현 단계는 귀농교육을 넘어서 귀농자 정착에 관한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귀농운동의 특징은 ‘준비과정이 길고, 전환이 전가족적’이라는 것이다.
대략 따져도 약 2-3년의 도시에서의 준비과정과 3-5년의 귀농지에서의 정착과정이 필수적인 과정이며, 젊은이들의 혈기에 바탕한 개인의 결단보다 더 어려운 가족간의 합의절차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하니 귀농정착이라 함은 시간적으로는 장기적으로 지켜볼 일이며, 한 가족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이사를 넘어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 해야 그것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지난함을 수반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지난 10년의 역사속에서 ‘성공적인 귀농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지금쯤 대략 귀농운동의 초창기 사람들이 그려낸 삶의 궤적이 한 순번 돌아간 그 즈음이다. 그래서 그것이 가능했던 조건들에 대한 분석적 접근이 후배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그럴 즈음이기도 한 것이다.
이하에서는 그동안 우리 단체를 비롯한 전국의 지방귀농학교를 추진한 단체들의 경험을 통해 나타났던 실제적으로 귀농을 단행하고, 유지하고, 지속한 예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자 한다. 약간의 교훈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2. 귀농운동의 흐름과 향후 과제
1) 귀농담론(談論)의 사회적 정착과 아직은 먼 대중적 귀농
귀농운동은 교육운동에서부터 시작했다. 교육운동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범적 선례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귀농운동의 단계는 이러한 귀농교육의 사회적 조건들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해 왔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귀농교육의 인프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귀농교육을 진행할 공간과 구조를 갖추는 문제이다. 둘은 귀농교육을 진행할 강사들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셋은 귀농교육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이다.
귀농교육의 하드웨어에 관련하여서는 전국귀농운동본부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그리고 각 지역의 귀농학교를 진행한 단체들의 노력으로 전국적으로 12개의 이론과정과 몇 개의 실습과정을 형성했다.
귀농교육의 강사들을 형성하는 문제도 또한 위의 단체들의 노력으로 그 폭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귀농교육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제에서는 현실속에서 단체들의 귀농교육 이외에도,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인터넷을 통한 귀농카페의 활동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귀농교육의 인프라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기관 그리고 이러한 단체들과 인연 있는 우리사회의 지식인 그룹의 역할이 사실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귀농교육은 대중화 이전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왜냐하면 귀농교육이 대중적으로 넓게 퍼지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귀농에 정착한 사람들의 모범적 활동이 병행되어야 하기에 그러하다.
귀농교육이 살아 있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적으로 귀농지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교육이 귀농교육을 대중화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아직 ‘귀농교육을 받고, 귀농을 단행하고, 귀농지에 정착한 사람들’의 존재는 미미하다. 지금부터 귀농운동은 이 과제를 풀어야 한다.
지난 10년의 역사를 통해 귀농운동의 주체들은 귀농담론을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데는 일정한 성과를 내었다. 이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내재해 있던, 고향과 자연에 대한 그리운 동경을 사회적 흐름으로 만들어가는데 있어 한발짝 진척을 이루어 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제 남겨진 것은 이러한 고향과 자연 그리고 농업에 대한 그리움이 단순히 ‘과거’로의 개별적 회귀가 아니라, 인류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여는 ‘보편성’을 띌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작업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축복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음’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로 남겨둬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아주 소수일지라도 우리의 길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일궈가는 좀 때 이른 주체들임을 자각하고, 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길이다.
2) 귀농지 정착사업의 현황과 과제
지금까지 10년의 귀농운동은 ‘교육운동’의 방식이었다. 그랬기에 ‘교육’이라는 일정한 형식적 절차와 그러한 절차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은 이 땅의 지식인 그룹에 한정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분명 귀농운동의 성과는 있었다. 일단 장기적 관점에서 귀농운동을 진행할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귀농운동의 초동주체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들 초동주체들이 귀농지에 잘 정착하는 문제이다.
귀농운동의 초창기 주체들은 ‘점(點)’이 되는 방식으로 귀농을 단행하는 경향을 가졌다.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점차 뜻 맞는 사람들간의 ‘선(線)’을 형성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도 원래의 지역민과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초창기 불굴의 의지로 산간오지마을로 향했던 귀농선배들의 걸음은 말할 것도 없이 고된 과정을 수반했다.
그래도 귀농운동에 있어서 상징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실상사와 그 유역’에 귀농지를 마련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식구들도, 초창기 지역주민들이 실상사의 사업에 못마땅해 하는 것을 넘기 위해 지역주민들과 ‘협력을 위한 간담회’와 ‘지역민과의 한마당’ 등 수 많은 문화행사와 소통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단체가 추진하고자 하는 ‘생태적지역공동체’를 위한 노력도 약 7년간의 오랜 기다림과 지켜봄을 통해 비로소 작년부터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우리단체의 경험에 비쳐볼 때, 그리고 몇몇 지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귀농운동의 현단계는 ‘귀농자간의 연대, ‘지역민과의 조화’, ‘지역적 생산협동’, ‘지역형물류센터 및 가공센터 마련’등의 문제로 나아가야 할 시기이다. 이것은 귀농운동이 몇 개의 지역일지라도 ‘면(面)’을 구성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문제이다.
앞에서도 봤듯이 현재 농촌사회에서 지역민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배타성’을 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지역민들의 배타성’을 넘는데 있어서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그것을 해결키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지역민과의 조화’를 위해서는 ‘귀농자간의 연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래야 ‘생산 - 가공 - 유통’에 관한 최소한의 힘이 마련된다. 이를 통해 ‘지역민과의 조화’를 위한 구체적인 매개가 형성되는 것이다.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및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그리고 각 지역의 귀농학교에서는 각기 인연있는 사람들간의 귀농자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네트워크가 각 단체들의 인연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추세에서 몇몇 지역별로 한 단체가 모범지역을 만들면, 각 단체에서는 특정지역의 귀농자들은 특정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에게 귀농자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3. 귀농운동의 사회적 위상과 개인적 전망
1) 귀농운동과 시대정신
(1) 귀농운동의 내부동력(動力)
이 시대의 귀농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귀농에 뜻을 둔 사람들의 주변관계에서도 살필 수 있고, 귀농을 바라보는 지자체나 정부의 태도와 사회적 조류에서도 살필 수 있다. 개인의 안팎을 두루 살폈을 때, 귀농에 대한 꿈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귀농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는 개인은 피곤하다. 이 피곤함을 능히 넘어설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은 두 가지 방향에서 나온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삶을 성찰적으로 살아내는 힘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성찰하는 삶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경쟁적이고, 자기욕망 충족적 삶을 살아온 모습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일정한 기간동안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삶의 방식’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은 대단히 지난하다. 지속적으로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시차를 두고 밀려온다. 따라서 이 과정을 함께 꾸려갈 도반의 필요성이 절대적이다. 한 개인이 자기성찰을 제대로 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함께 이 일을 도모한다면 이 과정이 그나마 덜 어렵고, 준비의 철저함이 조금 더 훌륭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힘은 ‘사회적 성찰’의 힘이다.
개인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래서 개인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대하여 항시 깨어있게 마련이다. 기왕이면 사회에 기여하는 바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 원한다. 귀농운동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또한 그렇다.
특히 최근 귀농운동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래서 귀농운동의 주체들은 우리시대의 귀농이 과연 어떠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가?에 대하여 고민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귀농운동의 주체들은 온전히 시대정신을 구성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물어본다.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봤을 때, 아직은 그렇지 못함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성찰하는 힘을 가꾸어 가는 것과 사회적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 귀농운동의 주체들을 통해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우리들의 뜻은 높으나 개인들이 그 뜻을 실현해 갈 수 있도록 성숙하지 못했거나,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진정한 뜻과 의미를 제대로 구성하지 못했거나 하는 것의 어디쯤 우리 귀농운동의 좌표는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2) 귀농운동과 시대적 과제
물론 이 시대의 모든 문제를 귀농운동을 통해 풀 순 없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몇가지 시대적 과제에 대한 귀농운동으로부터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살펴보자.
하나의 메시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평화적 토양을 형성하는 메시지이다.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생태계파괴’와 ‘전쟁위험’으로부터 빗겨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두 가지의 시대적 위기를 반영한다. 현대사회는 인류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직접적 위험이 항상한다는 문제이다.
귀농운동은 이 문제에 대하여 ‘평화적 지속가능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기본토대를 제안하고 있다. ‘유기농업’과 ‘협동적 지역공동체’는 이러한 사회로 향하는 강력한 토양을 형성할수 있는 원천이다. 귀농운동은 이 두 가지 과제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메시지는 실업문제로부터의 해방이다.
사회는 점점 더 1차, 2차, 3차 산업에서 자동화, 기계화의 경향이 높아간다. 대신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구체화 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이 경향은 그대로 적용된다. 성장도 저성장으로 들어섰지만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로 본격 진입한 것이 최근의 경제동향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이 단지 고용이 어려워지는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투자처가 없는 자본이 비생산적인 아파트와 토지투기로 몰려드는 ‘만성적 투기자본주의화’의 단계로 본격화 되어 그것이 국민경제적 어려움으로 구체화되는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 이러한 경향이 이론적 우려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현재진행형’으로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의 구체화가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노동의 유연성’이다. 사회의 가장 아래에서부터 대중들의 삶은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사회의 근본토대를 흔들어서 급기야 전체 국민들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본다.
귀농운동은 이러한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생명산업과 지속가능한 에너지산업’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살려내는 운동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서 우리사회의 토양을 튼튼히 가꾸는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2) 건강하게 성찰하는 삶과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
(1) 귀농운동과 개인의 각성
현대 도시인들에게 있어서 건강하게 살고, 명상하는 삶이 유행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꿈은 실현되기에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웰빙이니, 명상수행이니하는 흐름들이 가지는 요구는 사실 절박하다. 이것은 생명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사회적 표현이다. 내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니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산업도시문명에 대하여 철저히 따르면서 행하는 웰빙과 명상수행을 위한 노력은 며칠의 수련회와 식탁이기주의를 향한 외국산무농약농산물을 찾는 것으로 그치게 된다. 문제는 생명에 대한 문명적 차원의 위협이고, 이를 해결키 위해서는 문명적 차원의 위협요인을 제거해 가야 한다. 그러나 산업도시문명을 철저히 인정하는 개인들은 이러한 생명의 위협에 대한 근원적 원인진단을 하지 않고 현상적인 원인진단에서 머물러 버린다. 그래서 그것의 해법이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 그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적절한 진단을 전제하지 않는 해법은 문제를 풀지 못한다. 다만 문제를 더욱더 꼬이게 만드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건강하게 성찰하는 삶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는 절실하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우리는 지난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것이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통한 문명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2) 귀농과 사회운동의 만남 -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
우리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길을 가는 것에는 기존을 것을 버리는 과감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제시하는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통한 문명의 전환이 이러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능히 넘어설 수 있는 가치와 의미를 가지느냐는 것이다. 어떠한 개인도 그것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면 개인적 양보를 위한 결심을 할 여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개인의 합리적인 기회비용을 이끌 수 있는 가치인 것이다.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을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대략 네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겠다.
첫째, 산업사회문명에 대한 대안의 차원이다.
산업사회는 규모화, 집중화를 통한 독점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사회의 결과는 소수의 독점세력간의 경쟁과 갈등을 불러오고, 이것이 국가간의 경쟁으로 발전한 것이 ‘제국주의적 밀림의 법칙’이며 극적인 표현이 전쟁이다.
경쟁과 갈등을 전제로 한 산업사회의 귀결은 ‘에너지와 식량’을 둘러싼 끝없는 갈등과 전쟁이다. 이를 피할 길은 현재의 문명체계에서는 없다. 현재의 문명체계에 대한 근원적인 대안체계를 모색하는 일은 이 때문에 필요하다. 이러한 대안적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가 자연계와 인간계가 만나는 ‘생명권에 입각한 도농의 상생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를 평화국가로 지켜가기 위한 차원이다.
이 일은 단지 구조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귀농자들이 우리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수 항목이다.
우리들이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생산의 협동과 가공협동 그리고 유통협동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체계가 반드시 국제적인 농산물거래시장에게도 능히 대안적이어야 한다. 국제적 농산물시장의 ‘비협동적 생산원리’와 ‘원거리유통’ 그리고 ‘익명의 소비’를 넘어서는 전략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가정책을 통한 국제농산물의 공세로부터 우리 귀농자들을 지켜내는 힘인 것이다.
소지역도농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사회시스템에 대하여 게으름을 피운다면, 우리의 귀농정착도 더딜 것이며, 나아가 귀농운동이 산업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셋째, 자치민주주의를 향한 민주화 운동차원이다.
이것의 맥락성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개혁운동의 한차원 진전의 문제이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운동이 군부독재에 대한 일반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의 단계를 넘어, 계급민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들의 인권과 평화적 공존이 가능성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러한 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형태의 민주적 과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오고 있다. 그것은 자치민주주의를 향한 요구이다. 90년대 중반이후 우리사회 대중들은 ‘통치의 대상’에서 ‘자치의 주체’로 자신의 위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95년 이래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지자체 선거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의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와 표의 향방 그리고 이와는 맥락을 좀 달리하지만 새만금과 핵폐기장을 둘러싼 지자체와 지역주민들간의 불화 등은 지역의 사안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치적 요구가 반영된 중요한 사안들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요구를 ‘생활민주주의운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넷째, 순환적 가치에 대한 개인적 각성의 차원이다.
현대사회의 중요한 화두는 ‘건강한 삶’과 ‘의미 있는 삶의 조화’이다. 개인의 건강에 대한 문제이던, 경쟁사회에 대한 회의이던 우리의 귀농에 대한 꿈은 이러한 화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귀농에 대하여 진지한 접근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경향은 그렇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가 ‘순환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그것을 진리적 차원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요체이다. 개인의 명상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연과의 전체적 흐름’으로 일관되게 연결하는 경험을 하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개인의 삶이 사회라는 맥락속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화되는 과정을 온전히 살피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순환적 가치가 개인적 차원에서 왜곡되었을 때, 대체의학에서는 그것을 병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순환적 가치가 사회적 차원에서 왜곡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이를 병리현상으로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초입에 우리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러한 공부의 결과가 개인에게 적용된 말이 ‘건강한 삶’과 ‘의미있는 삶’이 아닌가 싶다.
소지역도농공동체운동은 이러한 각성된 개인들이 사회를 재구성해 가는 방법론을 상징적으로 개념화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률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가 현실의 상황과 만나서 구체화 될 것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차원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 귀농운동은 장기성을 띄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대중화의 전망도 불투명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충분한 숙의는 개인의 귀농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적 전망을 내 올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4. 귀농정착(歸農定着)과 생태적지역공동체운동의 관계성
1) 귀농정착을 위한 몇 가지 유형
그동안 귀농교육과 귀농자 정착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가장 정착률이 좋은 귀농유형이 있다. 몇 가지 유형을 소개하면서 살피기로 한다.
대략 귀농자들이 귀농에 접근하는 유형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하나의 유형이 전원형, 혹은 펜션형 귀농정착유형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략 50대 이후세대가 추구하는 유형이다. 대도시에서 일정 규모의 투자액을 가지고 귀농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우는 가장 쉬울 것 같지만, 사실 귀농단행과 정착에 있어서 그리 큰 성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살펴보면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접근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문화적 이질감과 고립감을 이겨낼 충분한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 펜션형의 경우를 택할 경우 이것도 자금력과 경영력에 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두 번째의 유형은 운둔자형이다. 이는 백두대간의 산중을 찾는 ‘극단적 자연친화적’ 혹은 ‘문명거부형’ 귀농을 단행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는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귀농운동의 초기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오는 유형이기도 하다. 이 유형을 택하는 분들의 경우는 결단력이 꽤 높은 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은 귀농교육을 단계에서 정착까지 기간이 짧고, 귀농 이후 교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후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 번째의 유형은 ‘생태적, 공동체적 귀농’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귀농운동의 초창기에 이런 분들의 경우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경향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유형의 경우 대략 3-5년의 귀농준비기간을 설정하여, 다소 여유있게 귀농을 단행할 결심을 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의 귀농정착 방법론에 있어서 집단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2) 귀농정착과 생태적지역공동체운동
지난 경험동안 실재적으로 살펴보면, 귀농정착률이 가장 높은 유형은 생태공동체적 귀농유형이다. 무엇을 가지고 정착률이 높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는 귀농자들이 귀농을 단행한 사례와 그러한 분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정착률에 대하여 살피고자 한다.
지금시기 귀농교육을 받고 귀농을 단행한 사람들의 경우 몇 프로의 분들이 귀농을 단행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통계가 잡혀져 있지는 않다. 다만 약 3년전에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니, 귀농교육을 받고 2년정도 있으니, 약 20%의 이하의 분들이 귀농을 단행했다는 계산을 한적이 있었다.
물론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며, 불교귀농학교가 대략 10명 중 1명이 귀농을 단행했고, 실상사귀농학교 동문이 대략 60%에 육박하는 프로테이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을 역으로 지금까지 불교귀농학교의 졸업생 약 500여명과 실상사 귀농학교 졸업생 약 250여명을 합산하면, 대략 750여명의 20%(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 프로테이지는 높아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인 150분 정도가 귀농을 단행한 것으로 계산할 수 있겠다.
이것을 다시금 현재 실상사 인근 및 넓게는 지리산유역으로까지 확산하여 귀농자들의 정착과 비교해보자. 현재 실상사 인근에 대략 귀농자들이 약 4-50여명이 이사해 왔으며, 실상사 인근의 몇 개면을 제외한 지리산유역으로 확대하면 대략 6-70(우리단체의 실상사작은학교나 한생명 등 여러 인연으로 이사 온 이들을 합하면 대략 200여명에 이르는 분들이 실상사와 지리산유역으로 이사했다고 보고 있다)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해 볼 수 있다.
그동안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통해 귀농을 단행한 분들의 약 50% 가까이의 분들이 실상사 및 지리산유역으로 귀농을 단행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분들의 경우 초창기의 극히 몇 분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많은 분들이 길게는 7년 정착하고 있으며, 대개 2-5년 동안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우리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귀농학교를 인연으로 귀농을 단행한 분들의 경우 중에 현재 연락이 가능한 분들의 경우 실상사 이외에 정착한 경우에도 실상사귀농학교를 통한 인연으로 몇몇 분들이 함께 귀농지를 정해서 함께 귀농하거나, 귀농교육동안에 맺은 강사선생님들을 인연으로 하여 주변에 정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경우에 한정하지 않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부산귀농학교의 경우도 특정한 지역에 자신들의 공동체마을을 구상하고 대상마을과 귀농교육을 꾸준히 연계하는 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홍성지역의 경우를 보면 그동안 홍성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운동의 성과중의 하나로 귀농자들의 귀농지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기존의 생태적 지역공동체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곳에 귀농자들이 꾸준히 깃들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략 두 가지의 장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
하나는 문화적 골립감을 넘을 수 있는 지역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업농을 통하던 ‘반농 - 반업’의 방식을 통하던 지역의 특성에 기반한 사업을 함께 만들고, 생산과 가공을 협동하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곳이기에 그렇다고 보여진다.
5. 생태적지역공동체를 위한 인드라망의 활동
(1) 생태적지역공동체에 대한 구상과 장기비젼
우리단체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산내지역에서 생태적지역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실상사사부대중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 역량을 바탕으로 한생명이 지역민 및 귀농자들과 협력하여 ‘생태적지역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다.
2004년까지를 살피면, 98년 실상사농장 개설, 실상사장기귀농학교 개교, 2000년 작은학교 개교, 2002년 한생명 창립, 2003년 방과후학교 개설, 2004년 탁아방개설 등을 통해 지역사업을 추구해 왔다.
과정을 살피면서 볼 수 있듯이 2004년 이전까지는 지역공동체 형성에 초점이 맞추어지지는 못했다. 수 십년을 내다보면서 지역속에서는 장기적인 사업이고, 범불교적이고 전국적인 성격을 가지는 성격의 일들을 주로 진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11월에 처음으로 실상사 유역주민들과 함께 지은 ‘친환경(인증없음)쌀'을 우리의 회원들에게 팔았다. 이전까지는 주로 실상사농장의 작물을 ’불교생협‘을 통해 간헐적으로 팔았으나 이 사업을 통해 지역민과 한생명이 공동으로 생산한 물품을 회원들에게 팔게 되었던 것이다.
(2) 지역경제공동체에 대한 몇 가지 실천을 위한 향후과제
올해의 경우 두 가지 특징적인 사업이 진행중이다.
첫 번째가 한생명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친환경농업지구’를 위해 ‘영농조합법인’을 추진하는 것이다. 상반기에는 이 논의가 본격화 된 것 같지는 않다. 하반기에는 아마도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불교생협운동본부’에서 한생명을 통해 지역귀농자들과 지역민들의 농산물을 유통할 수 있는 방안을 공동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한생명에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생명사무실 1층에 공동매장을 만들어서 한편으로는 지역민들의 농산물을 합산하는 역할과 유기농산물 가공품을 판매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같은 움직임은 우리단체의 활동이 이제 이념형 지역공동체나 공동보육의 단계를 넘어, 지역적경제공동체를 추구하는 단계로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앞의 두 과제인 ‘친환경농업지구’를 위한 ‘영농조합’이나, 뒤의 한생명의 공동매장설립을 위해서는 지역민과 귀농자간의 경제적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향후 이러한 현실의 요구를 풀기위해서는 ‘경제협력의 방식’이 모색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단체의 각 기관이 참여하여 최소한의 자금을 마련할지 혹은 실상사유역에 경제조합을 준비해야 할지를 모색해야 할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보여진다.
6. 나가기 - 불교계에서 생명운동 확산하기
2005년 상반기에 특징적인 사업중 불교계에 뿌리를 내리고자 한 구체적사업은 ‘친환경공양미운동’이다.
이 사업의 구상은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2005년 1월 7일 ‘봉은사 - 인들라망생명공동체 친환경공양미실천협약식’을 통해 구체화된 사업이다. 지금은 봉은사와 봉원사 그리고 삼보정사가 친환경공양미사업에 동참하고 있으며, 불광사와 금강정사 그리고 석왕사에 사업을 제안해 놓은 상태이다.
친환경공양미운동이 본격화 되기 위해서는 하반기에서부터는 ‘친환경공양미협약식’이라는 대표단위의 행사 이외에도 ‘친환경공양미실천운동’의 방식이 각 사찰의 사부대중들의 서약방식으로 구체화되어 대중운동의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일라고 보고 있다.
불교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두 번째 사업은 ‘인드라망불교대학’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이 사업은 구체적으로는 서울에 ‘인드라망교육센터’를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에는 인들라망교육센터의 마련과 더불어 ‘인드라망불교대학’을 위한 구체적 활동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2005년 8월)
출처 : [Daum우수카페]귀농사모
글쓴이 : 里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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