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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귀농귀촌/귀농귀촌 성공사례

[스크랩] 인생 이모작 짓는 홍순호·전경희 부부

방송국에서 불영사 계곡으로~ 인생 이모작 짓는 홍순호·전경희 부부
“농사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젊은 이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어요”


방송국 PD와 방송작가였던 홍순호·전경희 부부는 10년 전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1리 벽촌에서 땅을 갈기 시작했다. 방송국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벼 한 포기 베어본 적 없었던 이들은 오지 중의 오지, 불영사계곡에서 새 인생을 찾았다. 농사로 귀의해 인생 후반을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 부부가 사는 법.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두메산골, ‘솔마음 농장’ 일구는 귀농 부부
경북 영주와 울진을 잇는 36번 국도가 태백준령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불영사 계곡 최상류. 휴대전화도 먹통이 되어버리는 깊은 산중에 홍순호(57)·전경희(49) 부부의 ‘솔마음 농장’이 있다. 10년 전 서울을 떠나 이곳에 터를 마련한 부부는 3천 평 땅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곳곳에 인동초 향기가 가득하고 질경이와 쑥, 갯버들이 넘실거리는 불영사 계곡. 한나절쯤 쉬어가려 찾아온 도시인에게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여행지이지만 현지 농사꾼에게는 끊임없이 일이 쏟아지는 생활터전이다. 모든 작물을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하는 홍씨 부부는 밭은 물론 도랑, 마당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자란 잡초를 뽑느라 손이 쉴 날이 없다. 어디 잡초뿐이겠는가. 해 뜨며 시작해 해가 져야 끝나는 농사일에 휴일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농촌의 일상. 농기구나 농기계의 간단한 고장은 웬만하면 직접 고치고 축사나 비닐하우스를 짓고 고치는 일도 이 부부 손에서 이루어진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방송국 일을 그만두고 이 두메산골에서 농사꾼으로 거듭난 이유는 뭘까?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78년 당시 동양방송(PD)에 입사한 홍씨는 그야말로 엘리트 방송인이었다. 그 후 언론통폐합이 이루어지며 KBS로 자리를 옮겼고 10년이 넘도록 방송에 몸담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을 쫓아 춤을 추는 방송을 바라보며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방송국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은 방송작가였던 아내를 만나 부부가 된 것이라 말한다. 1992년 KBS를 퇴사해 독립된 프로덕션 회사를 만들고 케이블방송 붐을 타고 기업에 스카우트돼 방송회사 설립의 책임을 맡았지만 IMF를 계기로 방송국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보기로 마음먹는다. PD로 일하며 겪었던 농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슈도 그가 귀농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에 소파동과 쌀 문제를 취재하면서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PD라는 직업의식이었죠. 직장생활에 대한 반항심에 도시를 떠나 먼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남편이 다큐멘터리 촬영차 아프리카에 다녀와 “아프리카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을 때까지만 해도 부인 전경희씨는 정말로 본인들이 귀농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마침 농사를 짓던 친구가 있어 땅과 농사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으며 차근차근 귀농을 준비한 이 부부는 2000년 이곳 불영사 계곡 상류에 정착했다. 물 좋고 경치 좋은 농지 3천 평, 그게 지금의 ‘솔마음 농장’이다.

농사는 부부의 대화
‘솔마음 농장’에 들어서면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부부가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들이 살 집을 짓는 것이었다. 은퇴 후 자연에서의 삶, 여유로운 노후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부부는 입을 모아 값비싼 전원주택은 허상이라고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어요. 귀농하고 싶다면 멋있는 집을 짓는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집에 대한 투자는 귀농자에게 대부분 후유증으로 남거든요.”

농가에서는 도시의 아파트처럼 물건을 정갈하게 정리하며 살 수가 없다. 집보다 밭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농사꾼들에게 값비싼 전원주택은 낭비일 뿐이라는 게 귀농 선배로서 ‘진짜 농사꾼’을 꿈꾸는 귀농 희망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귀농 초기 농기계를 다룰 줄 몰라 직접 논을 갈고 추수 때는 낫으로 벼를 벴다. 서툰 농사일에 고군분투하던 시간이 지나 어느새 귀농 8년 차, 이 부부는 추수를 하며 진짜 농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동네 어르신들이 쉰 살을 코앞에 둔 저한테 ‘새댁’이라고 부르세요. 도시의 50대는 퇴직의 칼날을 이미 맞았을 나이지만 농촌에서는 젊은이로 대우받아요. 동네에 일이 있거나 마을 행사 때, 제일 먼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물을 묻히는 걸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해야 정말 귀농해 산다고 말할 수 있어요.”

최근 퇴직 연령이 낮아지면서 아직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젊은 귀농 희망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녀교육은 역시나 쉽지 않은 문제다. 아들은 대안학교를 나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까닭에 농장에서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고, 늦둥이 딸 인혜는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있다. 울진에 있는 중학교로 하루 왕복 60km를 통학하는 인혜에게 학원이나 과외는 먼 일이다. 부부는 서울에서 명문 학교를 졸업한만큼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한 딸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것이라 믿는다.

“농사는 부부의 대화라고 봐요. 서울에 있을 때는 같은 방송 일을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힘든 일을 잘 모르고 살았어요. 이곳에선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부부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되죠. 물론 부부싸움도 해요. 서울에선 싸우고 서로 안 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선 그럴 수 있나요? 쉽게 화해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매일 아침저녁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함께 눈을 떠 함께 잠드는, 가족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도시를 떠나 비로소 실천하게 됐다. 농사짓는 가족의 행복이다.

이 부부가 말하는 전통적인 귀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귀농을 이상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고 침착하게 설계한다면 분명 귀농은 또 다른 인생의 보람과 기쁨을 오랫동안 향유할 수 있는 길이다. 농사에는 정년이 없기 때문이다.

정리 / 노정연 기자 사진&참고 서적 / 「고마워라 인생아!」(김수종 저, 경향신문사)

출처 : 하늘내린터 귀농귀촌 힐링캠프
글쓴이 : 하늘내린터(김황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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