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홀로 세운 ‘숲속의 왕국’
등록 : 2013.10.02 20:04 수정 : 2013.10.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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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너머 장금옥씨가 인생을 건축하듯 10년째 짓고 손질한 강원 인제군 진동리 연가리 맑은터가 보이고 있다. |
[esc] 살고 싶은 집
인제군 산기슭에 맨손으로 집 짓고 정자, 연못 만들며 완성한 장금옥씨의 민박집 ‘연가리 맑은터’
장금옥(50)씨는 계곡에서 혼자 산다. 오대산 줄기와 방태산 자락이 만나는 곳에 ‘연가리 맑은터’라고 이름 붙인 집을 짓고 산다. 동네 사람들은 그의 집을 “여자 혼자 10년 동안 지은 집”이라고 부른다.
금옥씨가 강원도 인제군 진동2리에 들어온 것은 서른살쯤의 일이다. 사연은 이렇다. 나면서부터 병약했던 그는 늘 두통에 시달렸고, 콩팥엔 석회질이 쌓여 있다고 했다. 시골에서 야생처럼 살고 싶었다. 그럼 병이 나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한테 “나중에 농부와 결혼할까 보다”라고 했더니 놀란 어머니가 서울 사는 큰 이모댁으로 보내버렸다. 금옥씨 나이 17살 때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몸이 아슬아슬하니 마음도 그랬다. 점을 보면 서른도 넘기지 못할 거라고들 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했죠. 이상한 일이에요. 진동리에 오기 전의 인생은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아요. 약초 캐고 농사짓고 집 짓고 꽃 가꾸고 그런 것만이 내 삶의 전부인 거예요.” 다른 행성, 진동리에서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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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자의 벽난로를 고치는 모습. |
처음에 와서 10여년은 계곡 아래 마을에서 살았다. 밭과 집부터 덜컥 사들였지만 귀촌, 귀농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이었다. 여자 혼자 시골 내려와서 산다니까 마을의 궁금증만 무성했다. “드레스에 높은 구두 신고 챙 모자 쓰고 앉아 농삿일을 눈대중으로 배웠죠. 화단을 가꿀 때도 매니큐어 벗겨질세라 장갑도 여러 겹 끼고 그랬죠.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구나 싶어서 다 벗어던졌어요.” 맨손으로 덤벼봤자 여자 혼자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는 어림도 없었다. 민박을 하기 시작했다. 진동리에 민박 하나 없던 시절이라 몇 년 되니까 자리가 잡혔다. 금옥씨가 하던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여행자들 사이에 제법 이름이 났던 숙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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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을 끌어올려 만든 샘터에 고인 물은 다시 계곡으로 돌아간다. |
그렇게 살아도 좋았을 법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절에 다니던 사람이 하소연을 해왔다. 연가리 계곡에 집을 하나 지으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된다며 팔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돌이 깔린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다가 기우뚱하게 짓다 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금옥씨 마음에는 들었다. “빈말처럼 ‘우리 집과 바꿀래요?’ 물었더니 이 집 주인이 ‘좋다 바꾸자’ 하는 거예요. 예전 집에선 생활은 안정됐지만 난 그 집이 싫었어요. 마을의 모든 부엌 창문이 우리 집을 향해 있었거든요. 나만의 세상을 몹시 원했어요. 나만의 왕국을 만들려고 했어요.”
예전 주인이 남긴 기둥에 황토 바르고
바깥벽과 창문 직접 만들었다
틈날 때마다 고치고 넓히며
연못과 별 보는 자리도 완성했다
잘나가던 민박집과 맞바꾼 금옥씨의 왕국 ‘연가리 맑은터’는 그러나 결코 다스리기에 만만하지 않았다. “이삿짐 싸놓고 와서 보니까, 세상에 기둥은 서 있는데 기둥을 떠받치는 기둥보가 없는 거예요. 바닥은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맨흙에 보일러관만 놓여 있었어요.” 할 수 없이 서울 사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달 동안 지붕과 벽을 만들어 1층은 100㎡ 면적의 방 4칸짜리, 2층은 33㎡ 남짓한 이층집으로 완성했다. 예전 집주인이 세워놓은 기둥은 그대로 두고 벽은 황토로 발랐다. 바깥벽은 모두 금옥씨가 직접 만들었다. 집 짓는 사람들은 ‘참 얼기설기 지었다’고 혀를 차지만 금옥씨가 틈날 때마다 고치고 넓혀서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단다. 도우러 왔던 오빠들은 금옥씨가 목수 일은 물론 혼자서 샘터에서 수도를 끌어오는 것을 보며 되레 안심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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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현관 벽에 난 문을 열면 2층으로 통하는 비밀의 계단이 나타난다. |
“전화선도 제가 직접 끌어왔어요. 저한텐 그런 일들이 참 쉽거든요. 축대를 세우고 마당에 물길 내고 꽃이며 나무며 전부 심고 틈만 나면 창문도 만들었죠. 전 여기서 천지창조를 한 거예요. 올봄 어느 날 보니까 집이 너무 커져 있어요. 그제야 내가 미쳤나봐, 뭘 한 거야 싶더라고요.”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은 매년 커간다. 1000㎡ 남짓한 마당에는 죽 둘러가며 ‘봄 정자’ ‘여름 정자’ ‘겨울 정자’라고 이름 붙인 3개의 정자가 있다. 모두 금옥씨가 철마다 만든 것이다. 집 뒤편 3630㎡ 크기의 밭은 말이 텃밭이지 산에다 하는 화전이나 다름없었단다. 지금은 곰취며, 복분자가 가득하다.
지난해엔 집 뒤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2층 베란다에 ‘별 보는 자리’도 만들었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은 베란다에 나란히 누워 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별자리, 그리고 그 사이 별무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별과 불법(佛法)과 자유의 삼위일체가 완벽하다”고 자찬하는 금옥씨 왕국의 밤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칠흑같은 밤이면 마당에는 금옥씨가 키우는 4마리 진돗개들만 어슬렁거린다. 가끔 산까치가 창문을 두드리는 외로운 산골이다. 정작 금옥씨 자신은 1층은 민박집으로 운영하는데다 봄이면 약초 캐고, 여름이면 열매 따고, 가을엔 버섯 캐느라 외로울 틈도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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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리 맑은터를 지키는 울강이와 캔디. |
“인생에서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하던데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산에 가면 갑자기 두려운 일을 만나요. 얼음 낀 바위에서 미끄러져 죽을 뻔한 적도 여러번이고 멧돼지를 만나든 삵쾡이를 만나든 두려운 일은 항상 생겨요. 겨울에 장을 보러 나갔다 홀로 돌아올 때면 고립됐다는 느낌에 가슴에서 눈물이 흐르는 적도 여러번 있었어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극복했죠. 두려움을 극복해보자고 덤볐죠.”
‘죽을 땐 죽은 풀처럼 홀로 누워버리겠다’던 금옥씨가 요즘 벌떡 일어섰다. 동홍천과 양양을 잇는 고속도로가 건설중인데, 그 여파가 연가리에도 몰려왔다. 계곡에 교각을 세우면서 흙탕물이 쓸려내려왔다. 마을에 레미콘 공장까지 들어오면서 진동리가 술렁였다. 98가구 민심은 건설 반대와 찬성 입장으로 갈라졌다. 아이들이 흙탕물 계곡에서 노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혔던 금옥씨는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9월25일, 진동2리 마을 11가구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들은 공사하느라 파헤쳐진 계곡 이야기며 엉성하게 덮인 천막 사이로 시멘트 가루가 흘러나오더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날 마을을 찾은 한 환경운동가는 개발로 물흐름이 바뀐 계곡들과 공사장에서 쓸려내려간 흙 때문에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물고기들 이야기를 전하며 안타까움을 보탰다. 강원도로 내려올 땐 평화롭게 살 생각뿐이었다. 집을 지을 땐 마지막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면 될 줄 알았다. 이젠 다시 마을 일이다.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집 안과 밖을 모두 돌봐야 한다.
인제/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