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글 내 새끼들 맛에 살구마∼” ‘62세 현역’ 달콤한 인생
지난 9일 오후 경북 상주시 모동면 덕곡리 승지농원의 1만6000㎡(약 5000여평) 포도밭. 쏟아지는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하늘 한 귀퉁이에서 밝은 빛이 수줍은 듯 내비쳤다. 비 끝에 은은한 포도향이 피어올라 코끝을 간질인다. 이래서 당 시인 두보는 ‘우읍홍거염염향’(비 맞은 연꽃 홀홀 향피우고)이라고 노래했던가…. 포도밭에 둘러싸인 목조 오두막에서 포도주 한 잔에 갓 구운 감자를 한 입 무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 풍경, 사는 맛 1 - “이 맛에 살구마. 안 그람 뭐할라코 예(여기) 사요.”이 농원을 일구고 있는 최준혁(62)씨가 환하게 웃는다. 최씨는 올해 귀농 12년차. 서울에서 외국계 회사 한국지사장 등을 지내면서 잘 나가다가 지난 1997년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흙으로 돌아왔다.처음부터 농사가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1만6000㎡의 어엿한 농원의 최고경영자(CEO). 무농약, 유기농 인증을 받은 포도와 포도즙을 생산, 서울 주요 유통매체에 납품을 하며 이제 지역 내에서 ‘성공 농민’으로 꼽힌다. 4년 전부터 포도주 개발에 나서 오는 2010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한국 최고의 와이너리 꿈을 키우고 있다.“빨간 포도 심고, 노란 포도도 심고. 마치 내 아이처럼 키웠구마. 이제 친구들 찾아오면 그 아이들 자랑하며 살아요. 친구 아이들과 함께 포도 맛도 보고. 내주에도 동창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지여.”# “내 첫 직업이 사장이구마” 서울의 사장이 부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최씨가 “원래 내 직업이 사장”이라며 웃는다.“내 운이 좋아 지난 1984년 첫 직장으로 당시 에머리(Emery)라는 미국의 국제 항공물류회사 한국법인장이 됐지요. 첫 직업이 사장이던 게야. 미국, 홍콩 등을 주로 돌아다니며 정말 바쁘게 살았죠. 내 소위 잘 나갔구마.”아이로니컬하지만 이 때문에 최씨는 나이 50에 바쁜 경영 활동에서 무조건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내 나이 50에 무조건 어디든 떠나겠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귀농은 아니었고, 그래 47살쯤에 아내에게 세계지도를 보여주며 3년 뒤 어디든 갈 테니 골라보라고 했는데….” 결국 상의 끝에 최씨 부부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상주였다.
#“후회? 성공? 만족이면 족한기라!”가진 게 많을수록 버리기 어려운 법. 아닌 게 아니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곁에 있던 최씨의 아내 김영혜씨가 “돈으로 따지면 아파트 3채는 팔아 내려왔으니…”라며 한마디 거든다. 최씨 역시 귀농을 결심하고 1년여간 관련 교육기관에서 농업기술을 배우고, 1년간 농지를 빌려 실험농사를 짓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첫해 농사에서 투자액의 절반도 못 건졌지. 허허~.” 최씨는 그 뒤에도 애써 유기농법이다 뭐다 해서 키웠는데 그걸 소비자들이 몰라줄 때는 안타까워 어쩔 줄 몰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밝혔다. 결국 지인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판로를 뚫어야 했다고 최씨는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그런데 그런 게 싫지 않더라고.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하얀 서리가 온통 덮여 아름다운 농장에 가냘프게만 보이던 마른 넝쿨이 봄·여름 살찌고 열매를 맺는데…. 그 자식 같은 포도를 친구들에게 매년 선물하며 자랑을 하지여. 잘 나가는 친구 몇 놈 빼고는 요즘은 대부분이 집에서 노는데 내가 부러워 죽겄데여.”
# 풍경, 사는 맛 2 - 최씨와의 대화는 농장 오두막에서 하우스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이어졌다. 최씨의 귀농 자랑도 이어졌다. “우리 딸내미 결혼식에 우리 동기들이 가장 많이 모였구마. 이 시골에서 했는데도 말이여. 모두 놀라길래 다 ‘포도 인심’ 덕이라캤어여.”포도를 위해 하루 종일 틀어놓는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하우스 안은 비로 인해 입구를 막아놓은 탓에 후텁지근했다. “자, 이게 성경에 나오는 포도종이라. 아주 달아예.” 포도를 따려는 순간 달콤한 한약재 냄새가 나는, 검은 액체가 담긴 생수병이 눈에 띄었다. 농약 대신에 잡벌레를 유혹하기 위해 한약재로 포도보다 더 맛있는(?) 퇴충제를 만들었단다.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에게 최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알이 좀 더 굵은 포도를 보여준다.“이건 미국종인데 내 접을 해 키웠구마. 이렇게 계속 포도의 질을 높이고 있어요. 내년부터는 이제 포도주도 본격적으로 생산하려 하고….” 말을 잠시 끊었던 최씨가 “이거 이 나이에 너무 큰돈을 벌면 안 되는데…”라고 크게 웃는다. 이제 62세 최씨의 귀농 꿈이 농익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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