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요나농산>. 이곳의 주인장 김희자 대표는 무농약 표고버섯 생산, 자연 햇볕 아래서 건조시킨 슬라이스 표고버섯인 해표고, 표고버섯분말 등 ‘표고버섯’ 한 가지 품목으로 지금의 5천 평 농장을 일군 억척 여성 농업인이다.
‘내가 키운 표고버섯은 절대 헐값에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느라 값이 떨어질라치면 도매시장에 내놓았던 버섯을 도로 싣고 오는 오기와 자존심은 그동안 김 대표가 이룬 ‘성공’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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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버섯강정, 표고버섯 음식 프랜차이즈 개발, 표고버섯 반찬 메뉴 개발 등 새로운 사업구상에 빠져있는 김 대표는 “도전하고 연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미래’의 성공은 현실이 된다”고 말한다.
마을 구판장 일보며 표고버섯 재배 마음 굳혀
1985년 김 대표는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건강까지 나빠진 서울토박이 남편과 함께 요양차 고향으로 내려왔다. 마침 ‘원예공부’에 빠져있던 남편과 ‘꽃이나 키우며 농촌생활에 적응해보자’ 하는 맘이 전부였다. 마을 이장님이 김 대표에게 “서울에서 공부한 사람이 더 잘할 것”이라며 마을 구판장 운영을 권했다. 구판장에서 일하면 마을 사람들을 다 만나야 하니 위축된 마음에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일을 맡기로 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김 대표는 시골의 생리를 파악하고,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농사의 ‘알짜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는 ‘특권’도 누릴 수 있었다. |
이때 그는 ‘표고버섯’ 재배를 결심했다. 표고버섯은 상품성도 뛰어나지만 재배하는 데 넓은 땅이 필요하지 않고, 주변에 산이 많아 원료(나무) 확보에 어려움이 없으며,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가평’이 판매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동안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이왕이면 ‘무농약’으로 표고버섯을 재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힘든 육체노동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일꾼들 휘어잡아
땅 한 평 가진 것 없이 남의 토지를 빌려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했지만, 그 후 10년간 수익은 없었다. 돈이 생기면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투자로 들어갔다.남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니 억울하고 힘든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시설투자를 해놓으면 땅주인이 ‘나가라’거나 ‘옮겨 달라’고 말하곤 했다. 지역에서 표고버섯을 키우던 분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겠다며 참나무 2만 본(표고버섯 재배용 나무)을 인수할 것을 제의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계약했는데 알고 보니 그 2만 본이 모두 산꼭대기에 있더란다. 일손을 구할 수도 없는 처지라 남편과 둘이 2만 본의 나무를 농장으로 옮겨야 했다.
농사란 게 자본금 없이 처음 자리 잡을 때까지는 남자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김 대표에겐 해당이 안 되는 말이었다. 운동권 출신이었던 남편에 대해 고향 사람들이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내조자가 아닌 사업 파트너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험한 육체노동 앞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표고버섯 재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참나무’를 확보하는 일. 벌채에서부터 드릴로 구멍을 뚫는 종균작업과 자신의 허리보다 굵은 참나무들을 골고루 뒤집어 주는 일도 직접 했다. 지금이야 요령으로 일한다지만 처음엔 몸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하얀 얼굴에 체구도 작은 여성이 척척 일을 해내니 드센 남자 일꾼들도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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