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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문당리 환경농업마을 ⓒ 정기석 | 마을도 많고 이른바 ‘마을 만들기’사업의 종류도 많다.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니, 농촌마을종합개발이니, 농촌건강장수마을이니, 산촌종합개발이니, 오지종합개발이니, 정보화마을이니, 새농어촌건설이니, 전원마을이니, 팜스테이니, 단박에 챙겨 알아내기 쉽지 않다.
농림부, 행자부, 농진청 등 부처마다 내놓은 사업도 비슷하고 예산도 마을마다 나눠먹기 식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시중에서 괜히 떠드는 불평불만이 아니고 농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정부출연연구소에서 나온 소리다.
지금 나라에서 돈을 받아 이른바 ‘마을 만들기’사업을 펼치고 있는 마을이나 지역이 어느덧 80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1,000권역에 6조원을 들인다는 농림부의 마을종합개발사업을 필두로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백억원에 가까운 큰 돈이 마을마다 여러 가지 마을개발사업의 이름으로 뿌려지고 있다.
이렇고 저런, 그게 그것같은 사업들이 한 마을에 집중 중복 지원되기도 한다. 마을 사업을 하겠다고 다투어 나서는 마을마다 구호부터 지나치게 우렁차고 깃발 또한 너무 크고 드높다.
불분명한 지향점, 성숙한 내부 운영주체의 부재 하지만 마을을 개발한다고 할 때, 대개 마을을 개발하는 방법이나 기술을 잘 모르는 마을에 살아가는 주민들은 주인 노릇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주로 객인 정부나 마을을 계획하고 개발하는 업자들이 주도하고 시혜하는 하향식 일방 역학구도이다.
특정한 능력과 제한된 경험만을 가진 일천한 업력의 업자들은 천편일률적 사업계획과 보고서를 속전속결로 찍어내고 있다. 구조적으로 주객이 전도될 수 밖에 없고, 혁신적 성과물이 창조될 수 없는 사업 판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획일적 하드웨어와, 그 속에서 돌아가는 작위적인 소프트웨어 때문에 전국적으로 식상하고 을씨년스러운 마을은 계속 양산되고 있다. 지난 마을개발사업이란 온갖 시행착오와 임상실험의 경연장같은 악순환의 현실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한 마을에서 여러가지 지원 사업과 예산을 과도하게 많이 받았다는 게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계획을 못 세우고, 바람직한 성과물을 생산하지 못하는 업자들의 무능력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과연 그 마을에 그만한 사업규모와 수준을 능히 감당할만한 유능한 사업운영ㆍ관리주체가 있는지이다.
즉 마을마다 마땅한 ‘마을경영체’와 ‘마을CEO’가 있어 지속적이고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마을 만들기 사업’을 경영할 수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마을 만들기의 목표가 체험용 마을인지, 생활용 마을인지, 어떻게ㆍ어디까지 하겠다는 것인지 사업의 명분이나 지향점조차 뚜렷해보이지 않는 마을사업이 적지 않다.
효과적인 해법과 대안은 ‘〈마을〉이란, 〈마을 만들기〉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진지한 고민과 성찰에서 찾기 시작해야 한다. 어쩌면 ‘마을만들기’란 지역개발인 것도 같고 도시계획의 연장인 것도 같다. 어쩌면 구체적인 지역사회운동일 수도 있다.
‘오래된 미래’ 같은 전통마을이 바람직한 마을인 것도 같고, 정주성과 주거편의성이 개선된 현대식 전원마을이 맞는 마을같기도 하다. 물리적인 하드웨어의 공간이 마을계획의 전부인 것도 같고, 문화적인 소프트웨어가 마을운영의 핵심같기도 하다.
‘체험용’ 아닌 삶 꾸려갈 수 있는 ‘생활ㆍ생업용’ 마을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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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진도리 녹색농촌체험마을 ⓒ 정기석 | 본디 ‘마을 만들기’ 또는 ‘마을 가꾸기’는 마을과 마을에 사는 사람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와 깨달음에서 시작해야 맞을 것이다. 마을은 오로지 교육하거나, 정보화하거나, 건축하거나, 조경하거나, 관광하거나, 건설하는 대상이 아니다.
마을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꾸거나 꾸미는 곳’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 사람들이‘삶을 꾸려가는 곳’이다. ‘체험용’ 마을이 아니라, ‘전시용 마을’이 아니라, ‘생활용’마을, ‘생업용’ 마을이어야 한다.
다행히 요즈음 그동안의 비판과 반성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대안 사례들이 눈에 띈다. 농촌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개발하는 상향식ㆍ쌍방향식 마을종합개발사업, 도시 귀농인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합쳐 마을을 기획하고 투자하고 건설하는 경제공동체 전원마을이 좋은 예이다.
마을의 문제를 사람으로부터 풀어보려는 마을사무장 또는 마을간사 제도도 자리잡고 있다. 1차적인 단순 재배농업을 뛰어넘어 2차적인 농식품가공을 아우르고, 마침내 친환경농산물 도농직거래 유통과 농촌어메니티 도농교류를 사업의 중심에 놓으려는 진취적인 마을사업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마을 만들기’는 정부의 지원, 마을 업자의 손발, 마을지도자의 노력에 기대서는 안 된다. 마을 주민 모두의 참여와 자치만이 성공의 열쇠를 쥐어준다. 마을은 누가 만들고 가꿔주는 것이 아니다. 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가 먼저 나서 함께 꾸려가야 한다. ‘마을 가꾸기나 마을 꾸미기’가 아니라 ‘마을 꾸리기’라야 하는 것이다.
┃국정넷포터 정기석(tourmali@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