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러지게도 잘두 놀았네”
정겨운 옛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강화도 용두레마을. 구수한 노랫가락에 맞춰 용두레로 물을 퍼 올리다 보면 시골 마을의 재미와 인심도 함께 따라 올라온다. 날씨가 추워지고 마음도 쓸쓸해지는 늦가을, 용두레마을에서 서해 바다의 아름다움과 우리 전통의 흥겨운 멋에 흠뻑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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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서북쪽 끝, 석모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1리. ‘용두레마을’로 불리는 이 마을 입구에는 넓게 펼쳐진 들판 위에 마을을 상징하는 용두레가 놓여 있다. 나무 기둥 세 개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맞대 서 있고 기둥 중간쯤에는 배 모양의 길쭉한 통나무가 매달려 있다.
용두레는 펌프가 없던 옛날에 물을 퍼 올릴 때 사용하던 기구. 이 마을에선 용두레로 물만 푼 게 아니라 인정도 푸고, 재미도 퍼 올리면서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중요한 도구로 전해 내려왔다. 그런데 기계로 물을 퍼 올리는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용두레가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3년 농촌진흥청의 농촌전통 테마마을과 농협중앙회의 팜스테이마을로 지정되면서 ‘용두레’를 테마로 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한 뒤부터 일 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용두레마을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많고 전통이 잘 보존돼 있어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지요. 일 년에 7000∼8000명 이 마을에 찾아오는데, 한 달 정도의 일정은 늘 잡혀 있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오기 힘들 정도랍니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마을에선 제일 ‘막내’라는 배광혁 이장(56)은 이렇게 말하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물도 푸고, 재미도 푸고, 인정도 푸는 마을
물을 푸는 기구에 불과한 용두레가 마을의 상징이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에는 다른 작은 섬들과 달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 많고 토질도 좋다. 그런데 높은 산이 없는 강화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도 없어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겨울에 눈을 모아 사용했는데, 눈이 녹은 물을 높은 곳에 있는 천수답으로 퍼 올리기 위해 용두레를 쓰기 시작했다. 또 용두레질을 하다가 힘이 들 때면 마을 사람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했다. 강화도에서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용두레를 사용했지만, 넓은 논이 많은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해 용두레질과 노래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는 아직도 용두레질 노래와 시선 뱃노래, 성터 다지기 노래 등 전통놀이가 이어지고 있으며, 기능을 보유한 어르신들이 직접 용두레질과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마을에서는 대대로 용두레질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지요. 열다섯 살까지 용두레로 물을 퍼 올렸으니 1940∼50년대까지 사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두레질 노래는 1986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용두레질 노래로 인천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최성원(76) 할아버지는 용두레질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용두레질은 마을의 체험장인 ‘용두레정(亭)’ 옆에서 직접 해볼 수 있다. 세 개의 기둥에 매달린 배처럼 생긴 통나무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물을 푸면 된다. 또 최성원 할아버지한테서 배우는 용두레질 노래는 흥겹기만 하다. “어야 용두레∼ 물 올라간다. 물줄은 하난데 용두레는 열일세.… 호박 주추에 부연 달구요. 건드러지게도 잘두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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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처럼 흥겨운 전통 체험
이 마을에서는 용두레 외에도 다양한 전통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용두레정 앞 넓은 마당에는 탈곡기와, 낟알을 훑어내는 홀태(그네) 같은 좀처럼 보기 힘든 옛날 농기구들이 놓여 있다. 탈곡기와 홀태를 만져보거나 직접 탈곡을 해봐도 된다. 또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에 앉아 새끼를 꼬아보는 것도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단체 여행객들이라도 오면 마당은 한바탕 잔치라도 치르듯 고소한 냄새와 흥으로 가득 찬다. 한쪽에선 떡메를 친 찰밥이 떡으로 변해가고, 다른 쪽에선 콩고물을 묻힌 떡이 입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맷돌에 콩을 넣고 돌리느라 여념이 없고, 아주머니들은 간 콩으로 만든 뜨끈뜨끈한 두부를 막 떠내고 있다. 또 마당 한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남정네들은 두부와 인절미를 안주로 술판을 벌이고 있다.
먹을거리로 왁자해진 마당이 조용해질 무렵 마당은 다시 황톳빛으로 물든다. 흙과 물과 천이 만나는 천연 염색 체험. 황토물에 천을 넣고 조물조물 주무르던 아이들은 어느새 황토색으로 곱게 물든 손수건을 하나씩 만들어낸다.
논·갯벌·바다에서 만드는 추억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곳에선 농촌의 모든 일상이 놀이가 된다. 농촌의 대표적인 이동 수단인 경운기를 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덜덜거리는 경운기가 누렇게 벼가 익은 논 사이로 지나가자 아이들은 팔을 벌리고 환호한다.
경운기에서 내려 논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오리 농법과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논에서는 우렁이와 메뚜기·개구리·방아깨비를 지천으로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논바닥에 붙어 있는 우렁이를 잡고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비닐봉지 가득 메뚜기와 우렁이를 잡은 아이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경운기에 올라탄다.
누런 들판이 펼쳐진 끝은 갯벌과 바다로 이어지고, 외적의 침입을 관찰하기 위해 만든 초소인‘계룡돈대’도 볼 수 있다. 여름철이나 날씨가 좋을 때에는 경운기를 타고 갯벌까지 가서 조개나 게를 잡기도 한다.
또 밤 줍기와 강화도 특산물인 속노랑고구마 캐기 등 계절에 맞는 다양한 농사체험도 즐길 수 있다. 마을 장터에는 친환경 용두레쌀·속노랑고구마·순무김치·묵가루·밴댕이젓 등 특산물들이 입맛을 당긴다.
용두레마을에서 전통의 흥겨움을 충분히 만끽했다면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 바다로 가보자. 마을에서 5분이면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하고 선착장에서 배로 10여 분이면 석모도에 들어갈 수 있다. 또 마을을 둘러싼 봉화산과 국수산에는 산림욕장이 있고 산 위에 오르면 서해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놀 거리와 볼거리, 배울 거리가 함께 어우러진 용두레마을. 이곳에서 하루만 보내고 나면 용두레질 노래 가사를 이렇게 바꿔 흥얼거리지나 않을까. “건드러지게도 잘두 놀았네.”
문의 011-9038-6753, yongdure.go2vil.org
글·김봉아 기자 | 사진·임승수(사진가)
출처 : 예인의마을
글쓴이 : 청산머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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