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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귀농귀촌/귀농귀촌 성공사례

[스크랩] 전북 변산서 20년째 ‘생태농사’ 정경식씨 (한겨레)

“작물도 궁합맞춰 심으면 더 잘자라요”
[속보, 사회] 2003년 12월 31일 (수) 16:36

[한겨레] 유기농이 희망이다
전북 변산서 20년째 ‘생태농사’ 정경식씨

 

한겨울인데도 마늘밭에 들어서니 마치 이불을 밟은 것처럼 푹신했다. 밭에 덮어놓은 옥수숫대, 볏짚, 콩대 따위를 벗겨내니 흑갈색의 부슬부슬한 흙이 속살을 드러낸다. 밭고랑 여기저기 돋아난 상춧잎이 탐스럽다. “이게 마늘밭 맞나요” 지난 16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서 20년째 유기농을 실천하고 있는 정경식(44)씨를 찾았다. 변산은 우리나라 유기농 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고, 정씨는 이곳에 유기농을 전파한 사람이다. 그는 자급자족을 하는 소농이 공생과 순환의 유기농을 통해 농촌은 물론 도시를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누구나 농촌의 위기를 걱정하지만 그는 “농업이 희망”이라고 믿는다. 그 까닭을 ‘생태 농사꾼’ 정씨로부터 들어보았다.

 

그 첫째가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다. “마늘밭에는 상추뿐 아니라 냉이와 시금치도 자랍니다. 작물 하나만 심는 밭은 없습니다.” 정씨는 현재 밭 2천평에 약 40종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농민운동과 귀농교육 등 바깥 일로 시간을 뺏기기 전에는 100종을 넘겼다. 잡곡으로는 완두콩, 강낭콩, 두부콩, 쥐눈이콩, 검정콩, 줄콩 등 콩류에 녹두, 팥, 수수, 기장, 조를 심고 시금치, 상추, 쑥갓 따위의 옆채류와 딸기, 토마토, 수박, 참외 등도 기른다.

 

유기농 이젠 세계적 흐름·도농연대 건강한 결합 필수

“유기농산물 학교급식 의무화·생명-농민운동 결합 노력을”

 

이 많은 작물들을 ‘궁합’ 맞는 것끼리 섞어 짓는다. 고추를 파먹는 담배나방은 들깨향이 질색이기 때문에 고추는 들깨와 짝이다. 토마토와 대파는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주고 받고, 대파의 진한 향이 해충이 많은 토마토를 지켜주기 때문에 천생연분이다. 유독 진딧물이 많이 꼬이는 배추나 열무밭에는 더 ‘맛 좋은’ 양배추와 케일을 듬성듬성 심어 진딧물을 유인한다. 양분을 많이 빨아들이는 옥수수나 수수밭에는 스스로 질소비료를 만드는 콩을 심고, 해를 좋아하는 옥수수와 그늘을 좋아하는 오이를 함께 심는다.

 

좁은 땅을 자연의 섭리에 맞춰 알뜰하게 관리하는 것은 소농의 오랜 지혜다. 넓은 땅에 돈벌이가 되는 작물 하나만을 심고 농약과 비료 그리고 기계설비를 이용해 대량생산해 시장에 내다 파는 현대농법과는 정반대다. 가격폭등으로 떼돈을 벌 가능성도 없지만 가격폭락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두번째는 돌려짓기다. 격포항을 향한 정씨의 경사진 밭에선 호밀이 푸릇푸릇하다. 내년 3월이면 호밀은 녹비로 쓰기 위해 갈아엎고 감자와 강낭콩을 섞어 심는다. 7월께엔 이들을 거두고 두부콩, 콩나물콩, 검정콩, 수수, 기장을 심어 수확한 뒤 다시 호밀로 돌아온다. 이때 나락이나 열매를 거둔 나머지 부분은 모두 흙에 돌려줘 잡초가 나는 것을 막는 한편 비료가 된다. 또 5~7년마다 휴경으로 땅을 쉬게 한다. 그러나 자연의 순환만으론 부족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생산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결합이 없으면 유기농을 하는 소규모 가족농은 살아남지 못한다.

 

따라서 도농연대는 정씨의 생태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농법이기도 하다. 정씨를 포함한 부안의 유기농 생산농가는 한울공동체를 만들어 벌써 13년째 전주의 소비자 가정과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하고 있다. 현재 20개 생산농가가 1200여 소비자 가구에 농산물을 공급한다. 3년 전부터는 전주 시내에 한울생활협동조합으로 매장을 열었다. 자급자족하고 남은 농산물은 생산자를 믿고 순환농법의 뜻을 함께 하는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내가 먹는 농산물을 누가 생산했는지, 그들의 살림살이가 어떤지를 아는 소비자가 시장이 결정하는 가격이 아닌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정씨는 “더이상 유기농의 자기헌신과 의지에만 내맡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점자본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업농에서 소농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이제 세계적 흐름”이라며 “유기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등의 정책적 배려와 함께 생명운동과 농민운동을 결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안/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정경식씨는 어떤 사람
[속보, 사회] 2003년 12월 31일 (수) 16:27

[한겨레] “정신적 자급자족도 중요”

 

경남 사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경식씨는 1979년 풀무원공동체에 들어가면서 유기농법과 공생과 순환의 농사철학을 배웠다. 그는 원경선 풀무원공동체 창립자와 오재길 정농회 고문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1983년 풀무원공동체에서 만나 결혼한 전명순(47)씨와 함께 농기구와 쌀 한 가마, 가축 몇 마리를 데리고 변산으로 가 본격적인 유기농 실천에 나섰다.

처음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정씨 부부는 이웃으로부터 미친사람 취급을 받았고 두 번이나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죽으로 끼니를 떼우며 재배한 농작물이 병해충 피해를 입을 땐 ‘내 살점을 갉아먹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고, 정성껏 기른 무농약 토마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토마토를 이고 골목골목 다니다가 지쳐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 아내를 보고는 세상을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땅은 생명력을 되찾았고 주변 농민들도 하나둘 유기농의 길에 동참하게 됐다. 유기농이 돈 많은 사람을 위한 사치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란 설득도 힘을 얻었다. 지난해 그는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행사를 이끌었다. 그의 집에는 귀농을 하거나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400~500명이나 찾아온다.

그는 2천평 밭농사로 식량을 자급하고 약 1천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그는 “농부는 적어도 자기 것 말고도 비농가 한 가정은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아가 정신적 자급자족도 중요하다. “땅을 사랑하고 생명을 정성껏 돌보며 그걸 먹을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그는 2000년 낸 책 <21세기 희망은 농에 있다>에서 강조한다.

 

조홍섭 기자

 

■ '귀농운동 8년' 결산‥“젊은 인력 200만 귀농 필요”

농업의 미래를 살릴 소농은 고령화한 영세농이 아니다.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귀농운동이 유기농업을 하는 가족형 소농을 배출하는 주 통로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지난 11일 ‘귀농운동 8년, 돌아보기와 내다보기’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귀농운동본부 성여경 사무처장은 “지난 8년 동안 3500여명이 각종 귀농학교 프로그램을 이수했고 이 가운데 13~15%가 귀농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한 기에 50명이 교육을 받으면 그 중 10명쯤이 2~3년 안에 귀농하고 여기서 1명쯤은 귀농에 실패해 도시로 돌아온다. 반면 구제금융사태 때 무작정 귀농한 사람들의 90% 이상은 도시로 돌아왔다. 이는 철저한 준비가 귀농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귀농자들이 많은 곳은 전북 무주, 충남 홍성, 경북 상주, 경남 합천, 강원 화천 등이다. 무주에서는 변산처럼 가족형 소농들이 유기농을 하면서 도농직거래를 하고 있고, 홍성군 문당리에서는 오리농법을 기반으로 생태공동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 전북 남원군 산내면 실상사 주변에서는 귀농자 30가구가 지역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은 “농촌과 농업을 되살리려면 장기적으로 적어도 200만명 이상의 젊은 인력이 귀농해야 한다”며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 한겨레(http://www.hani.co.kr)

출처 : 오두막 마을
글쓴이 : 오두막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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