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땅과 집은 사지 않으려고 했는데, 처음 농사를 배운 곳이라 애착이 갔어요. 그리고 땅 사는 것은 큰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농협에서 돈을 빌려 그 땅을 샀다. 고향 합천까지는 30분 거리. 외동아들인 정씨가 농사를 짓는다는 말에 부모님 반대는 무척 심했다고. 그런데 나중엔 홀로 남은 어머니께서 고향의 논을 팔아 농협 빚을 갚아줄 정도로 농사짓는 아들을 인정해 주었다고 정씨는 말한다.
정씨는 귀농 7년차다.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말은 하지만 지난해까지 고생도 많았다. 특히 태풍 피해로 어려운 일이 많았다. 6년 농사에 4번 피해를 겪었으니, 거의 해마다 피해를 겼은 셈. 지난해에는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배 100상자도 못땄다. 한 해 인건비, 생활비로 진 빚만 2000만원 이상 되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히 버텨왔다. 이곳은 9월까지 태풍이 온다. 횟수도 잦고 강도도 세서 남부는 과일농사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아내 박수미(36)씨는 올해도 태풍 피해가 있으면 이곳을 나간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용케도 올해는 태풍 피해가 없었다. 그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하지 않고 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절반도 못 딴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안 된다고 말렸다. 적게 주면 적게 따지만 병은 잘 오지 않는다. 돼지똥을 좀 넣긴 했지만 올해는 날씨가 너무 좋아, 다른 관행농보다 2~3개는 더 땄다. 마이너스 통장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배 7000평. 이중에는 매실이 1500평 있는데 매실 규모를 늘여갈 생각이다. 자급하는 논농사 800평도 있다. 올해 전체 7000만원 정도 소득을 올렸다. 전량 생협연대로 나간다. 그는 자연의학에 관심이 많다. 녹색대학 자연의학과에 2년째 수학 중이다. 자연의학을 공부하면서 '내 몸 살리기'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공부하다보니 과일에 생명력이 얼마나 충만한지 손만 가까이 대면 안다. 모든 물질에는 전자파가 있어서 파동이 균일하면 생명력이 가득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추로 물질의 파동을 검사하는데 물질 파동이 자신의 몸을 통해 추에 전달되는 것이다. 자신의 배는 100점 만점에 90점은 나오고 성장촉진제인 지베렐린 처리한 배는 50점 이하로 나온다고. 부산에 있는 대학교 두레패 사물놀이 선배들에게 자주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장구치던 부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처음에는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다. 부산을 떠난 적이 없었던 부인에게 시골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 설득해 이곳으로 왔지만 마음고생, 몸 고생이 왜 없었을까. 여든 가깝게 사신 노모를 모시며 고부간 갈등도 많았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다가 산이나 들에서 나는 산나물, 약초를 캐다 팔아서 생활하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어머니는 오랫동안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절약해 많은 돈을 저축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돈 쓸 줄 몰랐던 어머니는 아내가 물건 산 것 갖고도 못마땅해 하셨다. 제사 때 고기도 약초와 바꿀 정도였으니. 3년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평생 번 돈을 정씨가 땅 사는데 밑천으로 남기고 가셨다. 폐교된 입석초등학교를 개조해 산청교육청에서 산청선비학당을 만들었는데 그가 관리를 맡기로 하고, 학교 관사를 빌려 그의 가족이 살고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집 앞에 잘 자리잡고 있고 아이들 병제(7), 재훈(4)이의 놀이터로 쓰는 큰 운동장이 아이들 가슴을 넓혀줄 것만 같다. 정씨는 아이들에게 꼭 '사람살? 공부를 시킬 생각이다. 먹는 것을 꼭 자신의 손으로 가꾸고,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며, 형편이 되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하고 싶은 것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그의 교육관이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의 병과 마음을 고치는 것을 결합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아픈 사람들이 여기 와서 먹고 지내면서 몸도 나아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보는 것이다. 그는 요즘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 무료 진료를 다닌다. 자연의학으로 배운 것들을 써먹으면서 할머니들의 말 벗이 되어주니 모두들 반가워하신다. 그는 올해 농약을 딱 한 번 쳤다. 봉지 씌우기 전에 살균제를 한 번 주었는데 그것도 동종요법으로, 페트병에 여러 차례 반복해서 물에 묽게 희석해 두드려 50병을 만들어 오랫동안 쓰고 있다. 1년에 농약값이 3만원 정도 밖에 안 든다고. 그는 농관원을 통해 저농약 인증을 받았다. 가급적 농약을 안 치고 농사를 지으려고 지금 시험재배 중이다. 그는 '안 하고 안 주기' 농법이라며 웃는다. 흑성병도 동종요법으로 묽게 해서 잡았다. 엽면시비는 아예 잘 안 한다. 나무를 믿고 맡겨둔다. 동네에서 생선 부산물을 얻어다가 설탕과 섞어 생선액비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1~2번 뿌려주거나 계란 껍질과 식초를 섞어 천연칼슘을 만들어 뿌려주기도 했다. 돈 주고 사서 해 본 적은 없다. 무봉지 재배 시험도 하고 있다. 올배나 원앙배는 무봉지로 가능할 것 같다. 봄 내내 쑥이 무성하게 자란다. 올해 할머니들을 모아 쑥을 뜯게 했는데 쑥 소득이 500만 원이 넘었다. 앞으로 민들레를 뜯어 약으로 팔고 잡초를 소득원으로 개발할 생각을 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가르쳐준 산야초 지식이 이제 그에게 큰 소득원이 될 줄이야. 봄이 되면 생협 조합원들과 나물뜯기 축제도 열 계획이다. 도라지와 쑥처럼 비오나 눈오나 상관없는 산야초 농사를 짓고 싶단다. 올해 처음 배 밭에 2월 전까지 300평에 2톤 정도 소똥, 돼지똥을 넣어주었다. 풀은 부직포를 깔아 어느 정도 자라면 반대편으로 부직포를 뒤집어주기도 한다. 예취기로 깎다보면 풀이 막 도망가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아 가급적 깎는 것을 1번 정도로 줄였다. 정지, 전정은 사람으로 치면 건강하게 살라고 운동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방식대로 햇빛 잘 보고 바람 잘 통하게 한다. 겨울 한 달 동안 부부 노동력으로만 가지치기를 한다. 100그루 정도 있는 매실은 유기재배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 청벌레 종류가 많이 번져 애를 먹었는데, 거의 손으로 털어서 잡았다. 올해 잎살림 2호를 썼는데 효과가 있었다. 매실은 일찍 수확하므로 태풍 피해도 없고 항생제 대용이나 약용으로 많이 쓸 수 있어서 재배면적을 늘여갈 생각이다. 그는 친구들과 농사에 이력이 붙으면 선돌마을 환경농업연구회 같은 것을 꾸려 갈 생각이다. 공동생산하고 공동납품하는 단계까지 생각하고 있다. 올해 이곳에 정부 자금 2억을 지원 받았다. 지금 한창 저장고, 작업장, 퇴비장, 미생물배양기, 가공공장으로 쓸 공간을 마련하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요즘 미생물에 관심이 많은데 미생물배양기가 들어오면 많은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농사를 짓다보니 생각이 많이 단순해진다고 한다. 내일 일은 아침에 눈 떠서 생각하자는 주의. 가끔 부인은 뭐 이런 농부가 있냐고 핀잔을 주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그는 농사가 한없이 사람을 편하게 하고 좋다고 말한다. 산, 하늘, 땅 보고 사는 게 너무 좋다고 하는 그는 늘 아침을 기분 좋게 맞는다. 상쾌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니 아침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7년 동안 땅에 몸을 단련시킨 결과로 가뿐하고 달콤한 이 기분을 그는 만끽한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와 그의 가족은 집 앞 느티나무처럼 오래 지날수록 더욱 그늘이 넓어지는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 앞에 펼쳐진 시간들이 그렇고 앞으로 자연에 대해 쏟아놓는 그의 관심사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늘 따뜻하게 눈길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김선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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