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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내린터의 정신세계/원장 농촌사랑 칼럼

[스크랩] 버림받은 식량보복.<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

2008년 3월 4일 (화) 09:11   연합뉴스

<연합칼럼> 버림받은 식량의 '보복'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비교우위론자들은 주장한다. 외국과 가격비교해 열위의 재화를 포기하고, 우위의 상품에 주력하는 게 국가경제에 좋다고. 비교우위론은 늘 옳을까? 모든 재화에 무차별적으로 비교우위론을 적용해도 좋을까?

한국경제정책의 입안ㆍ추진자들은 비교우위론을 신봉해왔다. 사회적 약자가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해 더욱 그랬다. 외국의 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게 결국 국가경제에 보탬이 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공산품을 파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일견 옳은 주장같다. 소비자 주권 차원에서도 값싸고 질좋은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자는 견해가 그럴 듯하다. 특히 단기적 관점에서 말이다. 그 '덕분'일까? 전체 식량의 자급률은 해마다 뚝뚝 떨어져 현재 28%까지 내려왔다.

우리 농촌은 지금 사멸상태에 빠져 있다. 비교열위 작물은 이미 농밭에서 사라졌다. 밀, 콩, 옥수수, 면화 등은 찾기 힘든 희귀 농작물이 돼버렸다. 대신 항구마다 수입곡물이 넘쳐난다. 그나마 목숨이 붙어 있는 작물은 쌀밖에 없다.

농촌의 보호막은 하나둘 제거돼 이젠 무장해제 상태다. '당당히' 외국 식량과 경쟁하라는 다그침만 요란하다. 농부들은 기존의 논밭농사가 여의치 않자 비닐하우스와 축산에 손을 댔다. 하지만 이 역시 빚과 시름만 늘려준 채 별무소용이다. 물론 그 책임은 '경쟁력없는' 농민이 져야 한다.

농업은 갈수록 천덕꾸러기 신세다. 농촌이 비어가는 건 당연하다. 아무 시골마을에라도 한번 가보라. 설명이 필요없는 상황임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농사짓던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 밑바닥을 형성하고, 농토에는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서거나 골프장이 조성됐다. 지난 10년간 사라진 농지가 여의도 면적의 170배다.

선진국치고 한국처럼 식량을 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 쌀은 뺀 한국의 식량 자급도는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말자. 고작 5%다. 식량 전쟁이 터지면 꼼짝없이 손을 들 판이다. 농토를 도시로 바꾸긴 쉬워도 도시를 농토로 돌리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최근 식료품비가 급등해 사회적 불안감이 일고 있다. 자장면 값이 껑충 뛰고, 두부 값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는다. 라면과 밀가루같은 식량의 사재기 현상도 생겼다. 이는 국제 곡물류 가격이 근래들어 폭등한 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

곡물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과 중국이다. 세계식량시장을 틀어쥔 미국은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옥수수를 대거 투입하면서 곡물값 상승을 주도했다. 옥수수가 인간의 식량이 아닌 자동차의 연료로 둔갑한 것이다. 중국 등 후발국의 경제급성장에 따라 음식패턴이 서구화해 육류소비가 급증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육류생산은 곡물사료의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곡물시장이 요동치면 자급률이 낮은 한국과 같은 나라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의 사재기 현상은 이런 공포감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비교우위론을 곡물류까지 무리하게 적용시킨 정책당국의 단견에 대한 식량의 보복이랄까.

'자유경쟁'이 지상과제처럼 여겨지는 세태다. 경쟁력 없는 건 과감히 도태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사회적 강자와 부자들이 주로 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유경쟁으로 손해를 보는 계층은 사회적 약자들이기 마련이다.

솔직히 말하자. 대책없는 자유경쟁은 약자에게 조용히 죽으라는 소리다. 한국경제의 근간치고 자유경쟁으로 성장한 게 있는가? 철강 산업이 됐든, 자동차 산업이 됐든 유치기에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보호에 힘입어 강자가 됐다. 이들이 핵심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희생된 산업은 무엇이고 계층은 누구였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맨땅에서 맨몸으로 경쟁하라고 이들에게 요구한다. 실로 가혹하다.

생명선인 농업기반을 포기하는 정책은 무모하고 위험하다. 사멸의 길을 걷는 우리 농촌은 한미FTA로 넉다운 지경에 처했다. 이 역시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결과다. 선진국들이 비교우위론을 몰라서 식량산업을 육성ㆍ보호하고 있진 않을 거다. 주식의 안정적 자급기반이 없는 선진국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가 됐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이는 흘러간 구닥다리 슬로건에 불과할까? 산업사회와 지식ㆍ정보사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 농경사회의 유물일 뿐일까? 인간은 일단 먹어야 산다. 생명의 근간인 식량의 소중함에 다시 눈을 뜨자. 그리고 우리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자. 식량안보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출처 : 귀농 사랑방
글쓴이 : 되지(이장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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