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춘 대표는 다도를 지키며 녹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임인 ‘차인회’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었다.
한복 입고 예법 갖추고 녹차를 마시는 시간은 여유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의문이 생겼다. ‘꼭 이렇게 마셔야 하는 걸까. 몸에 좋은
녹차를 보리차 마시듯 늘 마실 수는 없을까. 쉽게 일상에서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녹차를 찾지
않을까.’
‘다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티백이나 캔음료 만큼 경망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귀찮다는 이유로 ‘도’를 팽개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인회 활동을 하던 임 대표의 생각은 다도와 거리가 먼 것이었고 반발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몸에 좋은 차를 더 많은 사람들이 마실 수 있도록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도’에서
멀어지는 것일까.
임 대표는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먹을 것, 입을 것 등에 대해 높은 기준을 부여하기 시작한
트렌드 변화를 읽었다. 녹차는 가능성이 충분한 식품이고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녹차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건강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내다봤고 녹차 캔음료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판단했다.
녹차를 캔에 담는다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캔 음료 기술이 필요했다. 일본최고의 차음료 전문업체인 이토엔을 방문했다. 이토엔을
견학한 후 경남대학교 기계공학과와 캔 음료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설과 기술을 연구했다. 임 대표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1994년
보성녹차영농조합법인 설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가졌다. 1995년에는 농림부로부터 녹차 가공사업 계획을 승인받고 공장을 준공했다. 이듬해인1996년
2월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하고 ‘보성녹차 캔’을 출시했다.
의욕적으로 녹차 캔음료를 출시했지만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유통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고심하던 끝에 방법을 찾았다. 대기업 음료 브랜드에 납품하는
방법이었다.
1996년 CJ(당시 제일제당)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으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예티녹차’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어 동원산업과도 ‘동원녹차’ OEM 계약을 맺었다. OEM 계약은 줄을 이었다. 남양유업‘어린잎녹차’, 해태음료 ‘티녹차’,
정식품‘예설차’등도 생산하게 됐다.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 보성녹차’도 이 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OEM 계약을 끝내고 직접 생산하기 시작한
브랜드도 있지만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15종 가량의 녹차 음료 브랜드 중 절반 가까운 녹차음료를 보성녹차영농조합이 생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