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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귀농귀촌/귀농귀촌 성공사례

[스크랩] 귀농성공사례11/토익 대신 선택한 귀농에서 `진실한 삶`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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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익 대신 선택한 귀농에서 ‘진실한 삶’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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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동갑내기인 박종관 ․ 김현 부부는 올해로 귀농 9년째를 맞는다. 그러니까 27세에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부분의 귀농인들이 도시생활을 하다가 농촌으로 돌아오는 것과 달리 종관씨는 친구들이 취업을 위해 토익과 씨름을 할 때 귀농을 위해 경북 김천의 유기농 포도 농가를 찾아갔다.


 “20대 중반 쯤에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던 종관 씨의 20대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살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목회자가 되면 해결될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제도권화 되어 있는 그곳엔 그가 원하는 삶이 없었다. 그는 농촌에서땅을 일구는 삶에서 답을 찾았다.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갊이 ‘진실한 삶’에 가장 가까워 보였다. 대학 친구였던 아내 현 씨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눈빛 선한 이 남자의 결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종관 씨가 대학을 졸업한 두 달 만인 1998년 4월에 결혼을 했다. 결혼한 다음 날 신혼여행 가방 대신 귀농 가방을 챙겨 김천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 경험이나 연고, 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었던 저희 부부에겐

밑바닥부터 서서히 정착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머슴살이 3년’ 이라는 표현으로 그때를 회상하는 종관 씨는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약골인 그에게 난생 처음 하는 농사는 만만치 않았다. 첫 해에는 포도 농가의 일을 거들며 기술을 배웠다. 둘째 해에는 땅 600평을 빌려 틈틈이 자기 밭을 일구기 시작했고, 셋째 해에는 50대 50의 비중으로 배움과 살아갈수록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선택과 결정이 있을 뿐이고 어느 삶에나 나름대로의 의미와 정당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끔은 내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그저 세상살이에 맞춰가고 있었을 때 ‘진실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20대를 보낸 박종관 ․ 김현 부부와의 만남은 그런 되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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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졸업과 함께 귀농을 한 박종관, 김현 부부는 올해로 귀농 9년째를 맞았다. 여섯 살 난 딸아이와 함께 상주에서 무농약으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2. 닭과 개와 고양이와 그리고 쪽밭의 각종 푸성귀와 함께 향유가 자란다.
3. 향유네 집이라고 적힌 빨간 이름표가 걸려 있다. 맘 놓고 농사지을 땅 마련이 우선이라 아직은 낡은 농가를 빌려 살고 있다.>

 

살아갈수록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선택과 결정이 있을 뿐이고 어느 삶에나 나름대로의 의미와 정당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끔은 내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그저 세상살이에 맞춰가고 있었을 때 ‘진실한 삶’에 대한 고민으로 20대를 보낸 박종관 ․ 김현 부부와의 만남은 그런 되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했다.


박종관 ★ 김현 부부(경북 상주시 모동면)

  자기 농사를 병행했다.

 “3년이니까 대학원 진학했다는 기분으로 일을 배웠다”고 종관 씨는 말한다.


"농사는 단순히 업(業)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더라"

 

4년째 되던 해에 상주로 독립을 해 나왔다. 이때를 부부는 귀농 1차 분기점으로 정의한다.

무엇보다 이 해를 잊을 수 없는 것은 딸 향유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딸의 탄생은 농촌에서의 삶에 또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살수록 농촌은 생태와 연계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현 씨는 의료, 교육, 문화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이는 딸 향유를 통해 구체화되더라고 한다. 농사는 단순히 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여섯 살 향유는 말간 얼굴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꼬꼬 닭이 꼬꼬! 하면 알을 낳을 거에요” 라며 방금 낳은 달걀을 꺼내며 눈빗을 반짝였다. ‘따끈따근한 달걀의 촉감을 체험한 도시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향유는 쪼르르 달려 마당 한쪽에 있는 파며 시금치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익은 봄빛을 받아 물줄기에 작은 무지개가 피었다. 귀농 9년째인 올해를 부부는 두 번째 분기점으로 정리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게 콤플렉스가 되더군요.”

 

경제적 기반 없이 시작하다보니 땅을 빌릴 수 있는 곳을 찾아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러다 올해 제 이름으로 된 땅을 마련했다. 게다가 마을 어른들이 새마을지도자라는 감투도 씌어 주었다.

 

종관 씨는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얻었다며 싱긋 웃는다. 30년 동안 갚아야 될 정책자금을 융자받아 마련한 땅이지만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마을의 궂은일은 도맡아 해야 할 직책이지만 비로소 마을 어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포도나무에 새순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었다. 귀농 2차 분기점에 들어선 부부의 희망도 함게 돋아나고 있다. 제법 숙달된 무농약 포도 재배 기술은 더 많은 생산량으로 돌아올 것이고, 알음알음 개척한 판로는 인터넷에 마련한 향유네 집(www.향유.net)을 통해 더욱 단단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부부는 귀농의 가장 큰 수확을 ‘사람과의 만남’ 이라 말했다.

 

진실한 삶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농촌에서의 삶은 생태와 교육과 의료와문화로 넓어져 드디어 사람과의 관계로 뻗어가고 있다.

 

 

<4. 포도나무에 새순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다. 이제부터 부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야한다.
5. 땅의 기운을 받고 싱싱하게 커가는 향유를 볼 때마다 농촌에서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6. 지난 겨울에 부부는 대금과 해금을 배웠다. 아직은 어설픈 수준이라고 수줍어 하는 김현 씨. 올 겨울을 지나 내년 봄이면 제법 솜씨 자랑을 할 듯하다.>

 

 ● 글․이선아 기자 ●사진․김천용 기자

 

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제갈공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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