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대안적 삶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기획 특집을 진행한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모색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제 절박한 시대적 문제가 되었다.
기획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단체를 만나보았고 그들이 내린 진단은 대체로 비슷했다. 개발과 경제성장이라는 근대적 패러다임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것,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탐욕이 멈추지 않는 이상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었다. 그들이 찾은 대안들 역시 그 같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구를 절멸시킬 수 있는 환경 재앙에 대비하여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소농 중심의 유기농 농업체계를 세우며 무엇보다 위기를 직시하고 즉각 할 수 있는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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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보은군 마로면 선애빌 생태공동체 전경. |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따지자면 우리나라가 그 어느 나라보다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우선 식량자급률이 25% 남짓인 나라는 환경재앙 앞에 제일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석유화학농법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농업체계에서 점차 고갈되어 가는 석유는 농사의 전멸로 이어질 것이고, 만약 식량 수입이 막히는 사태가 온다면 그 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자급률 70%인 북한에서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이미 오일피크가 지났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수출로 먹고산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수출품들이 거의 모두 석유제품이다. 석유공급이 어려워지면 한 순간에 붕괴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딛고 선 취약한 현실이다.
머지않아서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탈출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토를 찾아 헤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세상이 아비규환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파국이 임박해 있는 이 때 우리는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남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헛된 몸부림을 그만두고 가난하고 소박한 삶이 더 좋다는 가치의 전환만이 조금 더 인류의 미래를 연장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먼저 깨달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애빌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예언자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선애빌을 아시나요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선애빌이 갑자기 언론과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텔레비전 예능프로에서 그 마을을 찾아가고부터다. 전기 없이 지내는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후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하지만 선애빌은 그 이전부터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던 곳이었다. 예능 프로 이전에도 EBS 다큐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그 때 제목이 ‘행복의 조건, 선애 마을’이었다. 과연 어떤 마을이기에 행복의 조건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까.
선애(仙愛)란 ‘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하늘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 혹은 명상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선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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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담근 각종 장들이 담겨있는 장독대. |
선애빌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에 자리잡은 생태마을의 이름이다. 27세대 60여 명의 귀농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곳 외에도 충주, 전남 영암, 나주, 고흥 등 6개 선애빌 마을이 더 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생기고 규모가 큰 마을이 보은 선애빌이다. 구성원들은 기본적으로 환경, 에너지 문제, 인간성 회복 문제에 대한 극복방안과 실천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도시에서 명상동호회를 함께 하던 회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도시에서 약사, 법무사, 교사, 만화가, 화가, 세무공무원, 작가, 환경운동가, 목수,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인생의 후반기를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 사람들이다. 후반기라고 해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40대 초중반이 대부분이고 그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기로 다짐을 두었다.
이들은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친환경적이고 생태순환적인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전기 없는 날의 행복, 지구힐링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 개최를 통해 환경과 에너지의 소중함을 깨우치며 새로운 문화, 신재생에너지 자립, 생태 마을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선애빌이 시작된 이유와 연혁을 잠시 살펴보면, 명상학교 ‘수선재’에서 함께 하면서 환경, 인간성 회복 문제 등 의견을 나누다 몇몇이 생태마을을 함께 만들어 살자고 의기투합이 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적당한 마을 터를 찾아다니다가 보은군에서 땅을 발견했다. 배산임수의 지형에 청정하고 쾌적한 자연환경, 그리고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게 장점이었다.
곧바로 돈을 모아 2만 평의 땅을 사고 20채 넘는 집을 한꺼번에 지은 후 마을을 꾸리기까지 1년이 조금 더 걸렸다. 그야말로 마을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 셈이었다. 땅을 구입하고 부지를 조성하는 게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집은 22평 정도로 똑같이 지었다. 재활용 생태건축, 초저에너지 패시브하우스 방식을 기반으로 빗물 저장 및 정수장치, 화목보일러를 채택했다. 공동 생태화장실은 집밖에 두었고 농사는 처음부터 자급자족 정도를 목표로 했다. 7천평 정도의 농지에서 전담팀을 꾸려서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데 보통 하루에 네 시간 정도를 농사일에 투입한다. 나머지 시간 중에 네 시간은 명상과 걷기, 네 시간은 각자 취미 생활을 한다.
선애빌이 자랑하는 빗물 저장 및 정수 장치, 왕겨와 효소를 이용한 자연 발효 화장실은 선애빌의 에너지기술담당인 김재훈 박사가 직접 개발, 제작했다. 후손들을 위해 맑은 물을 아껴 쓰자는 게 하나의 모토인 선애빌은 지난해에 빗물과 생태화장실로 180만 리터의 물을 절약했다. 생수 값으로 치면 18억 원쯤이 되니까 60 명 정도의 주민이 후손들에게 남긴 유산치고 적다고 할 수는 없겠다.
공동체로 살아가기
사실 공동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아주 오래 준비를 하고 연륜이 쌓여도 깨지기 쉽다. 선애빌은 단기간에 만들어지고 빠르게 자리를 잡아서 거의 신화로 통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구성원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생각과 삶의 자세를 일치해나간 과정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개인이 아닌 공동체 생활을 꿈꾸었다. 개인의 생활은 존중하되 많은 부분을 공동으로 해결한다. 공동 주방에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세탁기와 냉장고도 공동으로 사용한다. 먹는 물은 지하수고 생활용수는 저장해두었던 빗물이다. 천연재료로 비누와 세제 등을 직접 만들고 집이 작은 대신 생활용품을 공동 창고에 보관한다. 그런 생활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 내면에는 지구가 처한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예민한 감수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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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넒은 밭가의 작은 고인돌은 영원한 휴식인 죽음의 장소다. |
선애빌에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아니, 스스로 세운 학교에서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을 해결한다. 외부에서 유학 온 아이도 있다. 학생들 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교육을 받는다. 자체 문화팀이 있어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 선애빌 학교의 교육철학은 한마디로 ‘마을이 학교다’라는 개념이다.
전임교사들은 5명 정도지만 저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인 마을 주민들이 언제든 교사나 스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배움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각종 프로젝트를 비롯해 개인 연구과제, 예체능, 보충 교과 등은 개인들의 흥미와 소질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하다.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마을의 어른들이 안내자 역할로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이다.
물론 선애빌 주민들도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쌀, 부식 등 기본적인 식량은 자급자족 농사로 감당한다지만 책도 사고, 세금도 내고, 차도 타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친환경 산야초 효소나 야채스프 등 농식품을 가공해 판매한다. 금산에는 별도로 흑삼공장도 운영한다. 마을 안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에 기울지는 않는다. 함께 도우며 느슨하게 일할 수 있는 정도로 일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수입은 각자 또는 공동으로 한 것 등으로 구분해 소득을 나눈다. 개인 소득 중 10만 원 정도를 매달 마을에 기부해서 식비 등 공동 운영비로 충당한다. 한마디로 ‘나누고 비우자’는 게 선애빌 주민들의 기본적인 경제철학이다. 이렇게 마을 살림은 교육 사업과 강연, 명상 스테이, 생태 체험 운영 등을 수익원으로 꾸려간다.
선애빌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 철학과 사회과학, 종교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책들을 읽고 토론한다. 전기 없는 마을이라는 아이디어도 그렇게 나왔다. 물론 이들은 전기를 사용한다. 태양열 조리기 등을 갖추고 최소한의 난방을 하는 패시브 하우스라 전기 사용량은 매우 적지만 매월 한전에 전기료를 납부한다. 그런데 책 읽고 토론하는 중에 전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주제가 나왔단다.
그래서 토론하고 사흘 동안 보일러도, 전기도 쓰지 않는 생활을 직접 해보았다. 그리고 마을을 공개하면서 전기 없는 체험마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체험객들은 주민들과 함께 3일 동안 밥도 불 때서 해먹고 호롱불을 켜고 그렇게 생활한다. 이제 선애빌은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역시 선애빌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생태공동체다. 주민들이 실천하고 있는 유기농법으로 작물 기르기, 생태건축에서 생활하기. 대체에너지(태양열, 지열 등)와 대체 동력 사용, 빗물과 오수의 활용 등은 세계 모든 생태공동체에서 공통으로 실천하는 항목들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하루 네 시간의 명상을 권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선애빌이 영성을 중시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명상과 쉼 없는 공부를 통해 죽음의 문제까지 성찰한다. 자연과 함께 살다가 죽은 후에도 화장하여 흔적 없이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것에 구성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으며 마을 안에는 그런 인생의 마지막을 위한 간소한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는 않다. 공동체의 지침 중 하나가 ‘인간과 우주의 창조 목적은 진화이며 지구는 학교임을 인식한다’인 정도로 신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공동체 밖의 일반인들과의 소통도 활발하다. 정착 4년 만에 새로운 녹색농촌체험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비 2억원을 들여 사무실, 도서관, 힐링 카페 등을 갖춘 다목적 체험관을 완공하여 농촌의 자연경관과 친환경 농업 등 도시민의 다양한 수요에 맞는 휴양 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처음에 젊은 사람들의 집단 이주에 의심의 눈초리까지 보내던 관에서도 선애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충북환경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새로운 유형의 귀농귀촌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두에서 꺼낸 석유 이야기는 지구가 위기에 처했으며 특히 절대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더욱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석유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석유에 기반했던 경제와 사회, 문화 등도 바뀌어야만 한다. 바뀌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급속한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사태가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는 지금 시급히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며 지구별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선애빌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최용탁 소설가 kp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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