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산골마을, 女傑(여걸)이장이 확 바꿨다
47가구 사는 양양군 원일전리, 외부 지원금 58억원 끌어와… 활력 넘치는 마을로
진금수 이장과 주민들 합심, 정부·지자체 지원사업 유치
"녹색 생태마을 만들었더니 체험객·주민소득 늘었어요"
'2008년 7억원, 2009년 58억원.'기업체의 매출액이 아니라 주민 113명의 강원도 한 산골마을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마을개발을 위해 받은 사업 지원금이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원일전리. 양양군 시내에서 차로 20여분 가야 나오는 조용한 마을이다. 47가구 113명의 주민은 대부분 벼농사를 짓거나 가을철 송이를 채취해 생계를 꾸린다. 가구당 소득이 1000만~3000만원에 불과한 전형적 농산촌 마을이다.
- ▲ 각종 개발사업을 유치하면서 마을 발전을 진두지휘하는 진금수(하얀 옷) 이장이 주민들과 공동으로 조성한 메밀밭을 가꾸고 있다. /김지환 객원기자 nrd1944@chosun.com
1993년 감을 얼려 추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아이스 감'을 전국 처음으로 만들어 인기를 끌었지만, 상품화와 체계적 개발을 못 해 결국 경북 청도군에 선수를 뺏겼다. 2002년엔 태풍 '루사'로 이 일대가 초토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2008년부터 마을에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성 이장 진금수(57)씨가 주민들 추천으로 선출돼 정부와 자치단체의 각종 지원 사업을 유치하면서부터다.
주민들과 진 이장은 합심해 2008년 4월 농림수산식품부의 녹색농촌 체험마을에 선정됐다. 정부로부터 받은 2억원의 사업비 중 2000만원은 마을 장기발전 컨설팅에 쓰고, 나머지 1억8000만원으로는 짚 공예와 옥수수찰떡 체험을 할 수 있는 녹색 체험관을 지었다.
그해 11월에는 강원도가 주관하는 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에 선정됐다. 새농어촌건설운동은 강원도가 농어촌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원일전리에 5억원의 사업비가 지원됐다. 진 이장과 주민들은 이 돈으로 마을 공동 부지를 매입해 전통농촌 체험이 가능한 팬션인 '금풀애체험관'을 조성했다. 앞서 지은 녹색체험관과 나란히 배치해 도시 관광객들이 숙식과 놀이를 모두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원일전리는 산림청이 주관하는 산촌생태마을에 응모했고 작년 11월 대상마을로 선정됐다. 산촌생태마을은 산촌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활용해 주민들 소득을 높이고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원일전리는 14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진 이장과 주민들은 이 중 6억원을 들여 마을에 산마늘 재배단지와 가공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나머지 8억원은 체험관 주변에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산림휴양관도 지을 계획이다.
원일전리의 경사(慶事)는 작년 12월에 또 한 번 생겼다. 인근 어성전 1·2리, 법수치리 등과 함께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4개 마을에 지원되는 사업비만 44억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원일전리는 이 사업비를 체험관 주변 잔디 운동장 정비, 사계절 푸른 나무 울타리 설치, 물놀이 수변공원 조성, 마을 산책로 정비 등에 쓴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각종 사업 유치로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작년부터는 여름철 피서객을 위한 옥수수 축제도 개최하는 등 농촌 체험 프로그램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이들 사업 유치와 추진 과정이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마을로 선정돼 받은 돈으로 신축하려던 금풀애체험관이 사업 초기 문제가 생겼다. 작년 4월 체험관을 짓기로 계약했던 업체 대표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부도가 났다. 당시 마을에서는 업체에 건축비 일부로 5000만원을 건넸지만, 공사는 터파기만 이뤄진 상태였다. 주민들과 밤낮으로 업체를 찾아가고 법률가의 도움도 받았지만 5000만원을 돌려받을 길이 없었다. 결국 마을총회가 열렸고 마을발전기금에서 5000만원을 채우는 것으로 정리됐다. 진 이장은 "당시엔 정말 죽고 싶었다"며 "다행히 주민들이 이해해 주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진 이장 본인도 판막이 없어 대동맥으로 빠져나가야 할 혈액이 심장으로 역류하는 심장 대동맥 폐쇄 부전증을 않고 있어 무리한 활동을 해서는 안 되는 환자다. 30여 년 전 알게 된 병이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수십 년째 하루 세 번 약을 먹으며 생활한다.
누워 있으면 더 아프다는 진 이장은 "병원에서는 중환자라 하지만 활동하면 오히려 아픈 줄 모른다"며 "마을을 양분하고 있는 남대천 상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출렁다리를 만드는 게 꿈"이라 했다.
진 이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 박상희(68)씨는 "좀 쉬라고 말려도 말을 안 듣고 이제는 두 손 다 들었다"며 "그래도 건강이 최고인데…"라고 걱정했다.
양양군 농업정책과 박대혁 주무관은 "마을이 변화하면서 체험객이 늘어 주민 소득 증대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이장과 주민들의 단합이 조용한 농촌마을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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