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운 농법 / 김광화(전북 무주, 농부)
<<무경운, 몸에 맞는 농법>>
기계를 쓰지 않고 농사를 한다는 것은 몸이 중심이 된다. 사람 몸이 다르듯, 무경운 농법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자기 몸만큼 할 수 있고, 몸에 맞게 할 수 있다. 여기 이야기는 내 경험이고, 내 몸에 맞는 이야기다. 필요한 만큼 영감을 얻으면 좋겠다. 같은 사람이라도 해마다 몸이 달라지듯 거기에 따라 농사도 바뀐다. 또한 논밭도 달라진다. 그런 변화가 신선하지 않은가.
<뼈와 살이 다시 태어나야>
농사를 하기 전에 자연농법에 관한 책을 보았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처음부터 무경운을 하려했다. 하지만 5월부터 풀이 여기저기 올라오다가, 6월이 넘어가고 장마가 지니, 두 손을 들었다. 농사나 자연에 대해 잘 모르고, 책만 믿고 덤빈 셈이다. 골병들 뻔했다. 아직 무경운으로 농사할 몸이 아니었다. 뼈와 살이 다시 태어나야 했다. 관리기랑 경운기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무경운에 대한 꿈은 버릴 수가 없었다. 꿈같은 농사가 아닌가. 기계를 쓰면서도 무경운 면적을 조금씩 넓혀 갔다. 처음에는 밭 30평 정도로 시작. 지금은 밭 1000평을 무경운으로 하고, 논 네 다랑이 가운데 한 다랑이 150평을 무경운으로 한다.
기계를 쓰지 않는다고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무경운 농법은 몇 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 가장 오래된 농법이다. 그만큼 축적된 지혜가 많다. 수 천 년 기술과 지혜가 온전히 어우러지는 게 무경운이다. 세계화로 외국 경험도 온전히 이어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자연에 가깝다. 수렵채집 다음이 바로 무경운 농법이다. 무경운에 맛을 들일수록 자연을 잘 알게 된다. 끝으로, 몸으로 하는 농사이니, 누구나 할 수 있다. 밥숟가락을 들 힘만 있다면 가능하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곧잘 한다. 대신 농사 규모를 크게 할 수 없다. 자급자족의 뜻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무경운 밭>
-준비 단계
땅이란 참 넓고, 깊다. 거름을 웬 만큼 뿌려도 표가 잘 안 난다. 그리고 땅이란 하루아침에 살아나는 게 아니다. 무경운 준비 단계로 기계 힘을 빌려 땅에 유기물을 넣어준다. 거친 유기물(산에 검불, 썩은 나뭇가지, 볏짚, 왕겨 따위)과 잘 삭은 거름(퇴비, 왕겨 훈탄, 발효 시킨 쌀겨와 깻묵 따위)을 넣고 흙이랑 잘 섞어 준다. 이렇게 3-4년 꾸준히 땅을 바꾸어 간다.
그 다음부터는 땅을 갈지 않고 그 위에 유기물을 계속 덮어준다. 유기물로는 농사 부산물은 물론 검불, 밭 둘레 풀, 냇가의 갈대 따위를 깔아준다. 해가 갈수록 밭은 놀랍게 달라진다. 폭신폭신 이불 같다. 가뭄도 잘 안 탄다. 밭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이렇게 밭이 달라지면 웬만한 곡식은 심기만 해도 잘 자란다.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고추나 토마토, 배추 따위 몇몇 작물만 상태에 따라 심을 자리에 거름을 추가로 넣기도 하고, 액비로 웃거름으로 주기도 한다.
-지렁이, 두더지 그리고 뱀
흙에 유기물이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렁이다. 어디서 오는지, 굵기는 연필만하고, 길이는 한 자 가량 되는 지렁이도 생긴다. 땅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맛이다.
밭에 지렁이가 늘어나면 먹이 사슬에 따라 곧 바로 두더지가 생긴다. 두더지는 땅을 정말 잘 간다. 알맞게 갈고, 두루두루 간다. 기계처럼 땅을 뒤집지 않고, 땅 속에서만 가니 토양 유실도 거의 없다. 흙이 부드러워져, 고구마나 감자를 호미 없이 손만으로도 캘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도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곡식이 어릴 때는 두더지 피해가 크다. 특히 무나 당근 같은 곡식은 어릴 때 두더지가 지나가면 거의 다 죽는다. 그러나 길게 보면, 두둑 안으로 생긴 굴을 무너뜨리지 않는 게 곡식 피해가 적다. 넓은 굴이 생기면 나름대로 평화가 생긴다. 먹이 사슬에 마지막은 뱀이다. 두더지 구멍 위로 머리를 처든 뱀을 보았다. 뱀이 좋아 보이기는 정말 처음이다. 고구마 심을 때 두둑 안에서 뱀 알을 보기도 한다.
-거세미
진짜 골칫거리는 바로 거세미. 거세미는 밤나방과의 애벌레로 거무스름한 빛깔에 연필 굵기 만하고 길이는 2-3센티다. 낮에는 흙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곡식을 해친다. 줄기를 똑똑 끊어 먹는다. 감자는 싹이 여러 개 나니 피해가 덜 하지만, 고추나 검은 콩은 아주 치명적이다. 거세미 피해가 심해 별의별 방법을 다 해 봤다. 쌀겨를 묻거나 설탕물을 그릇에 담아 유인도 해 보았다. 달걀 껍데기를 부수어 묻어도 보았다. 이런 방식들이 안 하는 거보다는 낫지만 큰 효과는 없다. 넓은 밭에 다 하기도 어렵다. 넉넉히 심고, 모종을 여분으로 남긴다. 그때그때 거세미를 잡아주는 수밖에 없다. 거세미가 먹은 자리는 구멍이 있다. 구멍 따라 둘레를 조금만 파 보면 거세미가 있다. 무경운 3-4년째가 가장 심한 것 같다.
- ‘선택적’ 풀 뽑기
피복(멀칭)이 두터우면 풀이 덜 나고, 풀 뽑기도 쉽다. 땅이 부드럽고, 씨앗이 땅 속이 아닌 거죽에서 발아하기에 잘 뽑힌다. 마늘밭은 무경운 7년째인데 정말이지, 풀 뽑을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넓은 밭을 고루 덮어주는 게 쉽지 않다. 또, 해와 비 그리고 지렁이에 의해 피복이 해마다 많이 삭아버리므로 계속 덮어 주어야 한다. 농사 규모를 ‘알맞게’ 하지 않는 한, 풀 뽑기는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풀 뽑기는 가을걷이를 끝낸 초겨울부터 시작한다. 제때 뽑지 않으면 봄에 급속히 번진다. 겨울 풀 뽑기는 나물하기다. 광대나물, 점나도나물, 망초 따위는 싱싱한 겨울 나물이 된다. 풀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풀이 미워지지 않는다.
봄이 되면 빈 밭이라도 틈틈이 김매기를 해 두어야 한다. 곡식의 싹이 틀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자연에서는 빈 밭이 없다. 늘, 풀이나 나무가 자란다. 그 틈을 비집고 씨앗을 심으면 싹트는 게 드물다. 싹이 트더라도 풀에 치여 녹아버리기 쉽다. ‘헛 김매기’는 풀이 어릴 때 미리미리 잡으면 어렵지 않다.
5월초에 심는 곡식이라면, 심기 전까지 ‘헛 김매기’를 두 번 정도 한다. 5월 말이나 6월에 심는 밭이라면 세 번 정도 김매기를 하기도 한다. 때를 놓치면 손 쓰기가 어렵다. 여름이나 가을 김매기는 곡식에 따라, 풀에 따라 다르다. 곡식이 왕성하게 뿌리 뻗을 때는 새로 돋아나는 풀은 힘을 제대로 못쓴다. 또, 늦가을 서리는 풀을 완전히 바꾸어 준다.
김을 매는데 풀을 골라 가면서 뽑는 맛이 있다. 옥수수는 새싹이 날 때, 둘레 풀이 드문 드문 있으면 새 피해가 적다. 옥수수만 놔두고 깨끗이 김을 매면 까치나 비둘기 표적이 된다. 밭 중간 중간에 기르고 싶은 풀이나 곡식은 그냥 둔다. 마늘밭의 달래는 봄에 훌륭한 나물이다. 월동초는 꽃도 좋고, 봄에 먹으면 맛도 좋다. 명아주는 지팡이 재료로 노인네들한테 아주 훌륭한 선물이 된다. 들깨나 기장은 저절로 잘 나고, 잘 자란다. 감자도 지난해 덜 캔 것 가운데 얼지 않은 녀석들이 올라온다.
풀을 선택적으로 뽑듯이 곡식 역시 선택적으로 심고 가꿀 수 있다. 밭 하나에 섞어짓기나 돌려짓기하기가 쉽다. 가을에 시금치, 상추, 월동초를 밭 여기저기 뿌려 두면 이른 봄부터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골칫거리 풀과 나무
풀 뽑기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골칫거리 풀이라면 뿌리로 번지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쇠뜨기는 습한 땅에 잘 자란다. 땅속으로 줄기가 뻗어가며 여기 불쑥 저기 불쑥 올라온다. 뽑아도 다 안 뽑히고, 줄기 중간이 끊기고 만다. 그때그때 잡아 주어야 한다.
더 골치는 띠. 아주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서 땅 속으로 번져간다. 워낙 깊이 뿌리 내리고 힘이 좋아, 곡식은 경쟁이 안 된다. 괭이로 밭 테두리를 잘 단속해주어야 한다. 띠 풀은 두엄더미 위로도 차고 오를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또 하나 어려움은 나무뿌리와 나무다. 밭 둘레에 자라는 나무의 뿌리가 밭으로 야금야금 들어온다. 딸기나무는 밭으로 새순을 뻗고 올라온다. 겨울에 밭 둘레 나뭇가지를 잘라 주고, 밭과 바로 경계 부위는 괭이로 선을 그어주고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수렵 채집을 하지 않는 한,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기도 하다. 밭은 언제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피복이 장애가 되는 경우
무나 당근, 참깨 따위는 피복이 두터우면, 씨앗이 싹이 나서 올라올 때 햇살을 제대로 못 받는다. 그러다 보면 줄기가 길게 웃자란다. 그러다가 비바람이 몰아치면 휘어지거나 부러지기도 한다. 씨앗을 넣을 때 피복을 밀쳐,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또, 싹이 올라오면 북을 잘 주어야 한다.
<무경운 논>
150평정도 논에선 쌀 두 가마니 조금 더 나온다. 나이 들어서는 기계를 쓰기 어렵다고 보고, 노후 준비로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농사’라고 불러 본다.
-준비 단계
가을걷이한 뒤 볏짚이랑 왕겨 따위를 골고루 논에 깐다. 유기물이 햇살과 비에 삭는다. 쌀겨는 봄, 논에 물을 대기 바로 전에 뿌린다. 안 그러면 비둘기나 꿩이 많이 날아온다.
무경운 논은 물관리가 중요하다. 로터리를 안 치기에 물을 효율적으로 대고, 또 빼야한다. 먼저, 논 사방을 돌아가며 배수로를 판다. 폭이 좁고 논이 길면, 20미터 길이쯤 마다 수로를 내 준다. 모내기하기 전에 논둑은 물이 새지 않게 발라 주어야 한다. 논둑 앞쪽을 삽으로 뒤집어 물을 끼얹으며 발로 밟아 곤죽을 만든다. 논둑쪽 수로는 물길을 내면서 바닥을 곤죽이 되게 다져 준다. 볍씨는 쓰러짐을 막기 위해 키가 작은 종자를 쓴다. 논 150평에 600그램이면 충분하다. 모는 못자리에 키우기도 하고, 투모식 모판을 쓰기도 한다.
-모내기 전 풀 잡기
무경운 논에서는 둑새풀이 가장 골치다. 이 풀만 잡으면 농사는 어렵지 않다. 둑새풀은 두해살이로 지난 가을에 싹이 나, 겨울을 난다. 봄이 되면 부쩍부쩍 자란다. 4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 5월말까지 계속된다. 모내기철에 열매가 익어가니, 모가 활착이 잘 안 된다.
땅이 녹는 2월부터 둑새풀을 뽑는다. 아직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기에 시나브로 뽑는다. 배수로를 잘 파두고, 피복이 두터우면 풀이 덜 난다. 논이 축축하면 엄청나게 번져 손쓰기가 어렵다. 둑새풀을 다 뽑은 다음, 물을 잡고, 빈 논에 새끼 오리를 넣는다.
보리랑 이모작으로 한다면 둑새풀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또는 호밀을 뿌리면 뚝새풀보다 먼저 자라고, 높이 자라니 풀 잡기는 어렵지 않겠다. 대신 모내기가 어렵다.
-모내기가 아닌 모심기
써레질 한 논은 손으로도 모내기가 쉽다. 살짝살짝 놓듯이 하면 된다. 하지만 무경운 논은 모를 내는 게 아니라 심기나 꼽기를 한다. 호미로 심는 방법이 있고, 손가락으로 꼽는 방법이 있다.
호미로 심을 때는 밭과 달리 자세가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손가락으로 꼽으면 논바닥이 단단해 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볏짚 피복을 잘 하고, 볏짚에 물이 충분히 스며들면, 볏짚 사이에 모를 끼워 넣는 방법도 있다. 모내기 전에 미리 오리를 넣으면 땅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또, 흙탕물이 볏짚을 눌러주는 효과도 있다.
-모 심고 난 뒤 풀 잡기
다른 논이랑 비슷하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뿌리 내림이 늦다는 점이다. 오리를 넣으려면 보통 논에서는 모내고 열흘이면 되지만, 무경운 논은 20일에서 한 달 정도 지나야 좋다. 그래서 우렁이를 넣는다.
<농사 하나에도 모든 것이>
생산성을 좀 다르게 보고 싶다. 무경운은 농사뿐만 아니라 전체 삶과 맞물려 있다. 의료, 교육, 문화, 예술 따위들과 직접 관련이 있다. ‘전인(全人)의 농사’에 가깝다. 우선 몸으로 하는 농사인 만큼 몸 쓰는 걸 좋아해야 한다. 몸으로 살다 보면, 몸은 몸답고 싶어 한다. 생태농업 이전에 ‘생태 몸’이다. 몸은 고단한 것도 게으른 것도 원하지 않는다. ‘알맞게’ 몸을 움직이면, 일이 운동이자 놀이며 배움이 된다. 우선 건강하니 의료 자급이 된다. 몸이 좋으면 다른 자신감은 저절로 생긴다.
아이들 교육도 쉽다. 돈벌이 따로, 교육 따로가 아니다. 농사와 자연 속에 정말 소중한 배움이 다 있다. 또, 곡식 키우는 것이랑 아이 키우는 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부모가 힘들게 일하면 아이들은 흙을 떠나려고 한다. 무경운은 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귀농이 선택이듯, 무경운은 농사 가운데 또 한번의 선택이다. ‘가장 느림의 농사’이다. 기계를 쓰면 농사일이 빠르다. 그 대신, 기름 냄새에 시끄러운 소음. 다칠 위험도 많다. 돈도 적지 않게 든다. 하지만 논밭을 기면서 하는 농사는 느리다. 느리기에 평화롭다. 사람과 땅 사이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만나는 것이다. 무경운은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 소리도 들린다. 어떨 때는 자신이 내는 숨소리도 듣는다. 명상도 저절로 된다.
또, 느리기에 신비롭다. 해마다 더 신비롭다. 신비로움에 눈을 뜨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문화니 예술 따위들도 자급이 가능해진다. 무경운은 해가 갈수록 흙, 풀, 벌레, 사람이 온전히 어우러진다. 사람도 온몸이 구석구석 깨어난다. 눈만 즐거운 게 아니다. 코도 즐겁고, 혀도 제 철에 제 맛을 제대로 본다. 그러다 보면 잡다한 욕심이 많이 사라진다.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고, 깨우침이 있다. 이 보다 더 나은 소득이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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