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좋아 시작한 전원생활 -
동화속 장난감 같은 흙집 여덞개
2001년, 김명오 이덕례 씨 부부는 흙이 좋아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로 들어 왔습니다. 마침 횡성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김명오 씨가 지금의 다래골 산방을 알게 되면서 아예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마음 따뜻한 자리를 선물하고, 끊임없이 흙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를 지나 새말 나들목에서
평창, 안흥 방면으로 4㎞정도 들어가면 김명오 씨 부부가 직접 지은 황토집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래골 산방'이라고 써 있는
팻말과 키 큰 장승들이 산방 입구부터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집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통나무와
흙을 재료로 만든 황토집이 너와지붕을 얹고 아기자기하게 앉아있습니다.
집 안 곳곳에 쌓여있는 돌탑과 제멋대로 서 있는 장승들, 몇
개씩 포개어 쌓아놓은 항아리, 천천히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나무로 엮어 놓아 시냇물을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그 어느 것 하나도 정겹고
구수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살아서 그런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산방의 주인 부부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주인은 단체손님의 점심식사를 해결해 주기 위해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부엌 안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바깥주인은 음식을 나르고 참숯 바비큐 구울 준비를 합니다.
흙이 좋아 시작한
전원생활 처음 다래골
산방의 명칭은 목천 흙집 연구소였습니다. 지금의 주인인 김명오 씨가 목천 흙집 연구소를 인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반 전의
일입니다.
우천면 근처 리조트에서 레저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던 김 씨는 우연히 목천 흙집 연구소를 알게 됩니다. 그동안
전원생활을 할 만한 부지를 찾고 있었던 터라 이곳은 그의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또 오원리가 도시와 가까우면서 공기 좋고 물이 맑아 시골
정취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늘 흙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었던 김 씨였기에 때마침 인수할 기회가 오자 주저없이 흙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 9백 평의 대지와 흙집 5개 동을
인수하는데는 6억 정도가 들었습니다. 현재 김 씨가 관리하고 있는 땅은 모두 4천 평으로 시유지 땅을 대부 받아서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황토집 5동이 이미 지어져 있었지만 김 씨는 집을 가꾸고, 꾸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황토집을
지어주는 일을 짬짬이 할 정도의 실력이 있는 김 씨는 3개 동을 늘려 현재 8동의 황토집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흙집은 일반 주택처럼 건축이
눈에 보이듯이 지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디디 더딘 날들을 보내야 한 채의 흙집이 완성되기에 정성과 공을 들어야
한다고.
"집은 언제 다 지으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아직도
짓고 있는 중이라며 집은 계속 주인의 손길을 타야 정감 있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집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집 안 곳곳엔 그의 손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너와도 직접 패 지붕으로 올렸고, 장승들도 손수 깎아 만들었습니다. 욕심 많아 보이는 배불뚝이 항아리에 글씨도
썼습니다.
마당 한 쪽엔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손님들의 만찬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겨울에도 실외에서 바비큐
등을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흙집엔 주변 산새를 감상할 수 있는 툇마루도 놓여 있어 옛 정취가 살아납니다. 전체적으로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지어진 황토집과 지붕 역시 원방형으로 얹고 지붕 꼭지엔 장승이나 항아리로 장식을 한 것이 독특하면서
해학적입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고향집 분위기 손님들이 이곳에 찾아 왔을 때, 처음 와 본 집의 느낌이 아니라 시골
고향집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김 씨는 윤택하진 않지만 정이 있는 공간으로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 곳을 찾은 손님들은 이런 산방 주인의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갑니다.
다래골 산방에
가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인들의 정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덕례 씨가 만드는 저녁 식사도 일품입니다. 올갱이 된장국은 옛날
맛이 그대로 담겨져 있고, 산방 주변의 산나물 등으로 만든 반찬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입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오리가
노니는 냇물과 산방 주변은 온통 자연산 먹거리 천지입니다. 산나물이 나는 철에 손님으로 오는 분들은 황토집에서 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물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간다고 이덕례 씨는 말합니다.
아이들이 와도 자연학습이 저절로 되기 때문에 가족들이
머물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다녀간 분들 중에 그나마 가까운 곳에 계신 분들과는 호형호제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래골 예찬론자까지 생겼다며 김 씨는 너털웃음을 터뜨립니다.
산방의 수입도 꽤 많은 편이지만 수입보다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고, 그곳에서 보람을 얻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김명오 씨 부부는 앞으로도 흙과 함께 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합니다.
2. 초보 시골생활의
처녀같은 설레임 - 창고
개조해 살며 전원주택 지을 꿈에 젖어
서울서 애니메이션 사업을 하며 바쁘게 살던 김여아씨가 서울을 떠나 이곳
수동계곡으로 이사를 온 후 매일 설레임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도 감동적이고 밤하늘의 별빛을 이렇듯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아주 큰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방안 가득 밀려드는 개구리 울음소리며 냇가에
나가면 손을 간지럽게 하는 송사리들. 매일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그녀를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전원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곳을 둘러 보았지만 이곳 수동만큼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 산꼭대기 마을의 땅을 구입해 전원주택을 짓기로 했습니다. 땅을 구입하고 전원주택을 설계하면서 서울에 살던 집을 내놓았는데
계획보다 너무 빨리 팔렸습니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까지는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부지와 가까운 이곳 수동면 내방리의 허름한 창고를 세내어
주택으로 개조해 지금 살고 있습니다.
김여아씨는 봄이 한창이던 4월 21일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짐센터 사람 둘과 함께 트럭을 타고
수동계곡을 들어서면서 산이고 들이고 펼쳐지는 봄꽃의 향연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을 지나쳐 트럭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고 그래서 허둥지둥 차를 되돌렸습니다. 이사짐센터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창고를 주택으로 개조하는 공사가 좀 덜 되어 있어 짐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사짐센터 사람들에게 오늘 일당은 쳐 줄테니 공사가 끝나는
저녁나절까지 기다려 달라 하고 함께 냇가로 나갔습니다. 맑은 물 속에는 송사리들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사짐센터 남자 둘과 송사리를 쫓으며 해지는 줄 모르며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집 수리가 끝나 짐을 내리면서 이사짐센터 사람들은 이사짐을 따라 지방에도 많이 가 보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은 못 보았다며,
이렇게 재미있게 이사짐을 날라 본 것도 처음이라며 좋아라 했습니다. 이들은 돌아갈 때 집에서 기르겠다면 송사리 몇 마리를 병에 담아가는
극성도 보였습니다.
하여튼 요란스럽게 이사를 하고 이곳 수동계곡에 정착해 살면서 하루하루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산과 들판들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고 이렇듯 아름답고 위대한 환경을 앞으로 어떻게
지켜낼지에 대해 걱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집 지을 곳까지는 걸어서 한 30분 정도
걸립니다. 마을을 가로질러 산길을 따라 숨이 턱에 찰 정도의 언덕을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나옵니다. 아래 마을서 쳐다보면
그냥 산 속이지만 그 안은 10여호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땅입니다.
374평 땅을 평당 20만원에 구입해 현재 농지전용을 신청해 놓고 허가가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 55평 정도의 집을 지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하나 꾸밀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당을 넓게 하여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과 가장 닮은 꽃들을 심을 생각입니다.
몇 일 전 어머님이 다녀갔습니다. 마흔다섯이 되도록 일에 미쳐 혼자 사는 딸이 산 속에다
집을 짓고 산다는 계획에 눈물까지 보이셨습니다.
개구리 소리, 밤하늘의 별빛을 핑계삼아 너스레를 떨며 어머님을 위로했지만 어머님은 "서울에는 별이
없냐?"며 퉁명스럽게 받으며 걱정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님은 "좋긴 좋다"라는 짤막한 말로 산 속에서 혼자 살 딸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김여아씨는 지금 어떤 모양의 집을 어떤 구조로 지을 것인가, 마당에는 어떤 꽃을 심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매일 들 떠 생활하고 있습니다. 초보 시골생활을 하는 김여아씨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시골생활과 그녀가 지을 아름다운 집을 기다려
봅니다.
3. 치악산 끝자락에서 쓰는
들꽃 이야기 - 30대 젊은 부부의 들꽃같은 삶, 바람같은
꿈
진달래처럼 붉은 색깔의 차(茶)에는 들꽃이 하나 동동 떠 있었습니다. 새콤달콤한
맛은 도시의 혀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맛이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꽃바람차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솔향기가 나는 솔바람차도 있고
또 산들바람차도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네들이 직접 만들어 이름붙인 거랍니다. 꽃바람차는
오미자를 어떻게 했다는 것인데 발효되어 알콜 성분도 조금 있는 듯했습니다.
남편은 애니메이션 작가, 부인은 국어선생님이었습니다. 도시의 그토록 안전하고 편안한 것들을 버리고 이들은
지금 치악산의 끝자락으로 들어와 꽃바람차를 담그며 살고 있습니다.
중앙고속도로를 타다보면 신림나들목이 나옵니다. 이곳을 나오면 우측으로 신림면 소재지가 되고 좌측으로 영월
주천을 지나 태백으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신림나들목에서 영월 쪽으로 채 2㎞가 안되게 가다보면 좌측으로 치악산국립공원 상원사로
가는 이정표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쫓아 한참을 들어가면 좌측의 약한 언덕 쪽으로 '들꽃이야기'란 예쁜 표지판이 나옵니다.
표지판이 가르키는 곳의 끝에 돌담이 있고 돌담 안에는 농가주택을 개조한 작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얕으막한 처마가 매우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 집의 담장에는 야생화들이 줄줄이 피어 있고 새까만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산뽕나무가 있습니다.
농가의 오래된 부엌문같은 현관을 밀고 실내로 들어가면 소녀같은 안주인이 손님을 맞습니다. 하얀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매우 도회적입니다.
바깥주인은 밭에서 일손을 놓고 누가 왔나 싶어 손을 툭툭 털며 들어오는데 모자를 눌러쓰고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 농부티가 좀 납니다.
30대의 김명진 곽은숙씨 부부가 다섯 살, 16개월 된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에서 사는 모습입니다.
이들 부부가 치악산 아랫마을에 터를 잡은 것은 3년 전입니다. 빈
농가주택이 있는 집터 250평을 구입한 후 주변의 빈 땅을 빌려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처음에는 적응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내려와 한 2년 정도는 준비하고 적응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농가주택을 수리해 주택으로 사용하고 잇대어 충주 비행장 공사장을 직접 찾아가 빈집을
헐고 남은 자재를 구해와 찻집을 지었습니다. 찻집의 바닥은 폐교에서 교실바닥으로 사용하던 마루판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 '들꽃 이야기'란 이름으로 찻집을 열었습니다. 도시에 살 때도
이들 부부는 들꽃에 관심이 많아 들꽃과 함께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자신들의 집을 '들꽃 이야기'로 이름지었고 정원은 물론 집 안에도 많은 들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들과 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차를 담급니다. 내년부터는 농사도 직접 지어볼
생각입니다.
들꽃처럼 살고 싶은 젊은 부부가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치악산 끄트머리에서 쓰는 '들꽃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 들꽃이야기 : 033-762-2823
4. 일요일 한낮 구수리, 불청객의 습격
- 시골집 개조해 사는 초록색 재미
진천 백곡면 구수리란 산동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전화도 없이 불쑥 나타나면 놀랄 수도, 당황해 할 수도 있을텐데 하는 염려도 되었지만 내심으로는 갑자기
습격(?)을 하여 그들 가족들이 일요일 한낮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싶었습니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지만 그것보다 비가와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 더욱 앞섰습니다. 보이는 들판들은 오랜
갈증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눈에 띄는 개울이며 저수지는 밑바닥을 다 드러내놓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일기예보에는 오늘이나
내일쯤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하늘은 쨍쨍하기만 합니다.
백곡초등학교 뒷길로 하여 구수리로 드는 좁은 길가의 밭에는 일요일 학교에 안간 아이들까지 나와 물을 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로 먼지를 날리며 지나가기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구수리의 봄빛은 마을 어귀부터 감나무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습니다.
나른한 일요일 한낮, 김혜경씨 부부는 뜨락에 가지런히 돌을 쌓고 있다 느닷없는 불청객의 습격에 주저하는 기색도
전혀 없이 진흙이 잔뜩 묻은 손을 흔들며, 특유의 활달함으로 손님을 맞았습니다.
남편 이영건씨는 모자를 눌러 쓴 얼굴에 땀이 범벅이었고 부인 김혜경씨는 밀짚모자에 고무신
차림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창민이는 언제나 맑고 씩씩합니다. 방에서 언제 나왔는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건너방으로
소나기처럼 후두둑 달려갑니다.
이내 마당 한가운데 있는, 한옥이 헐리는 곳에 가서 마루판을 얻어와 만들었다는 투박한 식탁 위로 얼음같이
시원한 감잎차가 놓였습니다.
김혜경씨 가족은 재작년 이른 봄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IMF의 한파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였습니다.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과 특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어 IMF로 모두들 움츠러들어 있을 때 시골행을
감행했습니다.
20평 정도의 빈 농가와 우사가 있는 대지 267평을 구입하는데 4,80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안채 17평은 살림집, 우사 10평은 사람방 겸 화장실, 욕실로 개조하고 살다 작년말 본 채에 붙여 15평 정도의 황토집을 틈날 때마다 조금씩
두 부부가 손수 지었습니다. 벽체도 방바닥도 울퉁불퉁하고 투박하지만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분위기 있고 정감 가는 집입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남편 이영건 씨는 서울시청 앞의 회사까지 약 100㎞를 매일 출퇴근을 합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가면 사무실에 7시 30분 이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서울서 살 때와 출퇴근 시간은 거의 같지만 연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차를 소형으로 바꾸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창민이는 800m 거리에 있는 백곡초등학교까지 매일 걸어서 등하교를 합니다.
김혜경씨도 이곳에 오면서 생활이 많이 변했고 많이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아들 창민이가 다니는 학교의 특별학급교사로 일주일에 몇 번씩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주변의 학생들에게
미술개인레슨을 해줍니다. 최근에는 도자기 가마를 하나 구입해 생활 도자기를 만들고 또 천연재료를 이용한 옷감염색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에 있을 때보다 하는 일이 더 많고 더 바쁩니다.
남편 이영건 씨는 방송설비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시골생활을 위해 틈틈이 도자기 공부를 했고 귀농학교를
다니는 등 농부로 이곳에 정착할 준비를 꾸준히 해두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중천에 있던 해는 벌써 지붕 끝에 와 걸려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의 행복한 집단장 시간을 반나절이나 빼앗은 불청객의 미안함에 주인은 "쉬기 위해 하는 일이고 일하려고
쉬는 것"이라며 손을 내젓습니다. 그리고 김혜경 씨는 부엌으로 달려가 비닐봉투를 하나 들고 나옵니다. 직접 만든 된장이고 간장이라며
손에 들려 줍니다.
팔이 뻐근할 정도로 묵직한 무게의 정(情)이 담겨 있었습니다.
구수리를 나설 때 바람결에 빗소리가 묻어 오고 있었습니다. 일기예보대로 곧 해갈의 소나기가 들판 가득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5. 명퇴학생들의
휴식처 양철지붕집 - 마당가 감나무 일곱 그루의
넉넉함
큰 감나무 서너 그루가 응달이 되는 집 앞으로 맑은 개울이 흐른다.
개울을 가로질러 집으로 건너오는 돌다리가 놓여 있고… 아니 나무다리라도 하나 놓여
있으면 좋다. 토요일 오후 개울 건너편에 자동차가 와 멈추고 뽀얀 얼굴의 아이들이 내려 집 쪽으로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 저희들 왔어요!"
할머니는 두 팔을 벌리며 뛰쳐 마중을 나가고, 기우뚱거리며 돌다리를 건너오는 아이들
뒤를 따라오며 환하게 웃는 젊은 부부가 있다.
김영숙씨가 성터마을에서 양철지붕을 한 허름한 농가주택을 살 때는 이렇게 아름다운
정경을 떠올렸다.
물론 지금도 그 정경을 간직하고 있다. 돌다리는 없지만 감나무 사이로 난 언덕길을 따라 손자소녀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뛰어올라오는 잔잔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면 그야말로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그런 이들이 충북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 성터마을의 언덕 위에 초라해 보이는 농가주택을 구입해 그곳이 좋아
심심할 때마다 한번씩 내려가 텃밭도 가꾸고 화단에 화초도 기르며 몇일씩 머물다 온다.
김영숙씨는 4년 전 식목일에 이 양철지붕을 한 집을 샀다. 남편 이중희씨의 고향마을이라 정감이 갔지만
그것보다 마당가로 일곱 그루의 감나무가 있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도로가 있는 집인지, 사는데 문제가 없는 집인지, 가격은 적당한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아름다운 집이란 생각에서 농가주택과 대지 150평을 3,500만원에 샀다.
현황도로는 있지만 지적도 상에는 도로가 없는 맹지란 것과 시세보다 턱없이 높은 가격에 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 이중희씨로부터 "이것도 집이냐"며 잔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부인 김영숙씨의 마음은 일곱 그루 감나무로 하여
그렇게 넉넉해 질 수 없었다.
이 집은 구입할 당시의 모습 그대로 지금 살고 있다. 내부 구조도 그렇고 양철지붕도 하나 고치지 않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살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동네 사람들도 서울 사람인 이들 부부가 튀지않고 이렇듯 소박한 모습으로 사는 것에 대해 너무
좋아한다.
남편 이중희씨가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난 후 이 양철집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들 부부의 아주
좋은 휴식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에 있는 명예퇴직한 사람들의 공동 휴식처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한 남자들은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어 관악산이나 북한산으로 출근을
한다. 양철집은 이중희씨 주변에 있는 명퇴한 사람들이 수시로 내려와 쉬다 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언제나 오픈돼 있다.
부인 김영숙씨는 이러한 남편 친구 분들을 명퇴학생이라 부르며 그들이 양철집에서 편히 쉬다갈 수 있도록 냉장고에
반찬 등 먹거리를 준비해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명퇴학생들도 이곳에 다니러오면 마당에 풀도 뽑고 텃밭도 가꾸며 내 집처럼 정성을
쏟는다.
그들 나름대로 관심사항들이 있어 그것들이 이 집을 만들어 간다.
예를들어 김영숙씨는 꽃에 관심이 많아 꽃을 주로 심고 가꾸고, 어떤 이는 채소에 관심이 많아 온통 채소밭을
만들어 놓고 또 누구는 물에 관심이 많아 우물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식으로 이 집을 가꾼다. 그렇게 인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이중희씨를 비롯한 명퇴학생들에게 있어 양철집은 휴식처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어쩌면 그들 삶의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이곳에서 확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양철집이 있는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는 중앙컨트리클럽 아랫마을로 기후적으로 일교차가 커 장미와 안개꽃, 국화 등
꽃을 많이 재배하는 지역이다. 다른 농촌지역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모두 순박하고 인심이 후하며 특히 웃어른들을 잘 섬긴 다는
것이 김영숙씨의 설명이다.
땅값도 주변 지역과 비교해 저렴한 편이라 귀농지로서 괜찮은 지역이다.
6. 세끼 라면만 먹으면 되지 무슨
욕심이 - 아들 대학보내고 바로 이곳으로 들어
왔지
영월에 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강이 아름다운 주천이란 마을을 지나 고개를 넘어 원주시 신림면 '황둔'이란 분지형
마을을 또 지나야 했습니다.
'황둔'은 지나면서 언뜻 보면 산으로 막혀있는 한 길가의 뜨네기 같은 마을입니다만 리단위의 마을에 중학교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정보화 시범마을'이라 하여 초고속 통신망이 깔려 마을 전체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인터넷 기반이 아주 좋은 동네입니다.
사실 몇 번 이 마을을 지나다녔지만 길가에 있는 마을 정도로 여겨 크게 정이 가지 않아 특별히 들러본 곳이
없었는데 그 날은 달랐습니다.
황둔중학교 앞을 지나면서 오른쪽 산 속을 쳐다보니 멀리 산 위에 가물가물 박공지붕의 하얀색 집이 하나
보였습니다. 저 산꼭대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하는 생각이 들어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황둔중학교 뒤쪽으로 들어가니 계곡을 따라 자동차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샛길이 나옵니다. 계곡 옆
산밑으로 다닥다닥 붙은 농가 몇 채가 있고 그 농가들의 사열을 받듯하며 산 쪽으로 올라가면 이내 비포장 도로가 됩니다.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되돌려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좀 험한 길입니다. 하얀색 집은 그 길의 끝에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의 마음은 '내려다 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힘들이고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으로 이곳에 집을 지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멀리 황둔 소재지와 제천으로 드는 도로가 실타래처럼 풀려가는 곳에 높낮이가 다른 산들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집주인 부부는 "오늘이 주천장날이라 장을 보고 왔다"며 막 장보따리를 풀다 손님을 맞았고 얼음을 넣은 산딸기
화채를 내놓았습니다. 집 주변을 둘러보니 오리, 닭, 강아지, 염소 등 동물들이 많고 집은 아래에서 쳐다본 것보다 작고 아담합니다.
쉰 중반의 나이인 김종운, 전영애씨 부부는 대대로 서울의 한가운데, 종로에서만 살아온 순종 서울
토박이들입니다. 둘 다 서울의 유명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는데 대학동기로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서울서 직장을 다니고 인사동에 큰 가게도 하고 그렇게 바삐 살다 어느날 서울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10년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불쑥 서울을 떠나, 이곳 심방골로 들어와 집을 짓고 여태껏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들어올 당시만 해도 이곳은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정도의 길밖에 없었는데 길을 새로 만들어가며
어렵게 어렵게 집을 지었습니다. 집은 콘크리트로 지었는데 자재값보다 운반비가 더 들었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김종운씨는 이곳서 한지로 전통 탈을 만들고 장승 조각을 합니다. 그가 만드는 탈에는 하회탈, 양반탈,
봉산탈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전래되는 방법 그대로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탈은 인사동 가게로 나가는데 탈 만드는 것은 주수입원이고 염소 등 가축 몇 마리 기르는 것은 부수입입니다.
"하루 세끼 라면만 먹을 수 있으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산 위에서 사는 이들 부부의 한량없는
욕심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삶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덧붙입니다.
이들 부부는 요즘 또 다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원주에서 회사에 다니는 아들부부와 함께 목장을 하며
같이 사는 것입니다. 소를 키워볼 생각인데 그러려면 좀 넓은 평지로 나가야 하고, 10년 동안 정을 들인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대해
못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종운씨는 서울서 손님이 오기로 했다며 마당가에 무쇠솥을 걸고 장작불을 지핍니다. 무쇠솥 하나 가득
주천장에서 사온 소뼈를 구워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나무 수통을 타고 내려오는 마당가의 샘물은 손님을 맞이할 때나 보낼 때나 똑같은 높이의 투명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 심방골탈방 : 033-761-5399, 011-9742-5390
7. 경치만 보고 땅 샀다 집 지으며 고생 고생 - 전기 끌어 들이지 못해 발전기로 생활
보통 사람들은 생활에 찌들리다 보면 세상사에서 훌쩍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묻혀 살고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장소라면 조용한 시골이나 좀 심각하다면 산 속을 생각할 것이고 그곳에 강이 있고 계곡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은 드물고 또 부부간에 마음이 일치하지않아 티격태격하다 포기하고 만다.
이런 면에서 이학도 염은순씨 부부는 용감하고 또 마음이 맞는 부부다. 그 이유는 남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곳에 들어와 이들 부부는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나가 사는 두 아들이 주말이면 이따금 찾아 오지만 그래도 깊은 산속이라 도를 닦는 정도의 마음가짐이
아니면 살기 힘든 곳이다.
용문에서 홍천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에서 약 3.5km 거리에 위치한 양평군 청운면 비룡리에는 어룡골이란
깊은 계곡이 있다. 골짜기가 얼마나 깊은지 늦봄까지 어름이 녹지 않는 곳이며 오염이 안돼 있어 생수를 받아 가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는
곳이다.
이 골짜기에서 이학도 염은순씨 부부는 '어룡골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이곳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했고 불필요한 경비도 많이 지출했다.
이곳에 오기전 이들 부부는 기사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 한때는 아파트 공사장의 현장식당을 운영했다.
수입은 짭짤했으나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일을 찾던 중 우연히 99년 가을 고향집에 왔다 이웃 동네인 어용골 안 쪽에서 준농림지인 밭
500평을 판다고 하여 그 날로 평당 8만원에 계약을 했다. 앞뒤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계약을 서두른 것은 경관이 좋으면서 전혀 오염이
안된 곳이고 앞으로 더 이상 오염이 될 수 없는 계곡이란 점에서 우선 마음에 들었고 또 낙엽송이 울창해 주택자재로 활용하면 자재 값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결국 경관만 보고 앞뒤 재지도 않고 땅을 산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집을 지으면서 알았다.
농지전용허가를 받고 30평 주택을 지었는데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99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입주하기까지 11개월이 걸렸고 준공을 받은 것은 입주하고도 4개월이 지난 올 1월에서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된 것은 주택 진입로에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받아 교량을 설치해야 했고, 계곡 중간까지
현황도로와 농로가 있기는 했지만 주택의 부지와 직접 연결되는 도로가 없어 관련 토지주인으로부터 사용승낙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도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고 또 전기와 전화를 끌어오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다.
다행히 고향인근지역이라 지인들을 통해 토지사용승락서는 쉽게 받을 수 있었으나 이럴 안면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너무 많았다.
주택을 짓기 위해 경운기만 다니던 농로를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는 길로 만들어야 했다. 포크레인으로
3일간 공사를 하고 석분도 수십 차를 갖다 길 위에 뿌렸다.
그리고 전용허가를 받고 난 뒤에는 부지가 낙엽송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나무를 벌목해 기초공사를 하려고 하니
그때부터 정말로 큰 문제가 생겼다. 공사현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동공구를 하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전기를 신청하려 하니
8,000만원이란 비용이 필요해 땅 구입비 4,000만원의 배 즉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기를 끌어들이는 비용이
기본요금보다는 좀 더 많이 들 것이란 생각을 했으나 막상 알아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
전기 가설비용은 200m까지는 기본요금이고 1m을 초과할 때마다 44,000원에 부가세를 포함해
48,400원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발전기를 150만원 들여 구입해 사용했다. 지금도 이들 부부는 발전기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쓴다.
발전기 상식도 부족해 과부하로 2대를 태워먹고 현재 3대째 사용 중에 있는데 그 비용만도 450만원이나
들었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주변에 있는 자재로 손수 집을 지었는데도 평당 250만원이 들었다. 이럴 경우 평당
15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완성된 집의 구조는 방 3개 화장실 거실로 돼 있다. 골조는 집터에서 자란
낙엽송 통나무를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귀틀집 즉 성냥개비를 쌓아올린 모양으로 하여 빈틈에는 황토를 채워 마감했다. 흙 공사는 포크레인을
이용해 황토에 볏짚을 혼합한 후 재래식 그대로 시공했다. 이렇게 흙일을 하는데 40일 정도가 걸렸다.
이학도 염은순씨는 이 집을 짓고 바로 옆에 20평 정도의 주택을 최근에 또 지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큰 욕심없이 도시에 나가 사는 아들이 다니러오면 묵을 수 있는 방도 필요하고 하여 집을 하나 더 지었다.
어룡골 민박집은 전기를 끌어들이지 못해 발전기를 사용할 정도로 깊은 산 속에 있어 산중생활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 이곳에 가면 홀로 전원주택 만들기의 좋은 사례를 얻을 수 있다.
■ 어룡골 민박집 : 031-771-9873
8. 병 고치기위해 혼자 짓는
귀틀집 - 거실에 앉으면 오대천은 뱀의 허리처럼 흘러
가고
쑥 냄새 가득한 거실에 앉으면 시골 면소재지의 나른한 오후 풍경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습니다. 면소재지를
돌아 나온 오대천이 뱀의 허리같이 스멀스멀 마당까지 기어들다 꼬리를 감추고 나면, 뒤따라오던 산길은 산 끝에서 아득하기만 합니다.
평창군 진부면은 오대산으로 드는 초입인 마을입니다.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을 나와 좌측으로 가면
오대산국립공원이나 진고개를 넘어 주문진으로 나가게 됩니다. 보통 이 길은 많이 알고 있지만 그 반대편 즉 진부나들목을 나와 우측으로
진부면소재지를 통과해 직진해 가는 길은 잘 모릅니다. 이 길은 정선으로 가는 길인데 계곡을 끼고 달려가면 정선읍내로도 갈 수도 있고
정선읍내를 들지 않고 나전, 임계를 지나 동해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길과 따라 함께 달리는 물이 오대천인데 맑고 아름다운 계곡이 많아
드라이브코스로 매우 좋습니다.
진부나들목을 나와 면소재지를 지나면서 곧바로 길은 오대천과 함께 달려가는데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오대천 건너 산밑으로 눈에 들어오는 귀틀집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빈 집같기도 한 이 집이 길을 지날
때마다 궁금해 졌습니다. 도로에서 빤히 쳐다보이는 집이지만 물 건너 쪽에 있어 어떻게 건너가는지 입구를 찾지 못해 길을 몇 번 뒤적거리다
겨우 입구를 찾아 집에 가 보았습니다. 비포장인 가파른 진입로를 올라 집 마당에 들어서니 짓다 그만둔 것같이 자재들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고 현관문도 없는 집은 기척이 없었습니다.
그 조용함 가운데 안 쪽에서 셔츠 바람에 헝클어진 꽁지머리를 하고 나오는 남자가 있는데 불청객에게도 경계의
눈빛이 전혀 없이 조용히 웃고 서 있습니다. 산빛같이 맑은 웃음입니다. 지나다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 새삼스럽지 않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올 7월부터는 손님치르기 바빴다는 것이 집 주인 민경수 씨의 설명입니다.
올해 서른여덟인 민경수씨는 서울에서 회계관련 일을 하던 회사원이었습니다. 매일 의자에 앉아 펜대 굴리는
일만 하다 보니 덜컹 몸에 심각한 병이 생겼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질 때 회사를 그만두고 지친 몸을 이끌고 전라도에서부터
강원도까지 요양을 할 수 있는 곳을 손수 찾아나섰습니다. 그러다 만난 곳이 이곳 진부면의 오대천을 내려다 보이는 땅이었습니다. 이곳의
해발은 700m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원 휴양지들은 해발 700m에 많이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이 고도는 저기압과 고기압이 만나는
지점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증가로 수면시간이 1~2시간 단축된다고
합니다. 또 충분한 혈류공급으로 젖산과 노폐물의 제거에 효과가 있어 피로회복시간이 2~3시간 빠르고 고혈압이나 저혈압, 신체기능저하 등
각종 만성 질병이 치유되거나 예방되는데 이런 이유로 세계적인 장수촌은 해발 700m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민경수씨는 이곳 땅 150평을 전용받아 살면서 1년내내 손수 집을 짓고 있습니다. 거의 완성단계에 왔는데
건축업자의 도움을 받은 것은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릴 때 뿐이었습니다. 큰 통나무를 혼자 다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빌딩 속에서 너무 오래 의자에만 앉아 있어 생겼던 병이라 병을 고치려면 뭔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 손수 집을 짓기로 했던
것입니다. 생식을 하며 병든 몸을 이끌고 집을 짓는 것은 쉽지 않아 힘 닿는 대로, 평생 짓겠다는 생각으로 집짓기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도를 닦듯 집을 지으며 일년만에 건강도 매우 좋아졌습니다.
45평인 이 집은 특별한 공법이 없이 민경수 씨가 나름대로 생각해 짓는 집입니다. 굳이 붙인다면 통나무
귀틀집 정도가 적당한데 통나무를 쌓고 그 사이사이 황토로 채워서 짓는 집입니다. 특이한 것은 천장 마감을 대나무를 대고 그 안쪽으로 황토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라운드형인 ㄱ자집으로 가운데 있는 거실은 오대천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창을 내고 바닥을 높게 하였고 그 옆으로
방들은 높이를 낮추어 미로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방들은 모두 황토로 마감했고 쑥과 숯을 넣은 후 황토를 발랐는데 방안에서는 쑥 특유의
향기가 짙습니다.
민경수 씨는 손님들이 자주 찾아오고 지나다 불쑥불쑥 들리는 사람들도 많아 그들을 맞아 이야기 하다보면 집 짓는
일정에 차질이 종종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집을 'OK시골'에 소개하겠다고 했을 때 완성된 집도 아니라 아직 어수선하고 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져 집 짓는 일, 도 닦는 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처음에는 거절을 했습니다만 OK시골의 설득에 흔쾌히 몸까지
바쳐(?) 모델도 돼 주었습니다. 또한 집이 완성되고 나면 완성된 모습 혹 그전에 들를 일이 있으면 그때까지 진행된 모습들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9. 한옥 옮겨와 전통 황토집을
짓고 - 돌려주고 나니 삶은 이렇듯
넉넉한 것을...
구수골에 들어와 살아보니 살아가는 것들 모두가 욕심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어 그것들을 파는
것도 벌꿀을 쳐 꿀을 따는 것도 욕심이었습니다. 입에 풀칠하고 살면 되는 것을 뭐가 그리 거둘 것이 쌓아둘 것이 많아 집안 가득, 주머니
가득 채우려고만 하는지...
하루는 대청마루에 앉아 그 욕심들을 하나하나 정리를 했습니다. 꿀을 팔았던 사람들에게는 꿀 값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 사실 다른 곳보다 싸게 판다고는 하였지만 그래도 많이 받은 것 같아, 얼마를 뚝 떼어 다시 돌려보내고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민박비용으로 받았던 1일 1만원 비용도 반으로 뚝 잘라냈습니다. 돌려보내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은 더욱
넉넉해 졌습니다.
전북 임실은 지리산이 흘러가는 자락으로 골이 깊습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태근 씨가 주변에 집이라고는 없는 구수골로 들어온 것도 벌써 3년여가 되어갑니다. 쉰을 넘긴 나이에 가족들은 모두 전주에 두고
이곳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살겠다며 빈 농가를 얻어 수리를 해 살면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약 5,000여 평의 버려진 밭과 임야를 얻어 과수나무도 심고 곡식도 심었습니다. 마당가에는 벌도
칩니다.
작년에는 전주의 어머님이 살고 계신 옛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헐리는 집을 고스란히 이곳으로
옮겨와 먼저 살던 농가주택 옆에 다시 집을 지었습니다. 구들을 놓아 난방을 하고 벽은 대나무로 외를 엮은 심을 넣은 전통 황토집 공법으로
만들었습니다.
|
<왼쪽 사진>안방 벽면과 방바닥, 방바닥은 황토미장에 찰수수풀과 전통염색으로
마감했다. <오른쪽 사진>건너방에서 거실과 안방 쪽을 바라본 모습.
| 집을 옮겨짓는데는 약 8개월 정도가 들었는데 4개월은 목수들과 함께 지었고 나머지 4개월은 혼자 손수
지었습니다. 손수 한 부분들이 많아 집 짓는 비용은 4,000만원정도 들었습니다. 이 집은 구들로만 난방을 할 수 있습니다.
방바닥은 황토로 바르고 그 위에 찰수수풀을 바른 후 전통 염료로 다시 칠을 하여 마감을 하였습니다.
이태근 씨는 이곳을 녹색마을 자연학교라고 합니다.
말이 학교지 그냥 어린 학생들이 찾아오면 주변의 자연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어른들에게는 자연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도시인들이 하루씩 쉬었다가겠다며 찾아오면 청소와 세탁비용으로 1일 5,000원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
민박비가 5,000원인 셈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산한 먹거리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이태근씨는 구수골의 자연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녹색마을 자연학교 : 063-643-3199
10.일을 해야 건강에 좋다, 사슴과 함께
노후를 - 마당가에는 사철 야생화가 피고 샘물이
졸졸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고송리에서 사슴농장을 운영하는 권종신 한계화씨 부부가 사는 집에는 일년 내내 태극기가
게양되어있다.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살어온 사람답게 그는 국가관이 투철하다.
권종신씨는 33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지난 95년 이곳 양평으로 들어와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군에서 원사로 정년 퇴직하였기 때문에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받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일을 해야
건강에 좋다'는 생각으로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역 이전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다 사슴을 선택했다. 사슴의 모습에 우선 애착이 갔고
사육이 비교적 쉽고 녹용, 녹혈 판매 등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사슴사육에 관한 책을 틈틈이 읽으며 농장부지로 알맞은 땅을 찾아 나선 권씨는 퇴직을 1년 앞둔 94년, 대지
106평이 포함된 현재의 준농림지 1,200평을 평당 3만5,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퇴직과 동시에 4,500만원을 들여 사슴 8마리를 사들이고 농장 조성에 들어갔다. 낡은 집은 헐고 평당
건축비 210만원, 총 7,000여 만원을 들여 33평짜리 단층 스라브집을 지었다. 건축업을 하던 처남이 공사를 해 값싸게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토지구입비, 건축비, 사슴매입 등에 총 1억6,000여 만원이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웃이 없어 다소 외로웠지만 지금은 군 생활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주변에 땅을 구입해
두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군 친구가 집을 지어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사슴은 한 해에 한 마리 정도 새끼를 낳아 8마리로 시작한 사슴이 지금은 14마리.
3년된 사슴에서 900g~1㎏ 정도 나오는 녹용은 g당 1,000원, 녹혈은 300cc를 1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사슴을 잡아 녹혈 등과 함께 중탕해 판매하기도 한다. 친구, 친지 등을 통해 알음 알음 소문이 나 월 1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사슴농장 옆에는 취미로 공작도 몇 마리 기르고 풍란도 기르고 있다.
이 집에서 권종신 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마당가에서 사철 흘러나오는 샘물이다. 물이 너무 좋아 물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을 물을
길어가려고 다시 찾아온다. 특히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아주 좋다는 것이 권종신씨의 자랑이다.
마당가에는 야생화들이 빼곡이 심어져 있고 사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시골살이의 큰
재미다.
토지사랑
모임
http://cafe.daum.net/tozisaran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