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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귀농귀촌/귀농귀촌 성공사례

[스크랩] 절망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가족이 있어 행복하고 웃을 수 있다는 말 처럼....

 

 

한참 수해가 기승을 부릴때 수해 현장을 촬영 하면서 함께 하셨던 분이 제게

 

"이번 피해 농가중에 청국장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뒷 산이 무너졌다네~~!"

 

"정말 비가 무섭다!"

 

그래서 제가 "사는 분은 어떠신가요?!"

 

"뭐~! 다행이도 인명 피해가 없다는데~!"

 

그래서 제가 "피해 현장도 알리고 일손도 모자를텐데 잠깐이라도 도와주러 가시죠"

 

"어! 좋은 생각인데~! 한번 가봅시다." 

 

부르르릉~~!! 이렇게 시동을 걸고 기어를 올려 생전 만나지도 못해봤던 머릿속의 나만의 청국장집

주인을 떠올리며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른쪽 발에 힘을 실어 엑셀레이터를 밟아

도로 위로 올라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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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절이 주절이 내리더니 어느덧 그쳐가고 있었습니다. 뭐 하늘은 여전히 구름 투성이에다가 언제 쏟을지 모를 물주머니를 안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도로위를 달리는 우리들을 위협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많은 피해현장을 직접 두눈으로 보아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한참 가다가 길을 못 찾아서 "청국장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어디 소속의 누구 인데요~! 혹시! 윤선생님 휴대폰 맞나요?"

 

"네! 맞는데요"(일단 다행 ^0^)

 

"아 제가요~~!" 뭐 이러면서 길을 물어보고 일상적으로 말하는 "어디 어디서 우회전이더라 어디 어디서 좌회전이더라 또 어디서는 신호를 봐서 어디로 와야하는데요" 등등 한창 실랑이를 벌이다가 구비구비 진 곳의 주인장집에 도착 하였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조그만 뒷 동산 앞에 기와집 하나가 있었습니다. 더 웃긴게 지금 생각해보면 한참 헤메던 저희가 안쓰러우셨는지 직접 나오셔가지고 손까지 흔들어 가시며 몸소 춤(?)을 추시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모습이 생각 납니다. 다행이 별일이 없어서 서로 웃었던게 생각 나네요... 뭐 각설하고..

이 청국장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시골 다웠습니다.

 

 

 쥬스에 얼음 "복" 까지 가득 담으셔서

 

 

도착하니 잘 모르시는 저희들에게 어서 오시라고 하시며 쥬스를 내오시는 것이였습니다.

일단 앉으라 하시며 내오신 쥬스에 얼음 "복" 까지 가득 담으셔서 더운데 고생하며 이 곳 까지 오셨다고 미안해 하시는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비 피해를 입은 분 이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분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셔서 현재의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바라보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우리관계자분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저도 잠시 동석을 하여 귀동냥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콩 제품 이야기를 하면서 피해는 얼마고 뒷 동산이 좀 없어지고(헉!) 벽은 갈라졌다는 등 제품과 피해에 대한 안타까운 말들만 서로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못내 궁금했는지 저와 동행해주신분께서 의례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 윤선생님 가족분이 어떡해 되시나요?"

 

윤광미 : "아~~ 저희요 저희 9식구요"(헉!)

 

그럼 아이들만요?

 

윤광미 : "아~ 아뇨 애들 넷하고요 시어머니 시아버지하고 시동생하고 에이~! 뭐 그래요"

 

그럼 시아버지는 잘 거동 하시나요?

 

윤광미 : "음.... 아뇨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지 꽤 오래 되셨어요"

 

뭘로요~!?

 

윤광미 : "중풍으로 누우신지 몇년 되셨어요!"

 

순간 조용~~~!!

 

제가 "그럼 전에 무슨 사업이라도 하셨어요?!" 라고 물으니 그때서야 구구절절이 안타깝고 아쉬운 말들이 나오기 시작였습니다...

 

 

 

빚쟁이들 등살이며....

 

 

87년에 결혼한 두분은 행복한 마음으로 가구를 판매하였습니다. 매장을 열어 직접 판매도 하시면서 돈도 쏠쏠히 모으고 결혼 생활의 행복에 졎어있었는데.... 94년도에 가구판매장이 화재가 나면서 모든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가구는 화재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보험가입에도 들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다가 97년말 IMF가 터지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다시 일으켜 세운 가구공장이 2002년도에 다시 한번 화재발생을 당하게 되면서 삶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빚쟁이들 등살이며 갖은 고생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너무 힘이들다보니 자살할 생각도 하게 되더라는 말을 듣고는 참.....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웃으시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그래도 제가 맏며느리 잔아요 그 덕에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라며 너스레 웃음을 보였습니다.

 

상상을 해보고자 해서 하는게 아니라 잠시 머릿속에서 "내가 저랬다면 어떤 마음일까?" 라고 잠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는데..... 뭐랄까 정말 상상히 안간다고나 할까? "절망"이였을 것 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나가면서 잠시 자리를 떠서 주변을 살펴 봤습니다.

 

뒷 뜰에 토란이며 고추며 상추등등 많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욕심없이 조금씩 심어 놓은 모양이 정말 뭐랄까? 귀엽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이였습니다.

 

 

뒷뜰을 돌아 보고 나오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게 굉장히 커다란 솥단지였습니다.

 

 

제가 맏며느리잖아요....

 

 

솥단지 어디다 사용하실라고 저러실까? 했는데... 그때 언뜻 생각나는 것이 바로 청국장이였습니다.. "아~! 맞다 청국장 만드신다고 하셨지...?" 헐래벌떡 뛰어서 그래봐야 바로 코앞이긴 하지만...

제가 먼저 이야기를 끄내려고 갔는데... 이미 청국장 제품들을 한 가득 들고 나오시는 거였죠

 

그러면서 고개를 제게 돌리시며 "다 보셨어요" 하시길래 "아~~! 예!"라고 짧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들고 나온 콩 제품들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게 저희가 만드는 콩 가공 식품들이에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 두번 실패하시면서 뭘 따로 배우실게 있었나?") 궁금하다 싶어 "윤선생님 이거 언제부터 만들게 된거에요" 라고 살짝 물어 봤습니다.

 

윤광미 : 아 사실은 제가 좀전에도 이야기 드렸지만 제가 맏며느리잔아요.... 그리고 저희집이 종가집입니다. 사실 이 콩으로 만드는 청국장이며 이런것들 전부 시어머니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다 맏며느리에 아이들이 많아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종가집이였구나... 종가집이 보통 힘든 곳이 아닌데... 일하랴 음식 배우랴 정말 대단하구나...)

 

 

다시 웃으시면서 "그래도 이 제품들 제가 정말 정성들여서 만드는 거거든요 그게 만들어 놓은것이 아니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그때 만들어서 보내드려요. 만들어 놓아서 팔면 성의도 없는것 같고 좀 더 맞있는 청국장을 못 보내 드리거든요... 내가 먹을 것 처럼 생각해야지 음식이라는거 장난치면 안되거든요 잘못하면 나중에 벌받아요"

 

아~! 그렇더군요 제가 생각을 해봐도 먹을것이라는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가는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게 간단히 생각해봐도 그런것이 우리내 음식 상다리를(식탁포함) 보면 반찬들이 한두개가 아닌것이죠... 대부분 다 손이 많이 가는 그리고 그걸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 정성이 없다면 음식이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 음식 문화 일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광미씨가 운영하는 콩사랑이라는 웹사이트를 보면 스킨이 가족입니다. 얼마나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지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장사를 하는 웹사이트에 어울리는 곳은 아니지만 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청국장을 먹일 수 있다면 믿고 한번쯤 들어가봐도 될 듯 하다는 생각을 말해 보게 됩니다.

 

 

윤광미씨댁을 나오면서 또 바로 평창을 가게 되었습니다. 평창에 가는 길에 차 속에서 곰곰히 생각 해보니.... 절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무섭고, 마음 아픈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나"라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또 나의 성실하지 못한 점을 스스로 꾸짖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신 윤광미씨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데 있어 매 1분 1초가 소중하고 중요하고 살아 숨쉰다는 것을 이번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누구에게나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생각의 방법에 따라 아주 작은것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촬영에 협조해주신 윤광미씨와 옆지기 되시는 박상갑씨 두분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번 전해드립니다. (우리나라 식품을 사랑합시다!!!)

 

글·사진 :새농이

출처 : 우리농(농림수산식품부)
글쓴이 : 새농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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