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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귀농귀촌/귀농귀촌 성공사례

[스크랩] "우리 가족도 나무처럼 살 거예요"

구수리마을에서의 달콤 쌉싸름한 5년

황규섭·안상숙 부부

"우리 가족도 나무처럼 살 거예요"

 
"이곳에서 나는 다람쥐처럼 멧돼지처험 노루처럼 살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숲을 보고도 감나무를 보고도 더 이상 경이로워하지 않을 만큼, 나 자신 그대로 자연이 되어 살 것입니다. 단지 산골로 이사를
왔을 뿐인데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진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합니다."


"쓰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습니다"

황규섭(44)씨 가족이 도시생활을 접고 충북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에 처음 둥지를 튼 날, 부인 안상숙(43)씨는 가족 홈페이지
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벌써 5년이 지난 지금. 그의 바람대로 황규섭씨 가족은 자연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오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농촌생활이 일상이 된 지금 특별한 것도 내세울 것도 없어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요."
특별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다지만 그들의 계속되는 농촌생활 이야기는 '농촌예찬' 이나 다름 없었다. 무엇보다 생활비가 도시 수준의 절반도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거저먹는 게 많다'는 말에 동감할 수 있었다.


"도시는 소비문화잖아요. 농촌은 쓰는 것보다 얻는 게 많아요. 사시사철 먹을 게 지천이지요. 우리는 '노천시장' 이라고 불러요.
어제도 농사짓는 아줌마들이 들깨 따가라고 해서 얻어오고, 오는 길엔 시래기도 주워 왔어요. 손이 부족해서 못 갖고 오는게 아쉽죠."


그들 부부가 귀촌을 결심한 건 2002년 월드컵 때였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부부는 처음에는 수도권을 떠나면 안 될것 같은 불안감에 경기도를 중심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도의 농촌은 이미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도시민들이 너무 많아 상업화된 곳에 굳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있는 곳이 중심이다'

라는 마음을 가지니 이곳이 보디더군요."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이들이 걸어서 통학할 수 있었고 인근에 축사나 공장이 없어 환경이 깨끗했다. 게다가 비용이 부담 스럽지 않아 '생거진천(生居鎭川)'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마을 곳곳의 탐스러운 감나무도 이들을 유혹하는 데 한몫했다고.

 

통나무집에 이어 황토집도 손수 지어

 

처음에는 집을 사서 들어왔지만, '새도 곤충도 스스로 집을 짓고 산다는 자연의 깨달음을 얻어' 지난 2004년 10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원래는 하천이 흐르던 곳이였는데 인근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길을 낸 뒤에야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해 크리스마스 즈음 새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탈진 곳이라 다들 못 짓는다고 했어요, 짓고 나니까 모두 놀랐죠. 이런 집은 드물어요.

다방에서 심심풀이로 하는 성냥개비 쌓기를 생각하면 돼요. 그걸 귀틀집이라 하는데 보통 귀틀집은 틈이 생기면 흙으로 메우거든요. 한데 우리 집은 흑이 아닌 나무로 일일이 메웠어요.

집을 짓는 그 3개월 동안 우리 부부는 아주 사소한 말다툼도 하지 않았어요."

집짓는 재미에 빠진 부부는 지난 9월부터 또 별채를 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통나무집이 아닌 황토집이다. 고단할 법도 한데 부부는 외려 신이났다.

 

"늘 책상머리에서 머리를 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몸을 쓰는게 놀이"라고 말하는 황규섭 씨는 동화작가이다. 부인 안상숙 씨는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경험을 살려 마을 초등학교에서 글쓰기 지도 선생님 일을 하고 있다.

 

또 황규섭 씨는 대학 때 작곡을 전공한 덕에 아이들 '사교육'도 문제 없다고 이 때문인지 초등학교 5학년 선유와 2학년 선율이의 피아노, 바이올린 실력이 수준급이다. 벌이는 적지만 쓰는 것도 없으니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가족. 아니 외려 넘쳐보였다.

 

고향 같은 이곳에서 나무처럼 살고파 

 

 "처음에는 남들 하는 거 다 따라했어요. 왜 농촌에 오면 농사를 꼭 지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래서 철마다 이것저것 그냥 텃밭에서 우리가족 먹을 것만 조금씩 짓고 있지요."

마냥 부족할 것 없는 농촌생활이지만 황규섭 씨는 적잖이 아쉬운게 있다. 바로 문화생활, 도시에선 그 흔했던 영화관이었건만, 이곳에서는 차를 타고 30분은 나가야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다.
도시의 찬란한 네온사인이 그리울 때도 있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래도 농촌이 백배 낫지요. 다들 은퇴 후에나 농촌에 올 생각들을 하시는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오시는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이들 부부는 이곳 진천이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처음 이주를 결심했을 때도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단다.


"둘째 애가 가훈을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나무처럼'이라고 답해주었어요.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식물이잖아요. 우리 가족 홈페이지 이름도 '나무처럼'이에요
우리가족도 나무처럼 살아갈거예요."

 

 

글_김미경·사진_김봉석 한국농촌공사 흙사랑 물사랑 중에서

출처 : 우리농(농림수산식품부)
글쓴이 : 새농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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