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옥천면 노희선·박종림 씨 부부
가족 모두가 비주류입니다
서울 아파트에 살 때도 흙이 좋아 1층만 고집하던 노희선·박종림 씨 부부는 오십 줄을 앞두고 경기 양평군 유명산 자락으로 귀촌했다. 농사 경험이 전무한 노씨가 시골행을 결심한 데는 아내 박씨의 역할이 컸다. 노씨가 한번 결정한 일을 즉시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파라면, 아내 박씨는 남편이 나아갈 길을 뒤에서 조종한 이론가다.
글 이승환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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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에서 가평으로 넘어 가는 길. 서너 치만 더 오르면 하늘과 맞닿는다고 해서(또는 유명산과 중미산 사이의 안부가 깊어 하늘이 서너 치밖에 안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서너치고개를 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마을이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다. 유명산과 중미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간 마을임에도 유난히 양지가 발라 인근 마을들과 달리 잔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전형적인 농가주택 사이사이 새로 지은 전원주택이 적당히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신복리에도 전원생활을 희망하는 수도권 사람들이 꽤 몰려들었다. 귀촌인들이 깃들인 지 제법 세월이 흘렀는지 농가주택과 전원주택의 어울림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탈도시가 우리 시대의 트렌드라면 향촌을 지켜온 토박이들과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이주민들의 조화는 필수다.
아닌 게 아니라, 온 식구가 생태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노희선 씨(54) 가족도 농촌이 좋아 도시를 떠나온 경우이다. “발현되고 있는 경작 본능을 실감한다”는 노희선·박종림(52) 씨 부부는 평소의 생활 철학을 실천하며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노희선·박종림 씨 부부가 신복리로 들어온 것은 2000년. 1990년대 후반, 귀촌을 준비하며 노씨 부부는 지도를 펼쳐놓고 서울에서 차로 1시간쯤 걸리는 거리까지 컴퍼스로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원 안에 든 농촌을 죄 뒤지던 중 이곳을 발견했다. 차로 1시간 되는 거리를 대상지로 삼은 것은 노씨의 직장 출퇴근 때문. 마음이야 완전히 귀농하고 싶었지만 밥벌이를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의 타협을 봐야 했다(노씨 가족의 시골행이 귀농이 아니라 귀촌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행동파 남편, 이론가 아내
“고향은 충남 서천이지만, 부친이 회사원이어서 농사 경험은 전무했어요. 그래도 흙 만질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을 보면 유전자는 이쪽 취향이었던지, 서울 아파트에 살 때도 남들이 기피하는 1층만 고집했습니다. 베란다 앞 화단에 각종 화초나 조경수를 심고 싶어서요.”
신복리의 아늑한 느낌에 반해 250평의 땅을 구입한 노씨는 그해 바로 집을 지었다. 농사만으로 먹고 살겠다거나 땅을 재테크 수단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집터와 텃밭 나올 정도의 면적이면 충분했다. 마침 노씨가 하는 일도 건축·설비 관련 일이라 집짓기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신복리 정착 후 농촌의 맛을 알아가던 노씨는 ‘완전한 귀농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나 텃밭 농사만큼은 제대로 지어보자’는 생각에 농업 관련 단체들의 인터넷 사이트를 들락거렸고, 그 과정에서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알게 됐다. 그리고 2005년 귀농운동본부에서 도시 근교농업 활성화를 위해 ‘도시농부학교’를 꾸리자 곧바로 수강 신청을 해 막연한 전원생활이 아닌 현실적 전원생활을 위한 방향을 체득했다(노씨는 동기들의 권유로 도시농부학교 제1기 학생회장도 맡았다).
이렇게 노씨가 한번 결정한 일을 즉시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파라면, 아내 박씨는 남편이 나아갈 길을 뒤에서 조종한(?) 이론가다. 사실 노씨는 결혼 초만 해도 생태적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도시 샐러리맨이었다. 그런 사람을 박씨가 서서히 정신 무장시켜가며 경작 본능을 일깨워준 것이다. 박씨는 처녀 시절부터 자연·농업·환경 쪽에 관심이 많았다. 생태 전문지인 ‘녹색평론’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꼼꼼히 읽어오고 있을 정도이며, 요즘도 녹색평론의 독자 대표로 활동 중이다.
노씨 부부는 밭 200평에 갖가지 푸성귀와 감자·고구마·콩 등 반찬으로 쓰이는 대부분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노씨의 경우 다른 직업보다는 출퇴근이 자유로워, 주말 외에 아침저녁 시간을 활용해 밭농사를 짓는다.
“이제 밭농사에 이력이 붙고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는 고추를 배게 심기도 하고 성기게 심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실험도 하고 있어요. 농사꾼들이 보면 장난질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상업농이 아닌 만큼 다양한 재배법을 연구하는 것도 재미입니다.”
전철 안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중년 신사
전국귀농운동본부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 외에, 노씨는 지난해 양평군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환경농업대학도 수료했다. 그리고 농학, 작물생리, 환경농업 등 다양한 농업 서적들도 탐독 중이다. 출퇴근을 위해 노씨는 집에서 팔당역(경기 남양주시에 있음)까지는 자가용을, 팔당역에서 서울 시내까지는 중앙선 전철을 이용하는데, 전철을 타는 한 시간여가 그에게는 가장 좋은 독서 시간이다. 오가며 하루 두 시간은 꼬박 책을 읽는 셈이다. 전철 안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중년 신사는 이 구간을 이용하는 승객들 사이에도 소문이 났다.
정착 후 마을 주민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음은 물론이다. 신복리 중 노씨네가 사는 3구는 가구 수가 100여 호인데, 원주민과 이주민의 비율이 반반 정도 된다. 이러다 보니 토박이들의 텃세가 그다지 강하지 않은 데다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노씨 가족은 마을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원주민들과의 접촉을 늘렸고, 어렵지 않게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노씨의 훌륭한 농사 스승이 되고 있다.
요즘 노씨의 가장 큰 관심사는 토종 종자를 재배하고 보급하는 것. 농업에 눈을 뜨면서 생산량은 떨어지지만 병충해에 강하고 맛도 좋은 토종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현재 노씨네 집 옆 텃밭에는 토종 밀이 파란 싹을 밀어올리고 있다. 노씨는 밀 이외에도 기장·갓끈동부·오이·흑임자 등 그동안 구해둔 토종 농산물의 종자를 증식해 재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예닐곱 해 동안 집안일·밭일 등 농촌살이 적응에 바빴던 아내 박씨는 최근 들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서서히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이웃 주부 7명과 함께 독서 모임을 꾸린 것. 매주 금요일에 모이는 독서 모임에서는 생태·환경·먹을거리에 관한 책들을 읽은 후 의견을 교환하는데, 박씨는 이 모임의 좌장 격이다.
부모들이 도시 문명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 만큼, 노씨 부부의 두 자녀 또한 기존의 보편적 삶을 거부한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다. 아들 청규(26)는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광고홍보학과에 다니던 중 지난해 진로를 바꿔 홍성에 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에 입학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청규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제 길을 만난 것에 만족해한다.
딸 연주(18)는 충남 금산에 있는 대안고등학교인 간디학교에 다니고 있다. 사실 연주가 고등학교를 결정할 당시에는 온 가족의 고민이 컸다. 중학교 3년 동안 죽 우등생이었던 데다 담임선생님이 외국어고등학교에 보내려고 찜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류에서도 남에게 빠지지 않는 아이가 사회의 기성 틀을 벗어난다는 게 아까웠지만, 노씨 부부는 모든 것을 딸에게 맡겼다. 그리고 연주는 며칠 고민한 끝에 스스로의 진로를 결정했다.
삶의 방식과 방향은 분명히 정해졌다
“주말인데 다들 왜 이리 바빠. 일어나. 내가 막국수 한 그릇 쏠게.”
남한강에서 유명산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언뜻 봄기운이 실렸을 듯도 싶은 겨울 오후. 노희선 씨가 생떼 쓰듯 아내와 두 자녀를 밖으로 이끈다. 아내 박씨는 신복리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 싶어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두 자녀는 각각 인도 여행 준비와 영화 제작법 공부로 바쁘다. 사실 노씨가 짐짓 떼를 쓰는 데는 생태 마인드로 보나 지식으로 보나 이제는 식구 중에서 자신이 가장 뒤진다는 속내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두어 해 전만 해도 이론 무장의 정도가 아내 박씨, 노씨 자신, 아이들 순이었는데, 아이들이 배움의 길을 가며 자신을 앞지른 것이다.
하지만 노씨는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노씨의 꿈은 아들 청규가 풀무학교를 졸업한 후 양평보다 더 깊숙한 시골로 함께 들어가 멋지게 농사짓는 것이다.
노씨 가족의 삶의 방식과 방향은 분명히 정해졌다. 과연 이 아웃사이더들은 앞으로 어떠한 이력서들을 써나갈까. 도란거리며 막국수 집으로 향하는 노씨 가족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출처 :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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