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관광, 이제 다양성과 차별성이다
강 신 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오지 농촌마을의 활로는?
7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로 앞다투어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앞세대들은 가난한 고향을 버리고 일자리와 희망를 찾아 도시로 나갔다. 우리는 이것을 이촌향도(移村向都)라 부른다. 이촌향도는 먼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농업은 개방화․국제화 물결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농가는 감당하지 못할 규모의 부채더미와 불안정한 소득구조 속에서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농촌환경은 무차별적인 난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 농촌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농어촌 지역의 인구는 1965년 55.1%에서 1900년에는 15.5%, 2002년에는 7.5%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와 같은 인구감소는 생산력이 있는 청장년층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져 인구의 공동화와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50세 이상 고령인구가 농촌인구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농촌에서 50세면 청년소리를 듣는다. 갈수록 일손은 부족해지고 빈집은 늘어만 간다.
생산기반도 약화되고 있다. GDP대비 농림어업의 생산비중은 1990년 8.5%에서 2002년 3.7%로 20년간 1/4정도 감소하였다. 농가경제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도ㆍ농간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1990년 농가소득이 도시가구의 97.4% 수준이었으나 2002년에는 73%로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한편 WTO 뉴라운드의 농업협상과 중국의 WTO 가입 등으로 새로운 환경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 농가 소득의 하락과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경쟁력은 낮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고도로 집약적인 농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화학비료나 농약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한 농업은 이제 거꾸로 농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농산물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고 농지의 산성화를 가속화시켰다. 뿐만 아니다. 농촌지역은 무계획적인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농촌 곳곳에 고층아파트, 공장, 도로가 들어서면서 급속히 훼손되었고, 경관이 수려한 지역이면 어김없이 러브호텔과 음식점이 들어서 농촌고유의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이로 인한 농업용수 오염은 정상적인 농업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분별없는 도시민들로 인한 위화감은 농촌공동체의 해체를 부채질하고 있다.
농촌관광, 농촌도 상품이다
이제 농촌과 도시가 상생(相生)하기 위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도시로 향하는 이촌향도(移村向都)가 아니라 도시에서 농촌으로 향하는 이도향촌(移都向村)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 바로 농촌관광(green tourism)이다. 소비자인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찾아와 쉬고 체험하며 농산물을 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도시민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으며,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도시민들은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으로부터 탈피하여 물질적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와 여유 그리고 활력을 회복하려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농촌에게 더 할 수 없이 좋은 기회이다.
오늘날 농촌이 풀어야할 핵심과제는 ‘어떻게 농촌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농가 소득을 증대하고, 나아가 농촌 지역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가’ 이다. 농촌을 둘러싼 환경이 시장경제라는 큰 틀 속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어 그간의 ‘농업=생산’, ‘농촌활성화=농가소득 증대’라는 고정관념과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그 대안은 바로 농촌이라는 하드웨어에 관광서비스란 소프트웨어를 접목하여 농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도시민들은 답답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여가활동에 대한 욕구를 더욱 강하게 표출하고 있으며, 농촌지역의 아름다운 경관, 문화자원, 농산물은 도시와는 다른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농촌관광 활동은 대규모 리조트와는 달리 자연파괴를 최소화하면서 농촌의 풍부한 자연과 문화,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이어야 한다. 도시민들이 농촌의 가정에 체류하면서 농촌생활을 체험하고 그 지역사람들과 교류하며 여가활동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농촌주민이 주체가 되어 소규모 투자로도 다양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농어촌개발을 촉발하고 유지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제 농촌도 상품이다. 마을도 브랜드(brand)이다. 마을을 상품으로 인식하고 팔아야 한다. 판다는 말에 거부감을 가질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지역을 좀더 매력적인 곳으로 알리자는 것이다. 장소마케팅(place marketing)이란 게 있다. 어떤 지역을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고, 기업과 주민, 관광객이 선호하는 이미지와 제도, 시설을 갖추어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기업이 찾도록 지역의 상품가치를 높여 활성화하려는 전략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로 국내 농업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서 ꡐ농촌관광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각 부처에서는 농촌관광 관련 시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현재 관련 사업은 농림부ꡐ녹색농촌체험마을ꡑ, 농촌진흥청 ꡐ전통테마마을ꡑ, 행정자치부 ꡐ정보화시범마을ꡑ, 농협 ꡐ팜스테이마을ꡑ 등 6개 부처 11개 사업으로 약500개 마을이 선정되어 추진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농촌관광팀을 신설하거나 체험마을을 지정하여 지원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농촌관광마을개발은 도입기를 지나 양적 확대기로 접어든 상태이며, 이제 질적 도약(質的 跳躍)을 모색할 단계에 왔다.
ꡒ맞춤시대, 차별화만이 살길이다ꡓ
문제는 많은 수의 농촌관광마을이 개발되었음에도 지역 특성을 살려 차별화되지 못하고 비슷비슷하게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의 획일적인 선정기준과 융통성없는 사업시행체계가 문제이며, 주민들의 판에 박힌 아이디어, 전문가들의 막연한 전망과 기대도 문제이다.
지금은 맞춤시대이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인 도시소비자의 니즈(needs)에 맞추고 동시에 마을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 찾는 장소마다 취급하는 제품이 비슷하고 분위기 또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최대, 최초ꡑ가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ꡐ온리원(Only one)전략ꡑ이 필요하다. 농촌관광마을의 차별화는 있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마을의 자원을 찾아 아이디어를 덧붙여 상품화하는 안목에서 출발한다. 벤치마킹은 필요하지만 단, 베끼기와 복제품이 늘어나면 함께 망하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비전과 사업영역(Vision & Domain)의 차별화이다. 전국의 마을수는 줄잡아 4만7천개. 도시민이 기억하고 다시 찾는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마을과 구별되는 특성이나 개성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마을에는 없는 장점 한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독특하고 의미있는 차별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테마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원 화천군 토고미마을의 ꡐ고향이 되어드립니다ꡑ, 충남 서산시 오학리의 ꡐ별마을, 꿈과 상상력을 채워 드립니다ꡑ가 좋은 예이다.
둘째, 상품(Product)의 차별화이다. 마을의 대표 농산물과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이때 농촌다움으로 컨텐츠, 즉 상품을 기획하도록 한다. 농산물뿐만 아니라 추억과 향수를 만드는 체험프로그램과 축제도 상품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체험과 민박 등 서비스를 함께 판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산물은 최대한 가공을 거쳐 부가가치를 높이고, 여기에 농촌관광을 소비자를 불러들이고 이야기를 덧붙여(storytelling) 판매를 하자는 것이다. 향토음식과 민속주 등 먹거리와 아름다운 경관도 상품이 될 수 있다. 모든 마을이 민박, 체험프로그램, 농산물로 승부할 수는 없다. 마을이 처한 입지여건이나 능력에 따라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셋째, 과정(Process)의 차별화이다. 농산물을 보다 신선하게 판매하고 체험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농촌마을이 대부분 시장과 원거리인 만큼 농산물은 택배와 전자상거래를 주로 하면서 소비자를 농촌관광으로 유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품질향상으로 방문객 만족을 도모하고 결과적으로 수익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농촌관광에서는 좋은 서비스와 프로그램, 감동적인 체험이 핵심상품이고 경쟁력이다. 마음을 담아 도시민들이 기대하지 않은 1%를 더 전달해야 한다. 서비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으로 전달과정이 중요하다. 즉, 똑같은 체험프로그램도 진행자에 따라 만족도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People)의 차별화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비전과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이 핵심이다. 주민들 스스로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루아침에 능력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실전경험과 이을 통한 학습, 노하우를 나누어야 함은 물론이다. ꡐ어떤 사업을 하느냐ꡑ가 아니라 ꡐ누가 하느냐ꡑ가 중요하다.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 지도자의 열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행정은 주민들을 이끌어가기보다 도와주는 도우미역할을 해야하며 전문가는 주민들과 행정을 응원하는 응원단이 될 필요가 있다.
“창조적인 농촌”을 꿈꾸자
농촌관광으로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변화와 희망’이 동시에 필요하다. 언제까지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지원해주는 대로 미래를 맡길 것인가. 농촌주민 스스로 나서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까지 과거처럼 획일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정책은 농촌주민 스스로 나서도록 동기를 부여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 비로소 지역의 자연이 살고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부터 변해보자. 내가 한번, 나부터 한번 해보자. 남은 안 하더라도 우리 마을부터 해보자’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래서 간단한 것, 쉬운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꾸고 변해야 한다. 도시민을 불러 오자고 큰 돈 들여 대형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태도는 위험하다. 도시를 모방하고 도시의 관점에서 봐서는 안된다. 흔히들 쉽게 권하는 민박조차 평생 농사만 짓던 농민들에게는 벅찬 벤처사업(venture business)이다. 주민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농촌이 농촌관광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활로를 찾는 ‘창조적인 농촌(creative community)’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 스피드가 경쟁력인 시대라고 말한다. 농업과 농촌환경도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와 변화능력이야 말로 생존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판에 박은 아이디어 경직된 행정으로는 농촌관광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안목과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다.
창조의 세 가지 요소는 세심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과 무한한 실험정신이라고 한다. 감수성이란 세심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자원이 될 만한 것들 상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트렌드 변화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다. 상상력이란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롭고 엉뚱한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실험정신이란 떠오른 아이디어를 집중력과 인내를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농촌관광이라면 지금까지 개발해오던 관광지와는 그 기준과 방식이 달라야 한다. 관광지개발이라고 하면 모든 지역이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과 화장실을 만든다. 주변으로 땅값이 오르고 가든과 러브호텔이 들어선다. 이제 달라야 한다. 골짜기마다 들어앉은 산간 농촌마을은 그 자체가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어느 곳이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가 있고, 농산물이 있다. 사람이 살아온 얘깃거리가 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농촌마을마다 역발상 아디이어로 새로운 농촌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만들어 찾아오는 도시민들에게 체험을 제공하고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변화하는 주민, 응원하는 행정
이러한 농촌 가꾸기를 위해서는 주민들 스스로 안목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가만히 앉아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눈을 넓히고 도움을 받으려면 부지런히 발 품을 팔아야 한다. 앞서 나가는 지역을 견학하고 사람을 찾아 다녀야 한다. 민박을 할 마음이 있다면 특급호텔의 서비스를 내가 먼저 체험해 봐야 집 떠난 관광객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감동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특산물의 개발과 판촉활동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익혀야 할 지식은 너무도 많다.
흥하는 마을, 망하는 마을의 차이는 철저히 분석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토의하고 멀리 크게 보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생각, 아이디어를 모으려면 주민들끼리 단합하는 마을의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상호불신은 최대의 적이다. 남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뒷다리를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단 결정되면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할 것이다. 뛸 사람, 걸을 사람, 앉을 사람 각자 능력에 맞게 역할을 분담하되 남이 뛰고 걷는데 방해하진 말아야 한다.
주민들 스스로 새로운 눈으로 농촌에 잠재된 자원과 능력을 재발견해야 한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런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행정은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기보다는 주민들에게 보다 많은 교육과 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응원자(supporters)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농촌관광을 통한 농촌활성화는 가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