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 마을의 아침, 마당에 장독대가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몸을 녹이고 있다
긴물은 장수(長水)다. 그 이름대로 금강이 발원하여 흐른다. 주변으로 산이 높고 골짜기가 많아 물이 깨끗하고 풍부하다. 산 중턱에도 샘이 있고 평평한 곳이 있어 예부터 장수 일대에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들어온 교인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기도 했다. 모두 떠나고 비어 있던 마을에 들어와 차를 덖으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다.
↑ 후장천의 물은 정동(正東)으로 흐른다. 후장천은 삼장마을까지 흘러서 금강 본류에 합류한다. 정동 마을의 눈은 녹으면 바다가 된다.
장수군은 전라북도의 동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경남 거창, 함양군과 도계를 이루고 있다. 장수군 북쪽의 남덕유산(1507m)에서부터 시작해 할미봉(1013m)~구시봉(1014m)~영취령(1075m)~백운산(1279m)~월경산(980m)~봉화산(919m)~시리봉(776m)~고남산(846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장수군 동쪽에 담을 치고 있다. 서쪽으로도 성수산(1059m)~팔공산(1147m)을 잇는 능선이 둘러쳐 있다. 장수는 산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물이 많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장수의 중심에서 금강 본류로 합류한다.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에서 발원한 금강은 장수의 남에서 북으로 흘러 무주와 영동 땅에서 굽이치다가 옥천~세종~공주~논산까지 휘돌고 군산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 정동 마을은 540 고지에 있다. 정동 마을을 품은 성수산의 정상은 1059m다. 마을에서 성수산 능선까지는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사람 다닌 길의 흔적이 없어 놀러 온 손님들이 홀로 산책을 나섰다가 산 너머 마을까지 내려가는 일도 종종 있다
금강 본류에 합류하는 많은 지류들 중 하나인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의 후장천 상류에는 정동 마을이라는 작은 산간 마을이 있다. 서쪽으로 성수산 능선이 병풍을 치고 있어서 해가 더 일찍 넘어가고, 눈 많은 곳인데다가 산그늘까지 지는 바람에 겨울이면 눈이 녹지 않아 차가 다닐 수 없는 마을이다. 장수읍에서 불과 1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첩첩산중이라 느끼는 곳, 정동 마을.
↑ 학창 시절부터 불교 공부를 하면서 차를 마셔 온 유씨 부부는 차 마시는 일이 삶의 일부다. 그들이 산에 들어와 살면서부터는 차를 사서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차를 만들어 마셨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눈
"천천 내리세요."
무진장 내리는 눈과 제법 긴 여정을 지루해 하던 중 버스 기사가 짧게 외쳤다. 마침 버스 특유의 메슥대는 온기 속에서 지쳐가던 터였다. 버스에서 내린 그곳엔 바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칸막이만 있는 정류장만 있을 뿐이다. '천천히' 내린 천천면은 내리자마자 혼잡한 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게 놀리게 되는 도시의 터미널과는 사뭇 다르다. 수많은 출입구를 두고도 헤매는 일 없이 진로를 찾아가는 도시인은 오히려 이정표가 없는 한산한 곳을 두려워 하나보다.
마을 안쪽까지 들어가려면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정동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지나치는 삼장 마을 초입에는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파수꾼인 듯 서 있다. 택시는 사람 발자국조차 없는 눈길에 두 줄의 바퀴자국을 내면서 삼장 마을을 지나쳐 갔다.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중에 택시가 멈춰 선 곳은 하천을 건너는 다리 위였다.
"여기에서 더 올라가다가 못 가게 되면 차 돌릴 곳이 없어서 못 나와요."
다리를 건너서 이어지는 길은 지나 온 길보다 더 좁아 보였고, 더 가파르다. 택시는 온 길을 되돌아갔다. 눈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쌓여 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눈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스패츠를 착용하는 사이에 눈길을 걸어 내려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눈길을 마다치 않고 먼 데서 온 손님을 맞으러 나온 유원만 씨다. 그가 내려오면서 만든 발자국을 따라서 산속에 숨은 마을로 올랐다.
"여기는 11월부터 3월까지 눈 오는 때면 자동차로는 못 다녀요."
작은 다리가 있는 곳부터 유씨의 집까지는 약 1.2km 거리다. 비포장도로는 아니지만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길이 막힌다. 정동 마을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아예 차를 작은 다리 있는 데에 세워두고 집과 다리 사이를 걸어 다닌다. 폭설이 내려도 지하 주차장에 차를 두면 눈 하나 맞지 않으면서 다닐 수 있는 도시의 생활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이 길은 밤에 다니면 참 좋아요. 하늘에는 별들이 떠 있고, 그 아래 하얀 눈이 깔려 있어서 어둡지도 않아요."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
마을에 닿자 아랫집에 사는 개 두 마리가 낯선 손님을 향해 짖었다. 막막한 산중에 개들이 짖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마을은 산의 크고 작은 능선들에 안겨 있다. 마을의 계곡은 성수산 동북쪽 사면에 있는 여러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과 함께 후장천이 된다. 후장천은 삼장마을을 지나서 금강 본류에 합류한다. 이 흐르는 물의 방향이 정동(正東)이라서 마을 이름도 정동이다.
정동 마을에는 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두 집밖에 살지 않는다. 그나마도 2012년 11월에 아랫집이 귀농해 들어와 살면서 두 집이 있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유씨 부부만 사는 한 가구 마을이었다. 유씨 부부는 2002년부터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
유씨 부부는 귀농을 할 뜻을 갖고 거창, 진안, 장수 등지로 터 잡을 곳을 찾아다녔다. 그들이 터 잡을 곳의 조건은 뭇사람과는 달랐다. 그들이 내건 조건은 "첫째로 돈 안 되는 땅일 것. 즉, 개발 가능성이 없어 땅값이 오르지 않을 곳. 그리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이고, 물이 많은 곳"이었다.
"집사람과 여관방 생활하면서 지도책 펴놓고 저희가 터 잡고 살 땅을 찾아 다녔어요. 지도에 점찍어 두고, 면사무소나 마을이장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직접 가서 보았죠."
유씨 부부가 정동 마을을 처음 찾은 때는 겨울이었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농로가 정비돼 있지 않은 비포장 도로였다. 그들이 눈길을 걸어 올라와서 본 마을은 폐촌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지붕이 무너져 있고, 그나마도 남아 있는 양철 지붕은 노랗게 녹이 슬어 있었어요. 무너진 집 한 가운데로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죠. 몇 채 남은 집은 다 허물어져 가고 있었어요. 으스스한 첫 인상에 발길을 돌렸었죠."
그러나 그들은 다시 이곳을 찾았다.
"다른 곳을 돌아다녀 봐도 마땅한 땅이 없었어요. 내 마음에 맞는 땅은 땅 주인이 안 팔잖아요. 또, 내 마음에 안 드는 땅은 사라고 하잖아요. 내 마음에도 들고, 살 수도 있는 땅은 드물잖아요."
두 번째로 정동 마을을 찾은 그들은 "십년 정도 고생하면 마을이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라고 마음을 정했다. 마침 그때 땅과 인연이 되려는 것처럼 땅 주인이 빚에 몰려 있었고, 땅을 팔기 위해 내놓은 상태였다.
"어쩌면 그게 썩은 고기를 잡은 거였는지도 몰라요."
땅의 명의 이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돈을 다 받은 땅 주인이 야반도주를 했던 것이다. 졸지에 땅이 경매에 올라갔고, 유씨 부부는 땅에서 쫓겨나게 될 판이 됐다. 다행히도 도망간 땅 주인이 붙잡혀 유씨 부부는 우여곡절 끝에 정동 마을에 터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정동 마을에 들어올 때 땅값으로 평당 만원을 주고 들어왔다. 원래는 평당 5천원 정도 하는 땅이었다는 것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 도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거창, 진안에 알아보던 땅은 당시 평당 4만원 정도였으니, 평당 만원을 주고 샀어도 잘 샀다고 한다.
↑ 대접 받은 저녁 밥상에는 대구탕과 과메기 무침이 올라와 있었다. 며칠 전 부산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 가져 온 것들이라고 한다.
천주교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온 마을
휴대전화가 상용화되면서부터 우리는 전파가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에 따라 오지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도 한다. 정동 마을에서는 전화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위치에 따라서 잘 되는 곳이 있고 안 되는 곳이 있다. 또, 집에서는 전기는 물론이고 광랜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광랜은 작년에나 들어왔다. 그 전에도 조금은 느리더라도 인터넷 사용은 했다고 한다.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산간 마을에서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 물어보았다. '걱정할 것이 무어 있겠냐'는 듯 답변들이 돌아왔다. 눈이 내려서 찻길이 막히기 전에 필요한 가스고, 먹을거리며 전부 미리 들여놓는다. 그리고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먹을 것을 주고 가기도 한다.
"수도는 안 들어올 텐데 물은 어떻게 하나요?"
"뒤에 샘이 있어요."
정동 마을은 박해 받던 천주교인들이 피난 와 일군 마을이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샘을 유씨 부부가 들어와 살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정동 마을에는 천주교인들의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유씨 부부도 이곳에 살았던 아랫마을 어른들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옛날부터 여기가 부자 마을이었어요. 피난 온 사람들이 지식인이었잖아요. 그들이 피난을 왔지만 아랫마을 사람들보다 배운 게 많으니까 경제활동이 달랐던 거죠. 그래서 아랫마을에서 여기 윗마을로 도지세 주러 지게 지고 올라오곤 했대요."
보통 산골마을이라고 하면 화전민 마을이 떠오르면서 어렵게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유씨의 말은 뜻밖이었다.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집터는 부잣집 터였대요. 옛날에 여기 살던 사람은 총 들고 사냥하러 다녔다고 해요. 근데 저희가 들어올 때는 다 비어 있었죠."
↑ 유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순이’. 차를 만들어 팔면서부터 함께 살아온 순이는 유씨 부부의 가족이다.
구들장 하나 건질 새 없었던 그날의 물난리
유씨 부부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새로 집을 짓지 않았다. 그냥 빈 집에 들어와 살았다. 갈라진 벽 틈으로 햇볕이 들어와 안을 비추는 그런 집이었다. 누우면 등은 뜨겁고 코끝이 시린 집에서 3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머리 위로 쥐가 돌아다니는 곳에서 유씨 부부는 "낭만적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친구들 오면 주야장천 술 마시고, 낮에 시간 나면 농사지으며 살았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없이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살았으니까요."
산 살림이 차차 안정돼 가던 시기에 유씨 부부는 난데없는 물난리를 겪었다. 그때 홍수로 허물어져 가던 집들도 휩쓸려갔다.
"불이 나면 구들장이라도 하나 건진다고 하지만, 물난리에는 구들장 하나 남는 것 없이 다 쓸려갔어요. 결혼반지랑 옷가지들 하나 건질 새 없이 쓸려 갔어요. 자다가 일어나서 겨우 산 능선으로 피해 목숨만 건졌어요."
유씨 부부는 물난리로 살고 있던 집을 잃었다. 지금 창고로 쓰고 있는 헛간만 그때 당시에 쓸려 가지 않아서 그곳에 합판을 깔고, 난로 피우면서 살았다. 그해 가을에 정부에서 수해복구 지원금과 지인의 도움으로 겨울을 날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지금은 행랑채로 쓰고 있는 조그마한 방 두 칸짜리 별채다. 계곡에서 돌 주워와 구들 놓고, 홍수로 떠내려 온 나무로 서까래 올리며 지은 집이다. 이듬해 봄부터 시작해 꼬박 1년 걸려 지은 본채도 그렇게 지었다.
↑ 정동 마을에서 차를 덖으며 살아가고 있는 유원만, 박일안 부부. 겨울이면 길이 얼어 찾아오기 힘든 곳에 살아도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집을 짓고 나니까 빚이 생겼어요. 그 전까지는 경제활동을 거의 안 했었는데, 빚을 갚으려니까 돈을 벌어야겠더라고요."
유씨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한 일은 평소에 만들어 마시던 차를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다. 불교계의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에서 자원 봉사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씨 부부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 꾸준히 차를 마셔 왔었다. 귀농을 한 유씨 부부는 차를 사 마시는 게 돈이 많이 들어가자 직접 차를 만들어 마셨었다. 그러면서 지인들에게 직접 만든 차를 나눠 주었고, 맛이 좋다는 평을 받아왔었다. 처음 판매하기 위해 내놓은 차가 '서리 맞은 뽕잎차'다. 수제차를 팔기 시작한 지 7년, 지금은 대표 차인 '긴물차'를 비롯해 '어린 쑥차', '생강나무 작설차' 등 10여 가지의 차를 만들고 있다.
유씨 부부는 "인복이 참 많다"고 한다. 홍수가 나서 집을 잃고, 새로 집을 지을 때에는 집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찾아왔고, 찻잎을 따는 때가 되면 사람들이 찾아와 차 만드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공간이 오지라고 해서 외로운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살아도 마음이 오지인 게 더 외로운 거죠."
산의 능선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에 풍경이 울린다. ⓜ
출처 : 하늘내린터 귀농귀촌 힐링캠프
글쓴이 : 하늘내린터(김황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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