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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내린터의 정신세계/하늘내린터 이야기

[스크랩]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2006.7.15 10시 하늘내린터는 이러했습니다.

2006년 7월 15일 오전 10시경 인제,평창지역을 휩쓴 수해는 저의 모든것을 앗아갔었습니다.

 

빈촌 빈농 출신으로 평생꿈을 키워오며 박봉의 군인공무원 급여를 쪼개어 모아

근무지를 계기로 강원도 인제에 연을 맺은이후 이곳 하늘내린터에 고향을 심고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당시 오지 황무지에 불구했던 하늘내린터터를 구입하여 6년 가까이 휴가기간과 주말을 이용

순수한 저의 땀과 열정만으로  능력범위내의 모든것을 올인하여

자연휴양농원 기반시설및 자원조성을 완료하고 정주할 집을 설계하여 착공하는 단계였습니다.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의 통학 때문에 읍내에 머물던 저는 다행히 수마를 피했으며

모든 도로가 끊겨 3일만에야  5시간을 산을 타고 걸어서 농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모든것이 묻히고 사라진 농원에 구사일생을 한 농원지킴이 우리 진돌이 네마리가 울부짖으며

저를 반겼었지요. 

기가 막혔습니다. 그 참담함에 눈물도 나오지않아 망연자실 주저앉아 하늘만 쳐다보았었지요.

 

그 이틀후 도로가 응급복구되어 현장을 돌아보시던 어머니의 통곡소리는

지금도 저의 가슴을 찢습니다. 

건강하시던 칠순의 어머니는 그때 그충격으로  다음해 이른봄 수해복구중에

쓰러지셔서 끝내 돌아가셨지요.   수해가 저를 평생 씻을수없는 불효까지 하게 만든겁니다.

 

목이 메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좌절만 하고 있을수는 없었습니다.

 

인제에서만 수백채의 집이 매몰 또는 유실되고 31분의 사망실종등 인명손실이 있었으니

실종된 가족을 찿아 울면서 하루종일 내린천과 소양호를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시는 그분들 보다는

제가 그래도 백배 낳았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사람은 가장인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복구 재기의 삽을 들었습니다. 주변을 환경친화적으로 정리하는것은 제가 할일이었구요. 

정부의 특별재난지구 선포에 따른 수해복구지원에서 제가 받아드려야할 권리를 찿았습니다.

 

저의 농원내에서 발생한 수해피해는 수백년 빈도의 천재지변으로 받아들였지만

농원을 덮친 국유림의 산사태로 인한 피해는 마구잡이 숲가꾸기와 무계획적인 임도 개설등

당시 잘못된 산림정책과 산림사업을 지적했던

저의 지론대로 산림청과 그 산하의 행동조직인 인제국유림관리소의 책임이었습니다.

 

행정절차가 쉽지는 않았지만 끈질기게 열심히 논리적으로 근거를 정리하여

관련공무원들을 설득하고 처리해줄 근거가 없어 그들 힘으로 안되는 부분에서는

정부라는 거대한 공룡을 직접찿아 정책 공무원들과 때로는 다투어가며 규정과 방침을 이해시켜

자치단체 현장공무원에게 지침이 내려가도록하였습니다.

 

덕분에 순박하고 무지한 전국의 수해피해자들에게 그때부터 새로운 방식의 피해복구및

보상체계가 만들어지면서 혜택이 돌아가게 한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어쨋든 각고의 노력끝에 생각조차 싫은 수해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수해복구비용중 일부를

국비를 지원받아 수해복구를 하고 저의 요구에 맞게 복구설계가 반영되도록 노력하였읍니다.

 

이후 1년간의 복구공사는 생태농원을 추구하는 자연환경친화적인 복구를 요구하는 저와

삭막한 콘크리트 공사로 이루어진 근시안적인 설계의 시방서를 준수하려는 감리단과  감독관

불필요 공사 늘이기등 한푼이라도 더 이익을 남기려는 공사업체와의 숨박꼭질이었습니다.

 

수해복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은 감동과 파격 그자체였지만

이를 호기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착각하는 외지 건설업체와 부패한 공무원들..

특히 과거 영림서 시절의 구태를 벗지못하는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의 상처받은 영혼들은

썩을대로 썩어 있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저와 시도때도 없이 부딪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 이기주의에 몰두하여 마을과 지역발전에 대하여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무관심 마을주민들의 안타까움과 마을 자치로 수해복구 권한을 일부 위임받은 마을 지도자들의

자질 한계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수해복구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위해 너무 힘들고 버거웠지만 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면서

농원의 경관에 영향을 미치는 무관심 인접 타인 소유 토지까지 공사범위를 확대하여

행정관서의 지원을 요청하고 자비를 들여 복구해준 타인토지 소유주들이 복구가 완료된

이제와선 누가 해달라고 했느냐식의 반응은 차치하고

 

사전 협의에 의해 복구 회복해준 부분까지도 남의땅을 허락없이 수해복구 했다고

억지를 부리며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태에 참을수없는 분노도 느꼈습니다.

더욱이 혈연 지연 학연에 엮어진 악성민원을 받아들여 자기들이 해놓은 수해복구를

수해이전 상태로 원상복구하라는 행정관서의 작태는 지역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였습니다.

제가 농촌환경운동에 뛰어든 계기였습니다.

 

귀농 귀촌인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지구 온난화에의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있어 자연앞에 더욱 경건해야 할때입니다. 

만에 하나 앞으로 저와같은 피해를 보시는 님이 계시면 기꺼이 피해복구절차의 모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저처럼 없는 집안에서 각박하고 척박한 도시에서 부대끼는 삶의 멍에 를

농촌과 자연에 내려놓고 맨손으로 욕심없이 자연에 흡수되고픈 귀농 귀촌인들에게

졔가 피눈물을 흘렸던 사례를 알려 꿈과 용기 그리고 할수있다는 자신감을 드리고싶습니다.

 

저에게 엄청난 좌절과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어머님까지 앗아간  기가막힌 수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삼은 그결과를 보여 드리면서

지금의 하늘내린터가 쉽게 이루어진것이 아니고 저의 눈물과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가 있었음을

부끄럽지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복구기간 저의 농원을찿아 격려와 용기를 주신 모든분들께 이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6년7월 15일 오전 10시 당시 수해모습과 함께 2년여동안  수해복구하는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귀농귀촌하신 회원님들 올해 장마가 일찍 찾아왔습니다. 수해에 대비 잘하십시요.

 

 

 

 

 

 

 

 

 

약 2년여에 걸쳐 저의 모든것을 정지시키고 지치게한 당시 수해복구공사 모습입니다.  

 

 

 

 

 

출처 : 하늘내린터 귀농귀촌 힐링캠프
글쓴이 : 하늘내린터(김황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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