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잎채소 년16억매출 대박 낸 박사농부 [조선일보 2013.2.5기사]
<천춘진 애농영농 대표가 비닐하우스에서 자신이 경작하고 있는 마이크로 채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2004년 4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작년에 16억원으로 늘어났다.>
日서 가져온 궨마이크로 채소 연구용 비닐하우스서 재배 성공 ㎏당 3만원 넘던 비싼 원가 수확량 2배 늘려
절반으로 작년 매출 16억원 달성
12년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2004년 3월 고향인 전북 진안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해외 박사 실업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도쿄농업대학에서 2002년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가와다(川田)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원을 지낸 고학력자였기 때문이다. 천춘진(42) 애농영농 대표이야기다.
처남 이정봉(47)씨는“편한 연구원 자리 팽개치고 다 망해가는 농촌에서 뭔 고생이야”라며 혀를차기도 했다.
귀국 4개월 만에 셋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기저귀 살 돈이 없었다. 부부싸움도 늘었다.
천 대표는 생계를 위해 정원수 재배 농가에서 일당 5만원에 날품팔이를 해야 했다.
이 모습이 딱했는지 진안군이 계약직 7급 공무원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사에 뜻을 둔 그는 거절했다.
일본에 있던 그가 2003년 9월 추석을 맞아 고향에 들렀을 때 농민들사이엔“외국 농산물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당시기억을 떠올리며 그는“전근대적 방식만 고집하다 한국 농업이 고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농업을 밑바닥부터 살려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주위의 비웃음 속에 그는‘상품’개발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비타민(다채) 경수채 청경채 등 채소 씨앗 10종류를 가져왔다.
3주 정도 키워서 잎이 어릴 때 수확하는‘마이크로채소’였다.
천 대표는 식단이 서구화하는 한국에서도 샐러드용 마이크로채소가 통할 것이라고 봤다.
연구용 비닐하우스에서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결국 재배에 성공했다.
문제는 판매였다. 식당 주인들은 손사래를 쳤다.
당시 한국에선 샐러드를 만들 때 큰 채소를 잘라서 썼지 어린잎을 이용하진 않았다.
전주의 유명 레스토랑에 갔다가“당신 같으면 이 비싼 걸 사 먹겠느냐”는 호통만 듣고 쫓겨났다.
유기농으로 재배했기 때문에 1㎏ 채소 한 봉지가 무려 3만원이었다.
다시 원가를 낮추는 연구가 시작됐다. 그는 생산량 증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판에 뿌리는 씨앗의 양과 묻히는 깊이, 물을 주는 빈도와 양에 변화를 주는 한편 쌀겨를 발효시켜 병충해를 억제하고 영양분을 만드는 미생물을 투입했다.
한 달 평균 10여 차례, 1년 4개월간 무려 160여 차례 실험을 계속했다.
그 결과 2005년 8월부터 동일한 모판에서 2배량을 수확할 수 있었고 판매 가를 절반인 ㎏당 1만5000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이때부터 매출이 급증했다.
2004년 첫해 400만원에서 2006년엔 1억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16억원을 기록해 8년 동안 400배 성장했다. 지금은 직원 30명을 고용해 80여동(총 비닐하우스 13,000평(4만3000㎡)을 경작한다. 9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천 대표는 진안에서 친환경농업인 연합회를 2011년 9월부터 이끌고 있다.
그를 따라 회원 34명이 벼농사는 물론 무 배추 당근 고추 상추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외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세계 농식품 시장은 자동차 시장의 3배 규모입니다.
국토의 절반이 사막인 이스라엘의 농산물이 유럽 시장을 장악하듯,
농업 경쟁력은결국 기술력과 마케팅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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