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성공을 배운다
이환의 (홍성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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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본부 홈페이지 사랑방에 올리신 글입니다
실패의 경험을 통한 배움이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싶어 옮겨옵니다.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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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누구든지 실패를 하고 나면 후회가 뒤따르게 되고 때로 위축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귀농, 귀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실패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나와 가까이 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몇 번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실패한 경험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성공의 경험이 실패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칭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로 갔지 이 자리에 서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1. 심기만하면 풍성히 거둘줄 알았던 감자 농사
시골에 내려와 첫농사를 시작한 98년 3월, 귀농동료들과 함께 이웃동네 주민에게 씨감자를 한 상자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심었습니다. 당시 평당 2만원을 주고 산 밭에 질 좋은 거름을 듬뿍 내고 직접 경운기로 갚아엎은 후 쇄토작업을 하였습니다. 이어 두둑을 만들어 감자를 심고 비닐을 씌웠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얼마를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은 곳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이미 올라온 싹도 크다가 죽는 일이 잦았습니다. 5월이 지나 수확기가 얼마 남지 않은 6월초까지 우리 감자밭은 다른 분들의 밭처럼 잎으로 무성하게 덮이기는 커녕 죽은 곳이 더 많았고 살아남은 감자의 자람세도 다른 집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캐어보니 이미 씨감자가 썩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결국 6월 초순경 결단을 내리고 감자를 캐어보니 총 40kg 쯤 되더군요. 20kg을 심었으 겨우 두 배 수확을 본 셈입니다. 그때 같이 씨감자를 산 동료는 이후 약 30여배인 600kg을 수확했습니다. 그이는 하우스에 모를 부었고 중간에 밭이 만들어지지 않아 첫 번째 순을 모두 잘라내고 두 번째 순이 났을 때 심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왜 실패한 것일까요? 경험해보니 감자처럼 쉬운 품목도 별로 없는데....
*질논을 밭으로 만든 곳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질은 곳은 감자나 무 등 뿌리 작물이 잘 안되지요.
2. 고생만 죽도록 하고 한 뿌리도 먹지 못한 도라지
감자의 참담한 실패에 이어 이듬해인 저는 도라지에서도 쓰디 쓴(?) 맛을 보았습니다. 보통 도라지는 시골에서도 주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심는 품목입니다. 대개 일년작인 다른 작물과는 달리 도라지는 최소 2년은 키워야하고 그 사이 풀을 매는 일이 다른 작물보다 몇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진득하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농군들은 제풀에 지치는 작목이지요.
하지만 귀농 둘째해에 넘치는 의욕만으로 도라지씨를 구해 밭에다 뿌렸습니다. 씨가 워낙 작으니 가르쳐 주신대로 모래와 섞은 (增量作業) 다음 나름대로 골고루 잘 뿌렸지요. 하지만 결과는? 제목처럼 풀을 매느라 고생만 죽도록 했습니다. 또 도라지 전체를 모조리 뽑아 다시 심어야 했습니다. 왜냐구요? 도라지의 특성을 모르고 내 생각대로만 농사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싹은 잘 났습니다. 나무랄데 없이요. 김도 열심히 매었지요. 그런데 한 뿌리도 못먹었다니...도대체 우리 도라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1두둑에 심어야 할 양을 3두둑에 흩어 뿌렸기 때문입니다. 도라지는 적당히 밀식해야 곧은 뿌리가 발달(상품성)하는데 널찍하게 뿌렸으니 잡초만 무성~ 상품성도 꽝!
3. 귀농 2년차, 250kg 되는 소를 직접 잡다
귀농후 형편이 되면 소를 키우고자 하는 분들이 많은데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임대해 살고 있던 집에 외양간이 있어 98년 가을에 80만원을 주고 이웃에서 엇소(송아지 티를 벗어난 소)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소를 파신 후 소주인에게 부탁해 코뚜레를 뚫어 옛날식으로 풀도 뜯기고 할 요량이었지요. 처음 길러본 소지만 전주인이 알려준대로 하니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송아지를 생산하려고 키우는 암소이니만큼 아침 저녁으로 사료 한 바가지씩 주고 중간중간 짚을 주면 됐으니까요. 짚은 전년도에 농사지은 것이 있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듬해 4월에 발생했습니다. 농사일을 도와주러 오신 아버지께서 소가 이쁘다며 며칠간 푸른 풀을 몇바지게나 베어다 주신후 소가 먹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소화제도 타서 먹여보고 사료를 쏟아주어 봐도 도통 입을 대지 않더군요.
나중에는 소의 배가 임신한 것처럼 점점 불러오고 이솝의 우화 <황소와 개구리>에서 나오는 소처럼 배가 남산만해졌습니다. 걱정이 되어 이웃의 낙농전문가를 부르기도 하고 수의사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몇개월간 온 정성을 다해 돌보던
누렁이...우리 소는 왜 죽은 걸까요?
* 먹이를 마른 짚에서 풀사료로 갑자기 바꿨기 때문입니다.
고창증에 걸려 죽었지요.
4. 노가리로 심은 수수밭, 초토화되다
농사를 지은지 4년째인가요? 잡곡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해마다 수수 농사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년간 때가 되면 수수모를 붓고 이밭 저밭의 빈 곳이나 둑에 수수를 심어 수확해왔지요. 그러다가 욕심이 생겨 그해에는 사방에 나눠 심는 것보다 작은 밭 하나에 수수만 심어 거두기로 하고 50여평 되는 밭에 전부 수수를 심었습니다. 그뒤 수수는 잘 자라 개꼬리만한 수수 이삭이 달렸으나 알이 채 여물기도 전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그해에는 수수를 한 톨도 수확할 수 없었습니다. 특이한 병이 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실패한 것일까요?
* 수수 사이가 넘 가깝고 콩과 등 다른 작물과 혼작하는 것보다 연약했던 때문입니다.
5. 자운영 때문에 한 숨 짓던 귀농 선배 이야기
자운영은 콩과작물로 벼를 수확하기 직전에 논에 심습니다. 콤바인 수확을 위해 마지막으로 물떼기를 한 후 촉촉함이 남아 있을 때 씨앗을 뿌리면 싹이 트고 벼를 수확한 뒤에는 조금씩 자라서 이듬해 5월이면 논에 자운영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그러면 농부는 그대로 갚아엎어 벼를 키울 거름으로 씁니다. 어렸을 때는 나물로도 먹고 소의 먹이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논농사를 지으려면, 특히 유기농으로 하려면 무언가 거름이 될만한 것을 논에 내야 하는데 거름내기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이때 자운영이나 헤어리베치, 호밀 등을 심어 녹비작물로 화학비료나 퇴구비를 대신하는데 경험이 적을 때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뒷그루로 심을 벼의 품종에 따라 거름이 넘치거나 부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경우에는 웃거름을 주면 되나 넘치게 되면 자칫 쓰러짐이나 도열병 등의 피해가 뒤따릅니다.
귀농선배의 경우에는 1700여평 흑미 논이 쓰러져 수십여명의 예비군이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비군이 기대대로 열심히 일해 줄까요? 수십여명분의 참과 점심 준비하랴, 낫 준비하랴 바쁘기만 했지 얼마 베지 못하더군요.
나머지는 형님 가족과 저희 동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볏대가 약한 흑미의 경우 거름이 넘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6.고추 500주 심어 다섯 근도 못 따다
고추는 대표적인 소득작물로 집집마다 꼭 심는 품목이지만 농가별 생산량 차이가 크게 발생합니다. 예상하는 바와 같이 병충해 때문입니다. 특히 고추의 흑사병이랄 수 있는 탄저병은 고추의 수확량을 좌우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외에도 역병이나 담배나방 피해, 석회결핍증 등이 농부를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위의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500주를 심어 다섯근도 따지못할 경우도 종종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추는 거름도 많이 필요하고 심고 가꾸는데 노동력도 많이 필요한 작목입니다. 모종도 직접 키우거나 사야 하고 비닐을 씌우고 지주를 박고 유인끈을 매어주고....그러나 탄저병이 오면 이 모든 노력이 거의 허사가 됩니다.
탄저병은 세균성 병이라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고 피해가 광법위하게 나타납니다. 또 한 번 생기면 병균이 3~4년간 땅속에 잠복해있다가 같은 작물을 심을 경우 병증이 더욱 심해집니다. 농부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탄저병의 공포,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요?
* 저희는 연작을 피하고 2~3군데 다른 밭에 나눠 심습니다.
또 물빠짐이 좋게 하고 빗물이 튀지않게 고랑에 부직포 등을 깔아줍니다.
7. 논에 가보니 수확할 게 없다-물달개비의 공포
논잡초중에 물달개비라는 유명한 (^^) 잡초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늘게 올라왔다가 십자로 갈라지고 곧 하트모양의 잎이 펼쳐진 후 좀 더 성장하면 접시크기로 벌어지는 데 심할 경우 바닥의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나서 논 전체를 덮어버리는 가공할 만한 잡초입니다.
요즘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않는 제초제 저항성 잡초가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잡초가 이 물달개비입니다. 유기농에서 논잡초를 잡을 때 깊은 물 관리(深水管理)가 중요합니다만 물을 깊이 대도 효과가 없는 것이 물달개비입니다.(심수성 잡초)
10년전 가을, 물달개비가 극심한 논에서는 낫을 들어도 벨 것이 없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극심했던 경우는 벼의 크기가 50cm 이하여서 콤바인 수확이 불가능할뿐더러 낱알이 몇 개 달리지 않기 때문에 낫으로 수확해도 인건비를 건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자주색 어여쁜 꽃이 피는 물달개비 1포기에서 떨어지는 씨앗은 자그마치 1만개...이 노릇을 어찌할까요?
* 가능한 어릴 때 오리나 중경제초기 등으로 잡아야 합니다.
우렁이를 넣으면 거의 완벽하게 방제할 수 있습니다.
8. 귀농 3년만에 두 손을 든 농과대학 졸업생
98년 겨울, 곡절 많았던 첫농사를 마치고 겨울이 주는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 서산의 귀농 동료가 이웃마을에 비슷한 시기에 귀농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그이의 표정을 보니 별로 밝지않아 보였습니다. 사연을 들어본즉 그해 생강을 5천평이나 심었다가 큰 실패를 봤다는 겁니다. 저희도 같은 해 300평을 심었는데 씨앗값만 55만원이 들었으니 그이는 열몇배가 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대표적인 다비성 작물이었으니 거름값에 인건비, 제초비...생각만해도 아찔했습니다.
한동안 이야기해 본 결과 그이는 귀농 첫해부터 고랭지 채소 재배처럼 투기에 가까운 농사를 선택했더군요. 투기성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가짐은 통상의 농부들과는 달리 ‘한 번만 맞아줘라!’일겁니다. 더욱이 논 3천평을 밭으로 만들어 총 5천여평에 단일작목을 심었다니 ‘소량다품종, 자급후 잉여농산물 판매’라는 소박한 농사를 선택한 우리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와는 달리 그이는 농과대학 출신이었으니 나름 자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밭으로 만든 논을 어렵더라도 다시 논으로 돌리고 처음 몇 년간은 우리와 비슷한 농사를 권했으나 별로 수긍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음해 서산의 동료로부터 그이가 양배추를 같은 면적에 심었다가 폭락하는 바람에 그해 겨울 탈농을 했다는 가슴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안계신 고향마을에 어머니가 지켜온 땅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농사, 그이도 그이지만 그이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옵니다.
그이의 실패원인은 무엇일까요?
* 다들 알고 계시죠?
9. 실패의 지름길...귀농 직후 대형농기계 구입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대형농기계는 고가인데다 조작에 익숙하지않을 경우 고장이나 사고로 이어져 인적,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소지가 큰 기계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영농규모와 농업의 지속성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서 구입에 신중을 기하여야 합니다. 경작농지나 경영규모가 크지 않다면 귀농 3년 이내에는 경운기나 관리기 등의 소형 농기계를 직접 운전하거나 농기계 사용료를 품앗이로 갚는 방법 등도 권장할만합니다.
영농 첫해부터 귀농자금 등으로 농기계를 구입하였다가 1~2년내 영농을 중단하거나 사전지식이 없이 중고농기계를 구입하여 운용하다가 잦은 고장으로 과다한 수리비를 지급하는 사례도 몇 번 보았습니다. 농기계는 차량과는 달리 동작부위가 많고 논밭 등 험지에서 작업하므로 보다 세밀하고 꼼꼼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10.귀농에 실패하는 10가지 비결
제 나름대로 정리해본 귀농에 실패하는 열가지 비결입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뒤집어보면 성공의 열쇳말이 될 것입니다.
어렵게 시작한 귀농에의 꿈, 모두모두 이루시길 빕니다.
1) 집부터 지으면 실패한다
2) 거듭나지 않으면 실패한다
3) 부지런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4) 농촌의 특성을 모르면 실패한다
5) (인적)관계에 소홀하면 실패한다
6) 인사성이 없으면 실패한다-발로 인사하라
7) 아끼지 않으면 실패한다-검약하라
8) 나서면 실패한다-겸손하라 묵묵히 일하라, 첫(해)인상을 좋게하라
9) 나 좋을 대로 하면 실패한다
10) 사랑이 없으면 실패한다-농촌에 대한 무한한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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