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니 주민들이 마음 열더라 농사 지을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귀농한 지 1년도 채 안 된 박병호(71)·박종숙(59)씨 부부가 해라우지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 비법은 ‘나’를 버렸기 때문이다. 박씨는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나’를 버리고 ‘해라우지마을 부속물’이라고 생각하니 적응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외지에서 귀농을 위해 시골로 내려온 사람들이 현지 주민들과 갈등을 겪는 것은 ‘나’ 중심의 사고를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런 삶의 이치를 굴곡 많았던 인생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됐다고 했다. 1960년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그는 1970년대 영화제작 실패와 1980년대 사업실패 등으로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내가 70억원 정도 날려먹었지, 허허. 지금 생각하면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 그런 경험들이 나를 키워줬고 여기 와서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는 데도 도움을 줬지.”
그는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을 갖고 마을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표시가 나고 모가 나게 된다”며 예비귀농인들에게 몸을 낮출 것을 당부했다. 박씨는 또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건이 아니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일이 힘들면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짓지’라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며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쌀이 만들어지기까지 88종류의 일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쌀 미(米)자가 八자와 十자, 八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귀농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경제적 여건만 충족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통한 것일까. 마을 주민들도 이들 부부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었다. 마을에서 만난 동봉자(여·55)씨는 “두 분 모두 매우 소박하고, 유명인인데도 그런 티를 조금도 안 낸다. 항상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박씨 부부의 행복론은 소박했다. 이들은 “맛있는 공기 마시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시에서는 짜증낼 일도 여기서는 웃고 넘겨버린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마음이 편안하니 싸울 일이 없다”며 밝게 웃었다.
남해 = 심은정기자 ejshim@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06-25
출처 : 오두막 마을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