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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전원생활의 사계 열심히 살아온 만큼 여생의 포근한 휴식을 위한 새삶의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전원생활이 여간 생소한 것이 아니었지만 텃밭과 함께한 봄 지내고 비바람 속의 여름 터널을 통과해 가을의 문턱에 앉아 돌이켜 보는 수 개월의 전원생활이 이젠 제법 흙을 즐기고 물의 맛을 알며 달콤한 공기의 내음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이렇게 두서없이 생활의 일부를 적어본다. 1. 겨울 지난해 11월 드디어 7개월 간의 집짓기가 완성되었다. 파주 헤이리를 몇 번씩 방문하고 거기 박누구 감독과 윤누구 가수 집을 지은 경험이 있다는 시공자를 선정하여 30대 후반의 젊은 설계사가 창작한 집짓기가 시작되고서부터 주변에서는 참 별난집도 짓는다는 듯이 눈총도 많았지만 막상 완공된 집은 외견상 시멘트 펼쳐놓은 창고 같기도 하고 아직 짓다만 무슨 미술관 같기도 하였다. 결국 삭막한 겨울에 우리집을 이렇게 500평 대지 위에 50평 대의 시멘트 덩어리로 인식시킬 수가 없어 서둘러 우리집의 컨셉에 맞는 정원 설계에 들어가 겨울을 견뎌낼 수 있는 큰 나무들 위주로 우선 레이아웃을 잡았다. 대문 격으로 양쪽에 왕벗나무, 가운데는 키 좀 큰 모과나무, 그리고 소나무, 섬잣나무, 청홍 단풍나무 등으로 둘러 놓으니 그런대로 집안 모습이 확 바뀌어 보였다. 방마다 자리잡은 베란다 위에, 나무들 위에, 넓은 뜨락에 사각사각 포근히 눈발이라도 내리면 전원생활하면서 즐긴다고 익혀둔 전자올갠 위에서 서투른 솜씨지만 겨울연가의 주제곡을 눌러대는 가운데 봄의 향연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겨울은 갔다.
2. 봄 봄은 따스한 햇볕 속에 꽃과 더불어 왔다. 주변의 도움으로 마당 한켠에 5평 남짓의 텃밭을 꾸미고 두 줄은 고구마를 심기 위해 비닐을 씌우고, 몇 부분을 구획하여 상추, 치커리, 파, 깨, 가지, 고추, 도마토, 호박까지 심어 놓고 그것들 커 나오기 기다리는 그 초조함이라니....... 밑거름이 뭔지 채소마다에 번지는 해충에 알맞은 농약이 뭔지도 모른 채 까짓거 해충에 뜯기면 뜯기는 대로(깻잎은 새싹 때부터 해충에게 다 먹혀 전혀 먹어보지 못했다) 커 나오는 것들이 반가워 아침마다 둘러보면서 잡초나 뽑아주며 카워내는 대로 푸짐하게 야채 사라다 해 먹는 재미를 자랑하고 싶어서 서울 나들이 때면 한 웅큼씩 이것저것 뜯어다가 친지들에게 나눠 먹이느라 정신 없었다. 아무리 먹어도 날마다 어찌도 그리 잘들 자라주는지, 원. 그 힘찬 땅 기운이 새삼 감격이었다. 한편으로 3월말에는 남은 정원이 완공되고 나니 얼마 후부터는 100평 여의 잔디밭 가꾸기부터 시작하여 여기저기 꽃밭의 물주기, 잡초뽑기, 흙붇돋우기 등으로 아침이면 한두 시간씩 아내와 함께 채마밭과 정원에 엎어져 있어야 했다. 여태까진 겨우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며칠 걸러 물이나 퍼 부어주던 솜씨로 이 전원을 돌봐 가려니 해도해도 전쟁 같았지만 늘 마음 속으로는 이건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요 운동이라고 되뇌이기를 했다. 그래도 마당 여기저기 꽃잔디 군락 이룬 위에 벚꽃이 피어 온 마당을 휘덮고 라일락 향기에 취하고 앵두꽃 애잔하고 취나물, 돌나물, 도라지 등의 나물 존과 아주가, 비비추, 벌개미취, 옥잠화, 원추리, 맥문동 등의 꽃밭 존과 두충나무, 자두, 석류, 감나무에다가 목백일홍 화사하던 꽃들과 더불어 지내던 우리의 봄은 기쁨으로 충만한 삶의 새로운 감격이었다.
3. 여름 여름은 후끈한 열기 속에 물과 함께 왔다. 여기서의 여름은 에어컨 없이 지내기로 했다. 공기를 차단한 채 인공으로 만들어내는 냉기보다는 온통 문 열어두고 날벌레 더불어 부채나 부치며 선풍기 정도로 견뎌 보자고 했다. 이름 모를 산새는 물론 산까치 가족 데리고 나타나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노니는 것 즐기고, 담장 위로 재롱부리며 까불어대는 다람쥐도 정겨웠다. 전원에서는 여름 물것들 걱정 많이 했는데 모기약 변변히 써 보지도 못하고 지내고 말아 싱거웠고 슬금슬금 기어드는 날파리나 개미, 메뚜기까지도 전원생활의 일부려니 생각해 버리면 오히려 예뻐 보였다. 마당의 잡초를 뽑아 낼 때도 그랬지만 우리가 해충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들로 따지고 보면 인간의 관점에서 판단한 이기적 사고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 생명력 질긴 잡초들의 끈기에서도 우린 깨달을 게 많으리라. 올 여름은 8월 한 달간의 물 속에서 갔다. 비가 너무 잦다보니 고구마 밑이 덜 들지 않을까 걱정이고 피지마자 물 속에 쉬 지는 여름 꽃들이 아쉬웠고 이제막 자리잡아가는 나무들의 뿌리내림이 염려스러웠다. 더구나 지하에 집수 모터로 구성해 놓은 실내 정원의 자작나무와 바위취, 송악, 관중들이 물에 견뎌낼까 여간 신경쓰였다. 나도 벌써 세상사 잊어가는 도인이 돼 가는 걸까.
4. 가을 가을은 싸한 바람 속에 응답으로 다가온다. 지난 주엔 봄 텃밭을 걷어내고 배추 모종을 구해다 심었고 무 씨앗도 뿌려 두었다. 앞 마당 가운데엔 첫해의 열매치고 남들이 놀랄 만큼 모과가 주렁주렁이다. 더 잘 익으면 주변에 고루 나누어 주어 그 향기를 전해야지. 감은 영 틀려 먹었지만 석류도 두 알갱이가 매달렸고 추석 지내고는 겉으론 순이 제대로 잘 뒤덮인 고구마도 캐 볼 요량이다. 어렵게 얻어다 심어 둔 엔젤프라우워(천사의 나팔)도 6개의 꽃 송이를 키워내느라 안간힘이고 오색의 국화도 한껏 몸짓 단장 중이다. 잔디엔 흙덮기를 해 주어야 하고 한켠에 씨 뿌려 키워낸 양잔디에는 비료도 한 번 뿌려주어 힘을 돋구워 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집의 상징인 흰 자작나무를 위해 밑둥 싸 줄 볏집도 구해 놓아야겠다. 오랜 도시생활에서 찌들었던 심신이 얼마 안 되는 전원생활 속에서 회복되어 가는 느낌이 완연하다. 여태 채우느라 급급했던 지난 삶의 타성에 젖어 잊고 버리는 연습이 아직은 서툴지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워 사는 깨달음까지는 아닐지언정 맑은 공기, 깨끗한 물, 포근한 흙냄새 속에 안겨 살게 해 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며 청정한 기도 속에 살고 싶다. 이번 주일은 또 가까운 성지에 찾아가 숲속 십자가의 길을 거닐며 감사기도를 드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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