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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인생 쉬엄쉬엄../그때그시절 우리는..

[스크랩] [그때그시절] 월남전

 
저녁 노을 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지난 베트남 전쟁 당시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만다.
누구도 알아주지않는 전쟁의 기억 이제는 잊을만도한데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부산항의 파월 수송선

 

 

 
베트남 전쟁은 대한민국 군대가 외국에서 싸운 첫 전쟁이었다.
1965년 공병부대인 비둘기부대의 파견을 시작으로

1973년 3월 철수할 때까지
해병대 1개여단(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등

국군 4만8000여명이 연합군과함께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했다.

파병 당시만해도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1963년 수출액은 8680만 달러 국민 1인당 GNP는 100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으로부터 연간 5억 달러의 군사 원조와 경제 원조를 받았다.
당시한국은 베트남파병으로 5400여명의 인명손실과

비동맹국가와의 외교마찰을 빚기도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한반도의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
베트남 파병은 국군장비의 현대화와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경제발전의 초석을쌓는 계기가됐다.

 

 

 

사진은 1965년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서 열렸던

「파월장병 환송식」 직후의 한장면.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베트남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고,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아마도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궁핍했던 시대 우리의 자화상 - 추레한 치마 저고리 차림을 한

아낙네 얼굴은 옷 매무새 보다 더 풀기가 없다.

양산을 들고 고무신을 신은 후줄근한
그 어미는 멀리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입술을 달싹인다.

 

 

 


 
전사한 아들의 묘지에 오신 어머니

 

 

  

 
파월 참전용사들이 출발지에서 열차를타고 달리며

 태극기를 흔들고있다.

 

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제갈공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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