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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귀농귀촌/귀농귀촌 성공사례

[스크랩] 전원에 산다 | 고향에 돌아와 오미자 농사짓는 김규천·이주화 씨 부부

농촌에 뜻을 둔 참한 며느릿감을 찾습니다

20년 공직 생활을 접고 고향인 문경에 내려와 오미자 농사로 굳게 뿌리를 내린 김규천 씨 부부. 두 아들을 농대에 보내 영농후계자로 세운 터라 주위의 부러움마저 사고 있다. 다재다능한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김씨 부부와 두 아들이 함께 농촌의 미래를 이뤄가는 동네터농원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글 김윤석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해마다 5월이 되면 황장산 아랫마을은 오미자 꽃향기에 취한다. 골짝 여기저기서 자그마한 미색의 꽃들이 뿜어내는 단내로 사람도, 갓 돋아난 여린 잎도, 마을도, 마을을 빙 둘러싼 높은 산들도 한껏 취흥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코끝을 간질이는 봄바람이 온 마을을 돌다 지쳐 가라앉으면 누렁이도 살래살래 꼬리를 흔든다.
오미자로 이름난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귀농인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 고향과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가는 데 비해 이들은 고향을 택했다는 게 사뭇 다르다. 도시 생활을 접고 산골에 들어온 사람들. 학업 때문에 일찍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넉넉한 황장산 품으로 하나 둘 찾아 들어왔다. 참살이 바람이 불자 오미자 음료가 건강 음료로 알려지면서 소득이 높아진 덕택도 한몫한 것은 분명하다.
 
귀농, 남편은 ‘설득’하고 아내는 ‘세뇌’ 당해
이곳 문경 동로면에서 ‘동네터농원’을 운영하는 김규천 씨(52)는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 1982년 문경시 영순면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고 2001년 문경시청 문화관광과까지 20년간 공무원으로 일했다. 재직 시절부터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2002년부터는 경상북도 문화유산 해설사로, 그리고 20여 년 동안 산악인으로, 식물사진가로 활동하면서 1996년에는 ‘문경의 명산’을 펴낸 유명 인사이기도 하다. 문경의 대표적 산악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김씨는 사불산 등 문경 지역 산의 본래 이름을 찾아내고 하늘샘, 눈물샘 등 등산로 곁의 샘을 파고 정비했다. 혼자서도 거뜬히 통나무집 한 채를 짓는 목수일, 7년째 된 아마추어 무선 등 모두 만만찮은 이력을 보여주고 있는 김씨를 두고 ‘걸어 다니는 문경 문화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김씨가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 생활을 접고 고향을 택한 해는 2001년. 그해 11월, 중년에 훌쩍 접어든 김씨는 21년 만에 자신을 키워준 고향을 찾았다. 이곳 동로면은 그의 8대 조부가 뿌리를 내린 곳으로, 부모님 묘까지 모두 잘 모셔져 있다. 김씨는 1978년 가나안농군학교를 수료한 뒤 언젠가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고서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고향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씨는 ‘가보 제1호’라며 반질반질한 쇠 주걱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 집터 위에 있던 옛날 우리 집에서 조부모님을 비롯한 열세 식구에다 머슴까지 한 집에서 살았어요. 어머니가 끼니마다 가마솥에 가득히 밥을 지으셨는데, 쇠 주걱 끝이 닳고 닳아 이렇게 뭉툭해졌어요.”
7남매 중 맏아들이자 장손인 그는 고향이 좋아서 당연히 들어왔다손 치더라도 문경 시내에서 등산 장비점을 10여 년 동안 운영하던, 대구에서 나고 자란 아내 이주화 씨(52)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이씨는 “10년 동안 남편에게 설득이 아니라 철저히 세뇌를 당했다고 해야 맞다”고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씨가 다급히 불을 껐다. “농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직업이지요. 환경에 관한 서적을 꾸준히 탐독하면서 농업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농촌에서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 아내를 줄기차게 설득했지요.”
남편으로부터 ‘세뇌’를 당해 농촌에 들어온 이씨는 “뾰족구두 필요 없고 흰 고무신이 얼마나 편한 줄 모른다”면서“소득을 올리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시골에서 사는 게 여러 모로 좋다” 하고는 한발 물러섰다.
고향에 온 지 3년 동안은 농사에 매달리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농사 준비를 위해 충분한 시기를 보냈다. 고향에 뼈를 묻기로 결심한 만큼 남은 인생을 걸 작목을 찾았다. 예로부터 이곳 농가들은 오미자와 사과 농사에 매달려왔다. 해발 300m 이상의 청정 환경과 높은 일교차, 물 맑고 공기 좋은 산간지에서 재배한 덕에 맛과 향기 그리고 품질과 성분이 뛰어난 오미자로 이름이 났다. 김씨는 사과와 오미자에 중점을 두고, 자급자족을 하려고 벼농사와 고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 농사에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기보다는 오미자청, 오미자술, 된장 등 가공품을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여나갔다.
 
정낭간과 석빙고, 그리고 테 두른 항아리
김씨가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기 전 농촌 생활에 꼭 필요한 두 가지를 만들었다. 재래식 화장실과 석빙고가 그것이다. 재래식 화장실은 김씨의 농업 철학, 즉 생태계의 순환을 통한 친환경농업에서 나왔다. 사람이 식물에서 섭취한 것은 다시 식물로 돌려줘야 생태계가 온전히 유지된다고 믿는 김씨는 친환경농업을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자연 발효식 화장실이라고 주장한다. 김씨는 직접 통나무와 판자로 몇 달간 작업한 끝에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고 ‘땅과 사람을 살리는 정낭간’으로 이름 붙였다. 바닥에 톱밥과 낙엽을 깔아 인분을 발효시키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으며 거름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쪼그려 앉아 있기가 불편한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벽에 붙은 3단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아파트 화장실 못지않게 쾌적하다는 걸 말해준다.
뒤뜰에는 김씨가 자랑하는 저온저장 시설 석빙고가 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자연의 힘으로 일년 내내 10~13℃를 유지하는 비결은 집 옆으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끌어들여 한가운데로 물이 흘러가도록 관을 설치한 데 있다. 사면을 돌로 쌓아 사이에 황토를 발랐고, 지붕을 약간 기울어지게 해 빗물과 습기가 흘러내리도록 했다. 일곱 평쯤 되는 석빙고에는 습도를 유지하고 냄새를 막도록 안쪽에 숯 여덟 상자를 쌓아놓았다. 스무 개 남짓한 항아리마다 오미자청, 오미자술, 감식초, 된장, 고추장 등 발효식품이 한창 숙성 중이다.
“농촌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게 발효식품을 저장할 수 있는 저온 시설이에요. 제가 만든 것을 보고는 우리 마을 여러 집에서도 만들어 잘 활용하고 있어요.”
김씨는 지난 2006년 ‘물 저장 테를 가진 옹기’로 특허를 내 실용신안 및 디자인등록을 획득했다. 이 옹기는 뚜껑 아랫부분의 테에 소금이나 소금물을 채워두면 내용물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데다 온도 변화가 적어 전통 발효식품을 저장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한다. 김씨는이 항아리를 오미자술, 된장, 고추장 등 발효식품을 숙성하는 데 두루 쓰고 있다.
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는 독서에서 나온다. 장서가 3000권을 웃돌 만큼 대단한 독서광인 김씨는 아무리 피곤해도 한 시간씩 책을 보지 않고는 잠에 들지 않는다. 두 아들에게 다른 것은 넉넉히 못해줘도 책 사주는 데는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 농촌에서 행복하게 사는 이들 부부의 모습에 마음이 끌린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씨는 대뜸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다. 집 팔고 모두 끌어 모으면 5억 원쯤 된다고 그 친구가 대답하자 “그냥 그 돈으로 도시에서 살아라” 하고 충고했다. 농사지어 소득 올리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생할 각오로 내려와 열심히 일하는 데서 전원생활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실패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

후계자로 자란 두 아들, 이보다 더 행복하랴
귀농한 지 6년밖에 안 된 김씨 부부만의 자랑거리가 또 있다. 두 아들이 영농후계자로 자란 것이다. 사과 농사에 관심이 많은 큰아들 억종 씨(26)는 농고와 농대를 졸업한 뒤 3년째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억종 씨는 신세대답게 농사일을 할 때도 항상 MP3 헤드폰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농촌에 뜻을 둔 참한 며느릿감 어디 없어요?”
김씨 부부는 큰아들이 대견하면서도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농촌에 시집올 아가씨가 없다는 것. 즐겨 읽는 ‘전원생활’의 취재에 선뜻 응한 것도 아들을 장가보내기 위해서란다.
당나라 백장 스님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을 좌우명으로 삼고 하루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김씨 부부와 두 아들이 희망을 일궈가는 동네터농원에 경사가 났다는 소식이 들리길 기다려본다.

출처 : 예인의마을
글쓴이 : 청산머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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