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닭둥우리와 달걀꾸러미
과거 변변한 시계조차 없던 시절, 홰를 치며 ‘꼬끼오’하고 울던 수탉은 우리에게 긴요한 알람시계요, 괘종시계나 다름없었다. 수탉의 울음이 새벽을 알렸으므로 민간에서는 수탉이 울면 밤중에 왔던 귀신도 돌아가고, 산짐승도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새벽을 알리는 영물이요, 귀신을 쫓는 길조인 까닭에 닭은 혼례나 굿과 같은 중요한 행사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재물로 올랐고, 백년손님인 사위에게도 아끼던 씨암탉을 내놓았다. 물론 닭이 꼭 좋은 뜻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머리 나쁜 사람을 일러 “닭대가리”라 하였고, 여자가 너무 나서는 것을 두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도 하였다.
먹을거리로도 닭은 소나 돼지만큼이나 우리 민족이 즐겨 먹던 음식인데, 요즘에는 순수한 혈통을 지닌 토종닭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대가 돼버렸다. 본래 우리 토종닭은 외국산에 견주어 몸집이 작은 반면, 당차고 번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털빛은 주로 검정과 갈색, 다리는 회백색과 황색을 많이 띠었는데, 옛날에는 그 종류 또한 많아서 땅이름을 그대로 딴 파주닭, 나주닭, 무안닭, 보은닭을 비롯해 오골계와 투계도 따로 있었다. 그러나 외국산 닭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얼마 남지 않은 우리네 토종닭은 점차 지역적 순종의 특성이 사라져 오늘날과 같은 잡종의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토종닭의 순종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이 닭둥우리라는 것이다. 이른바 외국산 닭을 키우는 대형 양계장이 곳곳에 생겨나면서 굳이 집집이 닭을 기르지 않아도 싼값에 닭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소량으로 키워왔던 토종닭이 씨가 마르기 시작하면서 토종닭을 지켜주던 따뜻한 보금자리인 닭둥우리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이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암탉이 알을 낳고 꼬꼬꼬꼬 울어대면 어머니 몰래 닭둥우리를 뒤져 달걀을 훔쳐내 톡톡 알을 깨고 몰래 입안에 털어넣던 일. 그러나 암탉이 알을 낳는 것은 빤한 일이어서 아무리 시치미를 뗀다 해도 어머니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대부분은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기 일쑤였지만, 때때로 날을 잘못 잡아 명절을 앞두고 달걀 서리를 하다가 공연히 어머니에게 매타작을 벌기도 하였다.
그 시절 달걀이란 것이 귀하디 귀한 것이어서 우리네 어머니는 그것을 짚으로 된 달걀 꾸러미나 쌀독 안에 신주 모시듯 보관해오다 명절이나 식구들 생일 때나 곶감 빼오듯 꺼내와 밥상에 올렸다. 닭장이 넉넉하게 닭이 많은 집에서는 며칠씩 낳은 달걀을 모아 달걀 꾸러미에 정성껏 꾸려 오일장에 내다팔았다. 그 때만 해도 “달걀 한 꾸러미 주시오”라는 말이 낯익었지만, 요즘에는 대형 마트의 “계란 한판”이 판을 치고 있다. 이제는 닭둥우리도, 달걀 꾸러미도 그저 까마득한 추억의 풍경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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