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생물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혀진다.
내 카메라로 나의 피사체들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들고 싶다」 이런 간절한 祈願(기원)을 가슴에 품고 나는 세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햇병아리 사진기자였던 1971년과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 바다에 점점이 널려 있는 낙도를 하나하나 방문하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낙후된 섬주민들에 대한 위문과 치료차 동해와 서해·남해를 돌아다니는 해군본부 낙도홍보단의 배에 함께 오른 것이다. 제주도에 한 번 가보지 못한 필자에게는 첫 뱃길여행이었다.
폭풍우와 뱃멀미에 시달려서 체중이 쭉쭉 빠졌다.
한번 떠나면 18박19일이나 걸리는 긴 여행이라 다른 사람들은 고통으로 생각했지만,
신비의 섬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기쁨 때문에 나는 두 번째 여행에도 자원했다.
육지와 철저하게 단절된 채, 쓸쓸함과 적막함의 바다 속에 고립된 섬들은 내게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요즈음의 섬들은 도시와 큰 차이가 없는 생활환경을 갖고 있다.
30여 년 전의 섬들은 근대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벽지였다.
최신식 카메라를 바라보는 섬사람들의 눈길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처녀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달아났다.
염소와 송아지를 모는 아이들, 물동이와 땔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아낙네들의 표정은 밝고 순수했다.
30여 년 전 섬사람들의 생활은 척박했다.
그때 그 시절의 사진을 다시 정리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험난했던 시절을 돌파해 왔구나」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 시절엔 꿈이 있었다.
30여 년 전 낙도를 돌면서 필자는 꿈을 꾸었다.
해안의 바위에서 부서지는 하얀 파도, 수정같이 맑은 쪽빛 바다,
바람을 타고 비상하는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그때 꿈꾸었던 오늘이 과연 그때만큼 행복한 것인지, 자신이 없다.
그 섬에 살았던 가난한 이들은 그 뒤 어떻게 살았을까?
환한 웃음과 숨결이 지금도 느껴지는 흑백 사진 속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