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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농촌 희망찿기/그린투어(농촌관광)

[스크랩] 전북 진안군 마을 만들기팀



[한겨레] 진안군청 마을만들기팀

떠나는 농촌.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농촌 살리기는 물론 농사지을 사람조차 사라져간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전북 진안군은 다르다. 사람이 있다.

진안군청 마을만들기팀. 서울대 출신으로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농촌 공동체를 살리겠다며 연고도 없는 진안군에 와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구자인 박사, 진급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5년째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곽동원씨, 마을만들기를 통해 공직생활의 보람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이호율씨.

이들 ‘삼총사’는 농촌을 사람 냄새 풋풋한 공동체 마을로 되살리는 데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이들의 열정과 외침은 진안의 농촌 마을을 깨워 ‘나도 있다’며 큰 소리로 화답하는 이들이 이 마을 저 골짜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북 무주군, 진안군, 장수군을 일컫는 무진장. 오지와 가난의 대명사처럼 쓰이던 무진장에 속한 진안. 한때 인구 10만이 넘던 주민수가 2만7천여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쪼그라든 진안군 농촌 마을에 이들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군청공무원 구자인 곽동원 이호율씨 앞장
살기 좋은 농촌 만들려 현장교육·간사 파견
주민이 주체돼 공동사업하게 지원 ‘희망 파종’


23일 오후 6시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옛 시장터에서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행사가 열렸다. 마을만들기는 진안군에서 사그라져가는 농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추진중인 사업. 이날 행사는 백운면 조사단 사무실 개소를 기념한 조촐한 마을잔치다.

주차장 한쪽에 설치된 무대에서 풍물 공연이 시작되자 주민들은 손뼉을 치며 어깨를 들썩인다. 이를 지켜보는 구자인 박사, 곽동원, 이호율씨의 얼굴이 밝다. 이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땅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이현배 조사단장, 최규상 백운면장 등 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처럼 마을만들기팀은 늘 현장에 있다. 구 박사는 2005년 130여 차례, 지난해 100여 차례 마을들을 찾았다. 곽씨와 이씨도 비슷하다. 휴일에도 현장을 찾을 때가 많다.

마을만들기의 목표는 마을공동체의 회복.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주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일정 수준의 소득을 올리고 복지와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한다.

쉽지 않은 목표다. 구 박사는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올바른 생각과 원칙을 갖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돈을 자루로 쏟아부어도 마을은 살아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을만들기의 시작은 그래서 교육이다. 구 박사 팀은 그동안 11개 권역별로 세 차례씩 마을을 찾아가 교육을 했다.

교육 내용은 단순하다. 뭉치면 산다. 교육에는 컨설팅도 포함된다. 교육과 컨설팅을 받은 뒤 주민들은 스스로 고민하고 논의해 사업을 정한다.

“주민들은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서 배웁니다. 2005년에 마을 단위로 평균 8천만원을 지원했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마을만들기에 참여하게 됩니다.” 곽동원씨의 말이다.

실제 농산물가공체험장, 민박집, 팜스테이, 휴게소를 겸한 농산물 판매장 등 진안군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대부분 주민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런 식으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진안군에는 으뜸마을 가꾸기 11개 마을, 녹색농촌 체험마을 5개 마을, 농촌전통테마마을 4개 등 29개의 마을 단위 사업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마을만들기팀은 늘 곁에서 지켜본다. 입안이 마르고 속이 타지만 안을 만들어 던지는 것보다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언은 ‘해가 바뀌어도 같은 사업을 계속하는 게 좋겠다’는 정도로 최소한으로 그친다.

이에 따라 마을들은 2006년 평균 4500만원 가량 되는 지원금으로 가공체험장의 기계장비를 추가로 사거나 민박집의 부대시설로 작은 천문대를 만들기도 했다. 공동사업을 벌이는 마을도 속속 생겨났다.

대표적인 마을이 와룡마을. 용담댐 건설로 이주한 12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지난해 주민공동사업으로 6천만원을 벌었다. 주민들은 지난해 산초기름과 들기름을 짜서 판 데 이어 올해는 국유림을 빌려 장뇌삼을 심었고 홍삼가공시설도 만들 계획이다. 고승조(49) 이장은 “10% 가량 적립금을 남겨두고도 200만~600만원씩 분배했다”며 “올해는 주민들이 마을 공동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만들기팀은 주민들을 돕기 위한 ‘비장의 무기’도 개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마을 간사제. 귀농하거나 귀농을 준비중인 이들 가운데 선발된 12명의 마을 간사들은 각 마을에 배치되어 마을 회의 운영, 홈페이지 관리, 행정 업무 처리 등 전방위로 뛰고 있다.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간사들의 경력은 전직 대기업 이사, 엔지오 간사, 명문대 졸업생 등으로 화려하다. 능길마을 간사로 일하는 한기영씨는 “마을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노력한다”며 “올해 마을 소식지를 창간했다”고 자랑했다.

전국에서 ‘선진지 견학’을 올 정도로 진안군의 ‘대표 상품’이 된 마을만들기의 시작과 지속 역시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다. 시작은 2001년 임수진 군수가 했다. 실무는 대한민국 최초의 ‘일용잡급직 박사’로 일했던 유정규 박사가 맡았다. 바통은 송영선 군수와 구자인 박사가 이어받았다. 단체장에 취임한 뒤 전임자가 벌인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은 현실과 달리 송 군수는 “사업 규모는 크지 않지만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 늘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진안군은 올해 마을만들기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자 유관 부서가 참여하는 티에프팀까지 만들었다.

군청이 나서자 숨어있던 ‘사람들’도 속속 나타났다. 능길마을 대표 박천창씨, 백운동창 추진위원장 정경교씨, 와룡마을 추진위원장 강주현씨, 마을조사단장 이현배씨 등등. 고향 마을로 귀농해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을 이끌고 있는 박천창 대표는 “93년 귀농해 친환경농업을 시작했으나 희망이 보이지 않아 도시로 떠날 마음도 먹었었다”며 “마을만들기가 시작된 뒤 고향 마을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출처 : 인제마을리더2
글쓴이 : 김황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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