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을 지나 불러보는 아름다운 귀거래사
—『손님』『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한 오탁번론
이승하
충북 제천이 고향인 오탁번 시인은 2003년, 향리인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19번지 백운초등학교 옛 애련분교 자리에 원서문학관의 문을 연다. 이때 시인의 나이 예순, 막 이순(耳順)이 되었을 때였다. 시인은 그해에 그간에 냈던 6권의 시집을 묶은 전집을 태학사를 통해 펴낸다. 이후 2006년 12월에 제7시집 『손님』을, 2010년 9월에 제8시집 『우리 동네』를 펴낸다. 이 글은 전집 발간 이후에 낸 두 시집에 대한 서평의 성격을 지닌다.
고향에 돌아와 산다는 것
정년퇴임을 앞둔 시인은 고향 인근에 백운초등학교(바로 이 학교를 나왔다)의 분교를 매입, 원서문학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새 둥지를 튼다. 도시의 번잡함과 휘황찬란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귀를 씻고, 각종 모임을 멀리하며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책 읽고 시를 쓰기 위함이리라. 중국 위․진 시대 때 노장의 무위자연사상을 숭상한 일곱 벼슬아치가 벼슬을 버리고 산간에 은거하자 이들을 가리켜 후대 사람들이 죽림칠현이라 일컬었다. 그 후, 동진 시대 때의 도연명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사부(辭賦)를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歸去來辭」이다. 오탁번은 이전에 발표한 시에서도 고향과 고향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간간이 했었지만 근년에 낸 2권의 시집을 통해 더욱 자주, 귀거래사를 부른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 고향에 돌아와 사는 재미, 달라진 고향 모습 등을 시로 쓴다.
하루 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언놈이 밥 먹이고 가요
―「밥냄새 1」 앞부분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인 집안의 가난함과 진외가 당숙모의 후한 인심이다. 어머니는 어린 탁번이 배를 안 곯게 하려고 꾀를 낸다. 그냥 놀러온 것처럼, 하지만 하필이면 식사 시간에 맞춰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가서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한다. 당숙모는 아이 밥을 먹이고 가라고 하고, 어느 날에는 아예 “밥때 되면 만날 온다”라고 말한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당숙모의 후덕한 마음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당숙모가 북녘의 아들을 끝내 못 보고 “몇 해 전 아흔여덟 살로/ 이승을 버린” 이야기가 「밥냄새 2」에서 펼쳐진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의지가지없는 일가 노인의 방문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손님이 온 날 저녁이면/ 형과 누나는 보리밥을 먹었지만/ 손님과 나는 겸상으로/ 흰밥을 맛있게 먹었다”(「손님 2」)고 하니까 말이다. 유년기 회상 시편 중에서 명작이 있으니 「액막이 연」이다.
내내 썰매 타고 눈싸움만 하느라
색동 설빔은 그만 얼룩이 다 졌지만
정월 대보름 아침이 밝아오면
부럼을 깨물고 더위도 팔고
고드름 따먹으며 고샅길을 내달린다
저녁이 되어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온 동네는 백야白夜처럼 환해지고
돌담가 달집에 불을 놓으면
달집에 쌓인 생솔가지가 불타며
냄비 속 쥐이빨 옥수수 튀는 소리를 낸다
―「밥냄새 1」 제1연
시인의 어린 시절 겨울나기는 이렇게 역동적이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온갖 것들을 가리켜 ‘천혜’라고 하는데, 여기에 유년기의 천진성이 덧보태져 참으로 아름다운 풍속화가 한 폭 그려진다. 아이들은 방패연에 이름과 생일을 또박또박 적고는 “허릿대 대오리도 팽팽한 방패연에/ 하늘길 노자할 동전 한 닢과/ 누에고치를 매달아 불을 붙이고/ 얼레의 연줄 죄다 풀어서/ 액厄막이 액厄막이 외치며 연을 날린다”. 시인은 「설날 아침의 화선지 한 장」에서도 “인터넷 바다에서 온갖 정보를 체크하고/ 바라보는 한강의 하늘”과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단군 할아버지가/ 깜냥껏 그려보라고 건네준/ 흰 화선지 한 장”과 대비시켜 우리네 미풍양속이 불과 몇 10년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을 안타까워한다.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회상의 시편 중 인상적인 또 한 편의 시로 「기차」가 있다.
할머니가 부산하게 비설거지하고
외양간 하릅송아지도 젖을 보챌 때면
저녁연기가 아이들 복숭아뼈 적시며
섬돌 아래 고샅길로 낮게 퍼졌다
숙제 끝내고 토끼풀도 다 뜯어다주고
심심해서 사물사물해졌을 때
산 너머 기차 소리가 들려오면
몽당연필에 마분지 공책 들고
아이들은 앞산 등성이로 달려갔다
―「기차」 앞부분
이제는 어디에 가도 보기 어렵게 된,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와 같이 농경사회의 유습을 온전히 지니고 있었지만 70년대 산업화 시대를 맞아 이동현상이 심화되고 농촌도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가옥 구조와 마을 풍경부터 달라져 간다. 시인은 우리네 농촌의 목가적인 모습을 시로써 복원하면서 추억에 잠긴다. 제8시집 『우리 동네』는 제목부터가 고향 일대 풍경을 그리리라 마음먹고 쓴 것임을 짐작케 한다. 물론 우리 동네의 옛날 모습과 지금 풍경을 다 그린다. 첫 번째 시를 보자.
배고픈 까치들이 감나무 가지에 앉아 까치밥을 쪼아 먹는다 이 빠진 종지들이 달그락대는 살강에서는 생쥐들이 주걱에 붙은 밥풀을 냠냠 먹는다 햇좁쌀 같은 햇살이 오종종히 비치는 조붓한 우리 집 아침 두레반
―「두레반」 후반 연
잣눈이 내린 겨울 아침, 시골집 풍경이 섬세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이 세계에는 인간의 욕망과 사람 사이의 다툼이 없다. 가족간, 인척간, 이웃간의 정에 기반한 공동체의식과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면 좋겠다는 상생의 정신이 있을 뿐이다. 3대가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는 추석 무렵의 광경은 「추석」에 잘 나타나 있다. 고향에 내려가 지내다 보니 금석지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상전벽해까지는 아닐지라도 변한 것이 적지 않다.
지금이야 방죽을 잘 쌓아서 장마가 져도 끄떡없이 경운기도 다니고 트랙터도 다니지만 옛날 진소마을에는 장마철이면 마당까지 진소천 강물이 범람하곤 했다 물이 빠지면 호박꽃 속에서 모래무지가 꼼틀거리고 다슬기가 나팔꽃 줄기에 붙어 꼼지락거렸다 진흙탕이 돼버린 마당에는 버들치가 은사시 잎처럼 팔딱거렸다 강 건너 대덕산 그림자가 흙빛 강물 위로 일렁거렸다
―「낚시」 제1연
예전에는 낚시 준비랄 게 별것이 아니었다. “굵은 명주실로 만든 낚싯줄에 지렁이를 꿰어 강물에 던져놓고는 낚싯줄 끝을 꼬추에다가 매어놓”으면 됐다. 고기가 물리면 명주실이 팽팽해져 “아야! 아야!” 소리를 지르게 되고, 그럼 돌화덕에 올라가는 물고기의 수가 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때의 불알친구들이 다시 모여 강가로 가서 가마솥을 건다. 똥개 한 마리를 잡고 소주 한 짝을 다 비운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던 시절이 가버렸으니,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천렵(川獵)을 아직도 하는 늙은 초등학교 동창생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집중호우가 내린 어느 날의 ‘희한한’ 일이었다.
시간의 힘은 상전도 벽해를 만들지만 홍안의 소년을 백발의 노인으로 만들고 처녀의 삼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문 날의 파뿌리로 만든다. 시인은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부음을 접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종종 겪는다. 동네에서 제일 바지런하고 조쌀한 ‘눈깜짝이’ 한씨가 정월 대보름날 윷놀이하다가 술잔을 비우고는 갑자기 쓰러져 숨진다(「눈부처」). 당뇨가 심하던 진외육촌형도, 풍을 맞은 큰형님도 숨을 거두고, “핸드폰 메시지가 뜨면/ 열에 다섯은 동창생 부음”이다(「마실」). 시인은 고희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느낀다. 원주중학교 동창 이준영은 전화할 때마다 “나, 원주 엉아야”라고 말한다고 한단다. “엉아? 엉아?/ 참 웃긴다/ 너희들 외로워서 그러지?/ 나야말로 정말 외롭단다”(「엉아」)라고 60대의 시인은 외로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무튼 시인의 귀거래사 시편은 도시의 황사와 매연, 소음과 광고의 홍수에서 벗어나 있어 우리의 마음을 청정하고 청량하게 해준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조심스레 뜰로 내려선다 겨울잠을 자는 잔디도 들꽃들도 나의 맨발 소리에 잠투정하듯 보득보득 소리를 낸다 겨울 하늘을 손짓하던 구절초 꽃대궁도 실크 머플러를 쓰고 고개를 살래살래 젖는다
―「숫눈」 부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눈이 퍼붓는 날
메두지기 지나 돌테미 다리 건너
쇠음달 길로 접어들면
渴筆로 그린 山水畵 속으로
그냥 쑥 들어서는 것 같다
―「山水畵」 앞부분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에 뜰에 내린 눈을 맨발로 밟아보는 일을 도시에서는 해보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山水畵」를 보면 시인이 산수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물아일체의 경지다. 자연은 그 자체가 인간에게 때로는 어머니 노릇을, 때로는 스승의 역할을 한다. 스스로(自) 그러한(然) 우리를 본받으라고 자연은 말해주건만 우리 인간은 자연에게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개발이며 건설이며 사업을 부르짖으며 훼손하고 파괴한다. 오탁번 시인은 표나게 생태환경 보호를 외치진 않지만 이런 시는 그 자체가 생태시나 생명시와 먼 거리에 있지 않다.
문학관 이름이기도 하고 택호이기도 한 ‘원서문학관’과 그 일대가 배경이 된 시도 종종 눈에 뜨인다. 『손님』의 「돌」「파 웨스트 러브호텔」「탑」「수련」「천등산」, 『우리 동네』의 「冬柏 1」「봄편지」「연못」「붕어」「동치미」 등도 소재와 주제적 측면에서 일종의 귀거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향에 내려오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넉넉해지기도 하지만 “비료 값 농약 값 빼고 나면 말짱 헛농사”(「그렇지, 뭐」)라며 농촌의 실상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권 시집의 120편 시 가운데 옛 시인들의 귀거래사에 가장 근접한 시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杜絶」일 것이다.
穀雨 지난 지도 한참 됐는데
새잎 하나 피우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벽오동이여 대추나무여
鶴이 날아오는
하늘 지새우고
천둥번개 요란한
벼락 맞을 날 기다리며
묵묵부답
春信 杜絶이다
―「杜絶」 앞연
‘春來不似春’이란 중국 왕소군에 얽힌 고사가 있는데, 이 시가 바로 그 고사와 비슷한 경지가 아닌가 한다. 교통도 좋지 않고 소비의 편리함을 멀리한 그곳에서 시인은 답답함도 느낄 법하지만 “杜絶이 진짜 通信인 것을!” 하면서 고립을 오히려 달가워한다. 고향에 돌아와 사는 즐거움을 표현한 시로 「술나무」 같은 시도 있다. 산사나무의 열매를 따 술을 담그면서 “박달재 싱그러운 바람도/ 천등산 간질간질한 안개도/ 빨갛게 익는 산사열매 속으로/ 살며시 들어와 깊은 잠을 자는/ 오오 사랑스런 나의 술나무!”라 하니, 좋은 술이 빚어지기를 축원한다.
건강한 에로티시즘의 추구
두 권 시집을 읽다 보면 역시 오탁번 시인의 장기는 뛰어난 해학성과 거침없는 육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굴비」 같은 시에서 특유의 해학성을 보여주었던 시인은 『손님』에서도 이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폭설」이나 「해피 버스데이」「누룽지」처럼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우스갯말을 정리한 것도 있지만 어떤 정황이나 사건을 재미있게 정리한 시들이 더 많다. 초등학교 동창 김종명네 집에 놀러 갔다가 머리가 센 ‘안노인네’를 보고 동창의 어머니인 줄 알고 큰절을 하려다가 “임자! 술상 좀 봐!”란 소리에 큰 실수를 순간적으로 면한 일화를 갖고 쓴 「블랙홀」은 뭇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절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설정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사백 살 먹은 느티나무가
꽝꽝 뿌리내리는 소리 잘 들리는
우주의 적막 속에
아주까리꽃이
—아주까리 아주까리
실고추처럼 속삭이네
아주 까?
정관수술해서
광속光速의 탄알은 없다마는
아주까리?
―「아주까리」 전반부
‘아주까리’라는 꽃 이름을 교묘하게 변용하여 “아주 까?”라는 듣기에 조금 민망한 말을 고안해낸 시인은 정관수술→북한 인권법→여의도 마당→먼 두만강→우주의 적막으로 시공을 확대해 나가며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친다. 우리말의 음상(音相)을 재미있게 활용한 시로 「안해」도 있다. 토박이말사전에서 어원을 찾아보니 ‘아내’는 집 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라고 한단다. 화자는 어쩌다 젊은 시절이 떠올라 이불 속에서 슬쩍 건드리니 아내는 “안 해!”라고 하품 섞어 내뱉는다. 이처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가 2권 시집에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송이버섯의 시적 비유를 “좆 까라!”고 하는 데 이르면 그만 낯을 붉히게 된다. 동치미와 ‘同寢이’가 발음이 비슷하여 한 편의 시가 탄생하고, “은행나무와 했어요?”라는 여성의 질문의 속뜻이 ‘시적 교감을 했느냐’는 것이어서 독자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여보, 카섹스가 뭐래유?” 하고 물어본 농사꾼 아내에게 “병신, 자동차 안에서 방아 찧는 것도 몰러?”라고 쏘아붙인 남편이 감자 캐러 가서 경운기 위에서 시범(?)을 보이자, 아내는 “아유, 아유, 나 죽네”라고 하면서 숨이 넘어간다. 이런 이야기는 『고금소총』의 현대식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시인은 여성에게 반하기도 잘한다. 아니, 남성은 어여쁜 여성 앞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데, 이 땅의 시인들은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점잖음이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시적 화자는(아니, 시인은)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인간적인 시인이라고 할까, 시인의 개구쟁이 기질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온 처제를 데리고 경주 여행에 나섰다가 길가 노점에서 커피 파는 여성에게 반해 처제를 시켜 명함을 전하는 오탁번 시인이다.
2006년 3월 21일 오후 3시
조선시대 다식판 하나 사려고
앙성면 골동품 가게에 들렀는데
늙은 주인은 어디 가고
갓 스물 된 아가씨가 손님을 맞는다
볼우물이 고운 복숭아빛 뺨과
몽실몽실한 가슴을 보며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희고 미끈한 종아리는
왜무처럼 한입 베어 먹고 싶었다
―「絶世美人」 초반부
얼마나 이 아가씨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았으면 일시까지 기억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4시 반에는 천등산 순두부집에 들렀는데 음식점 젊은 아낙이 또한 여간 아름답지 않다. “짝짝이 가슴이 봉긋봉긋한/ 주근깨도 예쁜 아낙의 얼굴을 보며/ 식사주문도 잊은 채/ 정신이 휑하니 아득해짐”을 느낀다. 시인의 미인 예찬은 두 여성에게서 끝나지 않고 젊은 날의 아내가 이들보다 몇 곱절 예쁘다고는 하지만 (후환이 두려웠던 것일까?) 일시까지 기억하는 것은 마음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일 터, 절세미인 앞에서 남자는 어쩔 수없는 것인가 보다. 이런 시는 여성의 육체에 대해 정밀화를 그리듯이 그려내는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을 준다. 「名醫」에서도 시인은 “廢鑛됐다고 우는 여자도/ 한번 보면 금방 안다/ 어느 細胞 건드리면/ 黃金이 쏟아지는지/ 다시 排卵이 되는지/ 훤히 다 안다”고 하면서 여성의 몸을 시적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경우 여성의 몸은 2세 생산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생명의 원천이다.
(…) 젖이 불어 탱탱한 며느리의 젖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 눈에는 저승에 먼저 간 아내의 단호박 같은 얼굴이 다따가 떠오른다 한창 나이일 때 아내의 젖을 잠자리에서 한껏 어루만져주면 이튿날 아침 애비 젖먹일 때면 펌프 물 나오듯 젖이 철철 나왔다 애비가 백중날 황소 한 마리 타온 것도 다 젖심 때문이다
―「三代」 부분
아기가 먹을 젖을 애비가 아침에 빼앗아먹는데, 그 젖심으로 애비는 백중날 씨름대회에 나가 우승하여 황소 한 마리를 타온다. 이런 시는 단순한 육담이 아니다.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일련의 시편을 통해 시인은 종족 번식을 위한 인간의 생명의식을 예찬하고 있다. “밤 깊어 새끼들 다 잠들면/ 뒷물하고 살금살금 오는 아낙네의/ 탱글탱글한 멍게 속에다가/ 수세미외 딱 집어넣고는 싶었을 게다”(「擧風」) 같은 원초적 욕망에 대한 묘사 역시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인의 시의식의 산물이다.
박달재 마루 도토리묵을 파는 식당 앞에 있는 목조각 등신대의 크게 과장된 남근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할머니들이 남근을 만져보느라 클랙슨을 아무리 울려도 관광버스 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흙내 나는 구들방에서나
초저녁 원두막에서나
오직 그것 하나 앞세우고
지어미의 허기진 뱃속에
아들딸 암팡지게 씨 뿌렸던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이젠 더 그립다는 듯
관광버스가 빵빵 클랙슨을 울려도
귀 어두운 할머니들은
오딧빛 男根만 어루만지고 있다
―「男根」 종반부
크게 과장되게 만들어놓은 남근은 힘, 생명력, 번식력 등을 상징한다. 또한 건강한 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이 갓 서른 살 되던 해 사주점을 보고 온 어머니가 “아범은 宮이 다른 데서/ 자식을 볼 八字란다”라고 말하자 자식은 히죽히죽 웃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면서도/ 내심으로 아주 싫지는 않은 눈치였”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들은 하나지만/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양쪽에 두고/ 돼지새끼처럼 올망졸망한 손자들 틈에서/ 활짝 웃는 어머니 얼굴이/ 삼삼하게 떠오르는 오늘”(「八字」)이다. 모자가 참……,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지만, 이런 것은 윤리의식보다는 생명의식을 윗길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시인의 유머감각이 확연히 드러난 시로 「운수 좋은 날」이 있다.
노약자석엔 빈자리에 없어
그냥 자리에 앉았다
깨다 졸다 하며
을지로 3가까지 갔다
눈을 뜨고 보니
내 앞에 배꼽티를 입은
배젊은 아가씨가 서있었다
―「운수 좋은 날」 초반부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경험을 시로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체면이란 것도 있고 시인으로서의 위상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시를 쓸 무렵 시인은 대학 교수였고 시인협회 회장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체면 같은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하트에 화살 꽂힌 피어싱을 한
꼭 옛이응 ㆁ 같은
도토리빛 배꼽이
내 코앞에서
메롱메롱 늙은 나를 놀리듯
멍게 새끼마냥 옴쭉거렸다
―「운수 좋은 날」 중반부
하트에 화살 꽂힌 피어싱을 한 아가씨의 도토리빛 배꼽이 멍게 새끼마냥 옴쭉거렸다니 비유가 절묘하다. 눈앞에서 젊은 아가씨의 배꼽을 본 날이 시인에게는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날 전동차 안에서 화자는 문득 한창 때의 자기 모습을 떠올린다. “그 옛날 길을 가다가/ 아가씨를 먼빛으로 보기만 해도/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들끓는 야수를 눌러야 했던/ 내 청춘이 도렷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시인의 용기가 서평자는 마냥 부럽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서
우리가 오탁번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는 연필을 들고 읽어야 한다. 순우리말과 사투리가 자주 나와 그 뜻을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표시해두지 않으면 낱말의 뜻을 모른 채 넘어가기 때문에 그 시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대충 읽는 것은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금까지 예로 든 시 가운데 나온 언놈, 하릅송아지, 사물사물하다, 살강, 두레반, 다따가, 배젊다의 뜻을 말할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될까? 메두지기와 돌테미는 지명 같지만 쇠음달은 사전에도 안 나오니 뜻을 모르겠다. 이 글의 독자가 국어사전을 찾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아래에 제시한다.
언놈:손아래 사내아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
하릅송아지:나이가 한 살이 된 송아지.
사물사물하다:아리송한 것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아른거리다.
살강:그릇을 얹어놓기 위해 시골집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
두레반(두레상):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큰 상.
다따가:별안간
배젊다:나이가 꽤 젊다.
이제부터는 오탁번 시인의 시 중에서 우리말을 잘 살려 쓴 몇 편의 시를 통해 두 권 시집의 또 다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맷손을 돌릴 때마다/ 빙빙 도는 그대 사랑 따라/ 촉루가 되도록 살고지고/ 올콩 늦콩 다 넣고지고”(「댓돌」)의 ‘맷손’이나 ‘올콩’ ‘늦콩’은 시의 문맥상 뜻이 짐작이 가는 낱말이지만 ‘볼가심’은 문맥상으로 해결이 안 되는 우리말이다.
볼가심할 것도 없는 긴 긴 겨울밤
도둑고양이에 놀라 굴뚝빛 굴뚝새가 운다
장독대 정화수가 얼음꽃 피는 새벽이면
생쥐가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깨문다
밤나무 수펑 겨우살이도
함박눈을 솜이불인 양 덮고 겨울밤을 난다
―「인동忍冬」 전문
‘볼가심하다’라는 말은 ‘아주 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를 면하다’라는 뜻으로 썼던 순우리말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그런데 지금은 쓰지 않고 있다. 이 좋은 우리말이 사어가 되고 만 것이다. 오탁번은 순우리말을 시어로 즐겨 쓰는 이 땅의 많지 않은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임꺽정』을 쓴 홍명희, 『토지』를 쓴 박경리, 『객주』를 쓴 김주영, 『혼불』을 쓴 최명희, 『관촌수필』을 쓴 이문구, 『장길산』을 쓴 황석영 등은 우리 문학사에 민중어의 보물창고를 선사한 소중한 작가이다. 시인들 중에 누가 있는가? 제주도 사투리를 시어로 끌고 온 문충성 정도? 우리말을 잘 갈무리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시인들 또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할 터인데 그런 시인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오탁번의 작업은 주목되어야 한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수펑’은 무슨 뜻일까? 평자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에는 안 나오는데, ‘수펑이’에서 ‘이’를 뺀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수펑이는 수평아리나 수풀을 잘못 쓴 것이거나 충청도 사투리인 것 같다. ‘밤나무 수평아리 겨우살이도’로 이해하면 대등한 사물이 되고 ‘밤나무 수풀 겨우살이’로 이해하면 점점 작아진다.
「할미꽃」에서 “밭갈이하는 어미 소 따라/ 엇송아지 한 마리가/ 강중강중 뛴다”는 표현도 재미있다. 엇송아지란 아직 덜 자란 송아지이므로 짧은 다리를 모으고 자꾸 힘 있게 솟구쳐 뛰는 모양을 가리키는 ‘강중강중’이라는 부사의 사용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여우붓 족제비붓 너구리붓 끝에서
이팝 조팝 며늘취 곰취도
흰 멥쌀 같은 미선나무 꽃도
혼자서들 홋홋하게 웃네
―「할아버지」 마지막 연
이런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공자가 『論語』「陽貨篇」에서 한 말, “詩可以興可以觀可以群可以怨邇之事父遠之事君多識於鳥獸草木木之名”(시는 사람을 흥겹게 할 수 있고, 제대로 볼 수 있게 하고, 무리를 짓게 하고, 원망하게 할 수 있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할 수 있으며, 새․짐승․풀․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과 정확하게 부합하니 말이다. ‘홋홋하게’는 ‘딸린 사람이 적어서 매우 홀가분하게’란 뜻이다. 박종화의 『임진왜란』에 “장차 붉은 두 손과 홋홋한 자기 한 몸으로 이 거창한 난국을 이겨 내야만 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앞일이 캄캄했다.”라는 대목에서 볼 수 있었던 이 죽은 낱말을 시인은 「할아버지」란 시에서 부활시켰다. 『우리 동네』에는 순우리말이 우후죽순처럼 솟구치는데 몇 개만 예시한다. 이것들은 독자 여러분께서 국어사전을 직접 찾아보고 확인하시길. (굵은 활자는 평자가 일부러 강조하기 위해 고친 것.)
밭일하다 돌아온 아들이 호박밭에 내갈기는 오줌이 누리 떨어지듯 하는 어느 여름날(「三代」에서)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는 다 안다 헐값에 팔았는지 유기농이라고 허풍 떨어서 바가지 씌웠는지 갈쌍갈쌍한 눈빛을 보면 다 안다(「그렇지, 뭐」에서)
하느님이/ 새참 먹다가/ 사레라도 들렸는가/ 감투밥으로 핀/ 이팝꽃이/ 막 흩날린다(「雪眉」에서)
러브호텔에서 풀죽은 일본 놈이 나오며 호텔로 막 들어서는 뻣뻣한 조선 놈을 보고는 씨식잖게 웃는다 (중략) 한 점도 못 되어 탄저병 걸린 듯 오그라질 줄은 땅띔도 못하는 빳빳한 고추들만 러브호텔 방마다 약 올라 야젓하다(「고추잠자리」에서)
바늘귀만 한 바늘밥만 한 사랑도 아끼는 이 사람한테 얼씬도 하지 마라!(「呪文」에서)
겨우내/ 앙당그리고 서 있는/ 冬柏나무는/ 1ㆍ4후퇴 피란길에/ 찰가난한 어머니가/ 무명 포대기에 싸서 업고 가던/ 눈깔이 화등잔만 한/ 연약한 내 이런 몸 같았다(「冬柏 2」에서)
잠든 아내/ 슬쩍 건드려나 볼까 했는데/ 나 원 참,/ 볼일 보고 나니/ 금세 쪼그랑 막불겅이가 되네(「遮日」에서)
오요요/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다가/ 뒷다리 하나 들고/ 오줌 싸는/ 쌀강아지(「봄나들이」에서)
따로따로따따로/ 옳지 옳지/ 정윤아/ 섬마섬마(「섬마섬마」에서)
탱글탱글한 멍게가 삼삼한 걸 보면/ 자늑자늑 뒷물하는 소리 기다리며/ 내 영혼도 食貪이 났나 보다(「擧風」에서)
봉양읍 블루힐 전원카페에서/ 하릅강아지 발바리를 데려왔다/ (중략)/ 발바리는/ 앞발로 모가지를 긁다가는/ 꼭 개씹단추처럼 생긴/ 제 小門을 혀로 싹싹 핥는다(「발바리」에서)
허형만 시인의 아내는/ 입가에 자란자란 미소를 흘렸다(「弟嫂」에서)
눈에 뜨이는 대로 적어봤는데 이렇게 많다. 「冬柏 2」에는 “겨우겨우 숨을 이어가던/ 손님이 든 어린 나 같았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손님’은 다른 곳에서 집에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손님마마’의 준말이므로 천연두를 가리킨다. 이런 표현은 젊은 독자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듯.
나볏이 줄지어 날아가는
이웃 형제처럼 수더분한 기러기 떼여
고구려 사람들의 鳥羽冠 깃털같이
못자리에서 쑥쑥 자라는 모를
마을 사람들이 두렛일로
한 모숨 한 모숨 모내기하듯
몇 천만리 아득한 북녘 하늘을
나울나울 정답게 날아가겠다
―「雁行」 종반부
기러기 떼가 휴전선을 넘어 북녘 땅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묘사한 이 시는 나볏이ㆍ수더분한ㆍ두렛일ㆍ한 모숨ㆍ나울나울 같은 순우리말 쓰임도 눈부시지만 시 자체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 역사의식과 분단극복의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도 이 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이 땅의 청소년들이 모두 감상했으면 좋겠다.
마무리
두 권 시집에서 제법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가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시편이다. 특히 시집을 보낸 딸과 ‘두 돌 지난 손녀’ 등 피붙이들에 대한 진솔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편은 독자의 마음을 무한정 따뜻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아내 자랑, 자식 자랑, 손자 자랑을 하는 사람을 ‘팔불출’이라 부르며 놀리는데, 사실 그 자랑만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 좋은 것이 없다.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오늘날 가족간에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런 가족파괴, 가정파탄의 시대에 「첫돌」「돌반지」「하버지」 같은 시를 읽으니 입가가 절로 올라간다. 시인은 손녀를 화자로 하여 「고비」「할아버지 냄새」「에헴」 같은 시를 쓰기도 한다. 손녀를 화자로 삼았지만 동시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시에 대한 해설은 원고 양이 넘쳤으니 생략,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마지막으로 독자와 더불어 읽고 싶은 시는 「원고지」다.
시를 쓸 때는
쇠좆매로 영혼을 때리면서
숫눈처럼 흰
깨끗한 원고지에다
또박또박 쓰기로 한다
피를 토하듯
쓰기로 한다
―「원고지」 마지막 연
이 시를 통해 고백하는 것인데, 시인은 지금도 시를 쓸 때 원고지에 몽블랑 만년필 금빛 촉으로 쓴다고 한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빠르고 쉽기는 하지만 “시는 손놀림으로/ 재바르게 쓰는 게 아니다/ 내 영혼의 피를 찍어서/ 지우고 또 지우며/ 또박또박” 쓰는 것이라 한다.
시단에 나온 지 어언 40년이 넘었건만, 컴퓨터의 시대가 되었건만, 시인은 예나 지금이나 펜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분명한 이유가 위 인용한 부분에 나와 있다. ‘쇠좆매’란 예전에 황소의 생식기를 말려 형구(刑具)로 쓰던 매로, 죄인을 때릴 때에 썼다. 이런 매로 스스로 영혼을 때리면서 숫눈처럼 희고 깨끗한 원고지, 즉 눈이 와서 쌓인 상태 그대로의 깨끗한 눈 위에다 피를 토하듯이 시를 써야 한다는 각오를 고희를 앞둔 시인 오탁번은 다지고 있다. 나이를 좀 먹었다고 시인 스스로 대가연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 시단에서 오 시인의 이런 자세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말 사랑의 정신으로 고향노래를 계속 불러주기를, 우리의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기를 빌어본다. 그와 아울러, 술래가 되어 숨어 있는 여자 친구한테 다가가 ‘바둑머리’를 톡 때리며 놀리는 개구쟁이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기를 기원한다.
저녁놀 반짝이는 장독대 사이로
나붓나붓 순이 머리카락이 보인다
까치걸음으로 몰래 다가가서
바둑머리를 톡 때리자
혀를 날름대며 나를 놀린다
—일부러 잡혀준 거야! 메롱!
―「술래잡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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