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서양화라면 농촌은 동양화에 가깝다. 동양화의 화면(畵面)과 서양화의 화면을 비교해 보면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 바로 그림이 그려지는 화면에서 그려지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 즉 '여백'이다. 동양화에서는 여백에 색칠하지 않는다. 반면 서양화에서는 밑그림에 색이 칠해져 있다. 효율과 성장을 갈구하는 경쟁시장시스템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의 삶에서는 결코 빈 곳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양화에서처럼 빈 곳이란 미완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촘촘히 비좁듯이 붙어있는 아파트문화나 집주변에 공간이라도 있을라치면 방 한 칸에 부엌을 내어 임대로 활용하는 점들이 이를 대변한다. 이처럼 도시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그래서인지 빈 곳을 남겨두지 못하는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여백의 미(美)가 있는 농촌으로 이동하는 귀농·귀촌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2년 귀농 가구는 전년(1만 75가구)보다 11.4% 늘어난 1만 1220가구로 2010년(5405가구)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앞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귀농·귀촌 추이에 따라 지자체들도 도시민 유치에 관심이 높다. 귀농·귀촌에 대한 자체적인 지원책을 시행 중인 지자체가 늘고 있다.
그런데 귀농·귀촌인들이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할 얘기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귀농·귀촌인들이 농어촌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하는지이다. 시군의 귀농·귀촌 업무담당 공무원들의 설문결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전문적 농어업경영을 꿈꾸는 젊은 농어업인력'이 필요한가에 대해 필요함(10.9%), 보통(14.9%), 필요치 않음(74.3%)으로 응답했다. 왜 지자체 공무원들은 전문적 농어업인력이나 2·3차 산업 인력, 젊은 경영인 등의 역할에 대해서 필요성을 낮게 보았을까? 지역주민과 경합이 존재할 수 있는 농업 등 경제활동 분야보다는 문화, 복지, 교육 등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서비스 영역에서 귀농·귀촌인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이 농어촌 지역사회에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분명 농촌으로의 인구유입 등은 긍정적 요인이다. 하지만 지역 땅값 상승과 임차농지의 경합으로 기존 지역 주민에게 피해가 가고 분쟁과 갈등이 증가하고 있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귀농·귀촌은 순기능과 역기능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은 영농교육뿐만 아니라 정착하고자 하는 농어촌지역이 자신에게 어떠한 역할을 요구하는지 살펴보고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귀농·귀촌인들이 도농교류, 농촌체험관광 등 농촌마을 활성화 사업에 마을사무장이나 생태체험 해설사, 문화유산 해설사 등으로 참여하여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그림이나 사람이나 비움이 많을수록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농촌은 도시와는 달리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귀농·귀촌인은 지역안착을 위해 지역주민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농촌의 여백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빌딩과 상가로 도시를 끊임없이 메우려는 서양화 같은 '채움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즉 동양화의 '비움성'으로 농촌공동체에 행복을 담아보길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