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니 강원도 고라데이 마을에
흰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4월이 중순을 향해가고 있는데
어제는 봄비가 내리는 듯 싶더니 오늘은 춘설이 내리고,하늘은 흐렸다 개었다 햇님은 숨바꼭질을 거듭하고,
춘풍이 꽤 강하게 불어대니 이것이 삭풍인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봄날이었다.
이를 두고 흔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하는데,
즉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말로 당나라 측천무후
때의 시인 동방규(東方叫)가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왕소군을 소재로 지은 유명한 詩
소군원<昭君怨>의 유명한 구절로 그의
또다른 대표시 春雪이 떠오른다.
<春雪>
春雪滿空來 춘설만공래
봄눈이 하늘 가득 날리고 있네
觸處似花開 촉처사화개
눈 닿은 곳마다 마치 꽃이 핀 듯
不知園裏樹 부지원리수
정원속의 나무 구분할 수 없네
若箇是眞梅 약개시진매
어느 것이 진짜 매화란 말인가
봄은 왔으나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려 정원의 나무에 핀
눈꽃이 진짜 매화와 구분하기가 어려운 그야말로
雪中梅의 정경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春來不似春이란 말은 고달픈 인생살이를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되는데
요즘 시국상황과도 딱 일치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 구절이 쓰여진 詩 소군원<昭君怨>이
쓰여진 배경은 중국 전한의 궁정화가(宮廷畵家)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초상화를 일부러
잘못 그림으로써 흉노족의 선우(單于)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왕소군(王昭君)의 심정을 동방규(東方叫)가
대변하여 시로 지은것이다.
<昭君怨>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저절로 옷의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때문이 아니라네
봄이 와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한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이 유래하였다.
한편 왕소군이 어느 정도의 미인이었던가 알 수 있는
설화가 참으로 흥미롭다.
흉노족의 선우 호한야와 혼인을 마치고 흉노국으로
가는 도중에 왕소군은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고 고향 생각에 젖어 비파를 타게 되는데,
무리지어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비파소리를 듣고 잠시 날갯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왕소군은 ‘落’ 떨어질 낙 자에 ‘雁’ 기러기 안 자를
써서 ‘낙안(落雁)’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나~
춘설내리는 풍경을 보고 춘래불사춘을 느끼고 절세의
미인 왕소군을 생각하며 시한수를 즐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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