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메니저)
올바른 생태건축의 이해
- 지속가능한 삶을 파괴하는 현대건축의 문제
현대건축은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산업폐기물의 40%를 현대 건축폐기물이 차지하고 있다. 건축산업은 1차 에너지의 40%를 소비하고 있는 데 이 가운데 주택분야에서 60%의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다. 북미의 경우 주택 소유에 생애전재산의 40%를 투자한다.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생애재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말 그대로 주택문제는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옥죈다. 현대건축은 건축과정에서도 전문화를 통해 건축과정에서 건축주를 소외시켜 버린다. 적어도 도시인들에게 집은 더 이상 짓는 것이 아니라 사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방식의 건축문화, 집갖기 문화는 삶을 행복하게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 옛 건축전통 속에 있는 생태건축의 원형
해답은 오래된 미래에 있다. 50여년 전까지만해도 농촌의 대다수 농가들은 마을 목수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그 마을 뒷산의 나무와 흙과 돌을 이용해서 마을공동체가 함께 지었다. 자연자재를 이용하는 건강한 생태건축 그 자체였다. 전통적인 집짓기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생활기술이자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는 적정기술이었다. 집 주인이 스스로 그리고 마을 공동체와 함께 짓는 공동체 건축이었고 관계건축이었다. 지역의 풍토와 문화, 기후, 삶의 방식을 반영하여 지역건축양식으로 표현되는 지역토착 건축이었다. 건축과정에서 외부의 인력과 외부의 자원을 필요치 않고 내부의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므로 경제적 유출이 없는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건축이었다. 애초부터 농촌의 옛 건축은 지역화건축이었다. 생태건축의 원형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오랜동안 있어왔다. 다만 현대화의 물결로 우리는 그 소중한 건축적 자원과 가치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 생태건축의 다섯가지 측면
생태건축은 자연자재를 이용한 건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태건축은 건축부지, 건축 디자인, 건축 시공, 주거생활, 건축 폐기 등 5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건축부지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고 부지 조성 시 환경에 대한 영향을 줄이는 건축이다. 건축 디자인 측면에서 생태건축의 디자인은 햇빛과 바람 등 자연조건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건축이다. 또한 지역의 풍토와 기후, 문화를 반영하여 지역토착의 건축양식을 구현하는 건축이다. 건축 시공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자연자재를 이용하고, 건축 기술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중간기술이며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적정기술을 활용한다. 건축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저에너지 건축이며, 이웃 공동체와 더불어 짓는 공동체 건축이자 관계건축이다. 주거생활적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거주하면서 에너지 이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에너지절약형 건축이며 자연대류와 태양광을 최대한 이용한다. 건축물의 사용 이후 건축폐기적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그 자체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건축폐기물이 나온다 해도 극히 적은 건축이며 많은 건축자재를 재활용,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해지고 있는 생태건축 방법들
인류는 전세계 각지에서 예로부터 흙과 나무, 돌 등 자연자재를 이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지어왔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양해진 생태건축 방식들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건축방식이 100여가지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7년전부터 전통적인 흙건축 방식에 덧붙여 해외 생태건축 방식들이 소개되며 더욱더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흙과 돌, 짚을 섞어 짓는 토담집, 통나무와 흙반죽을 번갈아 쌓는 목천흙집(cordwood), 흙벽돌집, 옛날 전통 살림집이나 한옥에 주로 적용되던 심벽 맞벽치기, 통나무를 교차하도록 엇갈려 맞물리게 쌓은 후 그 사이를 진흙으로 메꾸는 귀틀집 정도는 익히 들어왔을터. 근래엔 잊혀졌다 정기용, 김석균, 이일우 등 건축가들에 의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틀에 흙을 다져 벽을 쌓는 담틀(다짐)흙집, 제가 국내 최초로 짓고 소개한 부대자루에 흙을 담아 짓는 흙부대집, 진흙에 짚을 섞은 된반죽을 쌓아 짓는 거섶흙집(cob house), 흙반죽을 공처럼 둥글게 반죽해서 척척 쌓아가며 짓는 알매흙집, 스트로베일연구회가 국내 보급하고 있는 압축볏짚단으로 벽체를 만들고 흙미장을 하는 압축볏짚단건축(strawbale house), 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의 현목 선생이 시도하고 있는 다다미 속에 들어가는 압축볏짚판재를 나무골조 안밖으로 붙인 후 미장하는 일명 볏짚다다미집, 나무골조 안밖으로 욋대나 쫄대를 줄줄이 붙인 이중심벽골조 안에 흙이나 석회로 짚을 버무려 다져 넣고 흙미장하는 짚버무리(light clay, light cob)건축, 역시 이중심벽 안에 왕겨숯(훈탄)을 넣고 미장하는 이중심벽방식, 목포대 건축과에서 보급하고 있는 종이 계란판과 진흙반죽을 번갈아 쌓아서 벽을 만드는 계란판흙집 등 해외로부터 수입되거나 옛 방식을 복원한 경우, 새롭게 개발된 다양한 건축 방법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단지 흙, 돌, 나무 등 자연자재에 치중하던 생태건축이 다양한 건축공법으로 분화되어 경쟁하거나 융합되고 있는 상황이다.
‘살림’의 집, 생태건축
시멘트와 철강이 주재료인 관행건축에 비해 자재를 만들고 가공하는 데 드는 화석 에너지 소모와 배기가스 배출 등 환경영향이 적은 생태건축은 ‘죽임’의 건축이 아닌 ‘살림’의 건축이다. 시멘트 박스를 쌓아놓은 것에 다름아닌 아파트와 시멘트 건물의 유해물질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의 건강과 정신을 해치고 죽인다. 에너지와 환경, 건강에 대한 대안으로 전세계 여러나라에서 흙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15억 인구가 흙집에서 살고 있다.
열을 저장하는 흙, 단열재로 활용되는 자연재료들
흙집은 보통 춥다고 생각한다. 전통 한옥살림집의 벽체는 주로 심벽맞벽치기 방식으로 지어지는 데 벽체 두께는 15cm 이하이다. 게다가 목구조와 흙벽의 수축률 차이로 틈새가 많아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드는 추운 집이 되고 만다. 지붕과 바닥, 창호 단열은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 지을 요량으로 집 구경 오는 이들은 흔히 “벽은 얼마나 두껍나요? 겨울에 기름은 얼마나 들어가나요?”라는 질문을 자주한다. 벽만 두꺼우면 단열이 잘되어 난방비를 줄일 수 있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묻는 질문이다. 건축물의 겨울철 난방 부하를 살펴보면 냉기침투 35%, 창 23%, 지붕 15%, 벽 15%, 바닥 9%, 문 3%입니다. 여름철 냉방부하는 습기유입 25%, 창 23%,지붕 21%, 실내습기 13%, 벽12%, 열기침투 4%, 문 2%입니다. 벽만 두껍다고 냉난방비를 줄일 수 없다. 기초와 바닥, 지붕과 창문 등 단열시공은 제쳐두고 벽만 두꺼운 집은 한 겨울 홀딱 벗고 두터운 웃옷만 입는 격. 구석 구석 철저히 단열을 해야 겨울철 따뜻하고 여름철 시원해진다. 철저한 단열 시공 개념이 과거 흙건축에서는 부족했다.
흙은 단순히 단열 성능만으로 보면 스티로폼이나 우레탄 폼 등 화학 단열재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흙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고 볏짚, 조개나 굴껍질, 왕겨숯 등 천연 단열재로 단열시공을 하면 에너지 효율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시멘트 마감 방바닥과 흙 마감 방바닥의 열 효율을 비교해본 결과 흙 바닥일 경우 최고 11.6% 정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양의 연료로 난방을 할 때 벽체 온도는 최고 2.6도, 바닥 온도는 최고 4도.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흙이 열을 저장하는 축열성능이 높기 때문이다. 흙이 시멘트 보다 1.16배 발열전도율이 높고 난방 종료 후에도 시멘트 보다 10% 가량 늦게 식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뿐 아니라 흙은 시멘트 보다 내부 온도의 열평형을 효과적으로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의 개량된 생태건축 방식은 벽체를 두껍게 만든다. 담틀, 흙부대, 알매흙집, 거섶흙집, 흙벽돌 집 등은 벽체의 두께를 최소 40cm 이상 만든다. 이중심벽 방식에서는 왕겨숯이나 짚버무리 등을 벽체 안에 단열재로 채운다. 벽체 두께는 대략 30cm 가량이다. 볏짚단 건축은 두꺼운 볏짚단 자체를 벽체 겸 단열재로 사용한다. 볏짚압축 판재(일명 다다미 속판)는 그 자체가 스티로폼과 같은 단열재 겸 합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붕 중천장 역시 왕겨숯이나 톱밥, 짚버무리 등으로 단열처리하고 바닥은 조개껍질이나 굴껍질, 볏짚단, 자갈 등을 단열재로 사용한다.
전통 한옥의 고질적인 문제인 벽체 틈새 문제는 조선 후기 북학파의 저작인 금화경독기 등에 소개된 바와 같이 한지해초풀이나 석회반죽채움 방식과 여기에 황마포 덧붙임, 목구조 요철, 액자틀 방식 등 그 해결책이 충분히 개발되어 보급되고 있다. 이렇게 개량된 틈새막음 방법과 자연 단열재 이용으로 더 이상 흙집은 추운 집이 아니라 겨울철 따뜻하고 여름철 시원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진에도 강한 생태건축물들
아이티, 칠레 등 전세계 곳곳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생태건축물은 과연 지진에 강할까. 흙집은 몇년이나 견고하게 버틸 수 있을까. 연구와 실증사례를 보면 의외로 놀랍다. 2천년이 넘은 만리장성의 상당 부분은 흙건축 방식의 일종이 담틀방식으로 지어졌다. 볏짚단으로 지은 스트로베일하우스는 지진이나 화재에 취약할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하중 시험결과(1999년-ASTM E72 인증자료집) 10평의 볏짚단벽체가 견딜 수 잇는 하중은 무려 25톤이나 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소방안전 테스트(1993-ASTM E119 인증자료집) 결과 압축볏짚단은 섭시 1012도의 고열로 2시간 가열했는데 전혀 불이 붙지 않았고 반대편 벽의 온도 상승은 5도 이하였다. 압축볏짚은 산소가 들어갈 공간이 없고 흙이나 석회로 미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흙부대집(earthbag house)는 국제건축사무국인 ICBO가 감독한 칼어스흙집학교의 실험결과 국제 건축기준 보다 200% 이상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흙부대 집 짓기
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건축방법
흙부대 건축은 1984년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달에 기지를 짓는 방법을 찾다가 개발한 건축방법이다. 우주선만 쏘아올리기도 쉽지 않은 데 달에 시멘트, 모래, 철근처럼 무거운 건축자재나 건축장비를 우주선에 싣고 갈 수 없는 노릇. 이때 이란 건축가 네이더 카흐릴리(Nader Khalili)가 달에 있는 흙과 암석을 부대자루에 담아 쌓는 건축 방식을 제안했다. 이때부터 그 사람은 칼어스(CalEarth) 센터를 세우고 여러 채의 실험적인 흙부대(Earthbag)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줄이어 독일 건축가 프라이 오토(Frei Otto)와 세계적인 흙건축 전문가 거노트 밍케(Gernot Minke), 오언 가이거(Owen Geiger) 박사가 흙자루와 흙 튜브를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주거용 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흙부대집들이 들어서고 있고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국내 경우엔 우리 부부가 지은 장흥 흙부대집을 포함해서 이미 완공되었거나 현재 건축 중인 흙부대집이 80 곳이나 된다.
새삼 돌아봐도 쉽고 단순한 집짓기
흙부대집은 쌀자루나, 마대자루, 순대처럼 긴 쌀자루 튜브, 스타킹처럼 긴 망사튜브, 양파망, 면포같은 자루에 흙이나 자갈, 마사, 모래 등을 담아 다지면서 벽체를 쌓고 흙이나 석회를 발라 집을 짓는 방식이다. 흙부대를 쌓으면서 매 단마다 철조망을 깔게 되는 데 철조망이 몰탈 역할도 하고, 벽체에 강력한 인장력과 결합력을 제공하게 된다. 철조망을 사용하기 싫다면 양파망이나 망사튜브에 찰진 흙을 담아 쌓는다. 진흙이 서로 밀려나와 접착하게 되니까 철조망이 필요없게 된다.
흙부대로 벽체를 쌓는 방식을 알면 흙부대 건축 전부를 알게되는 셈. 벽체를 쌓는데 사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이 간단하다. 흙부대건축에는 나무 기둥이나 철골조가 필요없다. 무골조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리 간단한 건축이라지만 말처럼 집짓기가 쉬울 리 없다. 어찌 집이 벽체를 쌓는 일이 전부일까. 집을 지으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비교적 흙부대건축이 간단하고 단순한 건축 방법인 것은 틀림없다. 국내에 지어진 흙부대집 대부분이 건축업자에게 맡기지 않고 건축 초보자인 집주인들이 직접 나선‘자기주도적 건축’이다. 이들 대부분이 특별한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고, 다만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 올려진 자료를 보고 집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전세계 농촌 어디나 토착적인 지역 살림집들은 거창한 건축이론이나 고급기술이 필요없는 단순한 집짓기 방식으로 지어졌다. 생활기술인 집짓기가 단순하고 쉬워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짓는 모든 생태건축은 혁명이 된다.
흙부대집 자랑을 해볼까요. 흙과 나무와 돌로 지어진 집은 자연 속에서 숨을 쉰다. 적절하게 습도를 조절한다. 아직 저희 집 목욕탕 천장에 물방울 맺힌 걸 본적이 없다. 미장이 다 마르고 나니 한 겨울 창문에 결로도 생기지 않는다. 가끔 서울이나 일산으로 볼일이 있어 아파트에 묵게되면 갑갑해서 못견딜 정도. 흙집은 숨을 쉬지만 시멘트집은 숨을 쉬지 않기때문에 확연하게 그걸 느끼게 된다. 외벽이 40cm이상인 두꺼운 흙벽의 단열과 축열 효과때문에 추울 때 한번 불을 때면 밤새 따뜻하다. 한여름엔 에어콘 없이도 서늘할 정도로 시원하다. 흙을 손으로 바른 손미장의 부드러운 곡선과 자연스러움과 더불어 집밖의 지나친 소음을 막아주니 그 조용함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흙부대집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데 있다.
흙부대집의 진정한 가치는 초보자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집이란 점. 커다란 빌딩이 아니라면 제 식구 들어갈 살림집 건축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생활기술이어야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농촌 마을사람들처럼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서 익힐 수 있는 공동체 기술이 살림집 집짓기이다. 스스로 지은 집은 개성이 묻어나고 추억이 깃든다. 전국에 지어진 흙부대집들을 돌아보니 다들 집들이 그집 지은 주인을 닮았다. 모두들 직접 지은 집이니까 자부심도 느끼고 부족한 게 있어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가 보다. 건축업자에게 맡긴 집에 하자가 있으면 용서가 않되도 제 스스로 지은 집은 못난 구석 있어도 용서가 된다. 애쓴 노동과 마음과 손에 흙을 묻혀가며 지었기 때문에 누가 천금을 준다해도 못 팔 것 같다 말한다. 사실 팔릴 집들도 아니고 팔 수도 없겠지요. 그때부터 집은 부동산이 아니다. 드디어 삶이 깃드는 집이 된다.
흙부대집의 또 다른 가치는 외부에서 사들여오는 값비싼 산업자재를 최대한 줄이면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다. 그 지역에서 나는 자연자재를 최대한 활용해서 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의 기호와 풍토에 맞는 특유의 토속건축을 우리 시대에 맞게 재창조할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로컬푸드local food와 같은 의미로 건축에서도 재지역화(re-localization)는 가능하지 않을까.
집을 지역의 자연자재로 마을 공동체나 친구, 이웃들과 함께 짓게 되면 그제서야 집이 돈만으로 짓는 것도 아님을 알게된다. 그때부터 건축비에 대한 우리의 고질적인 부담감과 평당 건축비에 대한 복잡한 계산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부동산 투기와 토건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짓는 모든 생태건축은 혁명이 된다’고 믿게 되었다.
짒 짓기를 행인에게 맡기랴
‘집 짓기를 행인에게 맡기랴’는 속담이 있다. 예전엔 익히 아는 가까운 마을 목수나 한 마을 이웃들과 집주인이 함께 집을 지었다. 너나 나나 한두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니 양심껏 지을 수 밖에. 헌데 요즘은 대개 낯선 건축업자에게 집짓기를 맡겨버리거나 누가 지은 지 모를 집을 상품으로 사버힌다. 도시야 어쩔 수 없다지만 농촌에 살라치면 제 집은 제손으로 이웃과 함께 지어야 하지 않을까.
눈이 게으른 법. 쥐가 코끼리 갉아먹듯 조금씩 조금씩
말이 그렇지 집짓기가 그리 쉬울까? 하지만 큰 빌딩도 아니고 제 가족 함께 살 살림집 지으려는 데 못할 건 없다.힘부쳐 성주(成住)하는 모습을 보고 마을 어르신이 한 말씀 한다.“눈이 게으른 법이야 사목사목 하다보면 다 구라져.”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보고 있자니 자꾸 맥이 빠지던 터 들은 얘기다. 어쩌면 그리 제 맘을 바로 읽으시던지. 말씀처럼 게으른 눈을 감고 쥐가 코끼리 갉아먹듯 조금씩 조금씩 짓다보니 어느새 집 한채가 눈 앞에 서 있게 되었다.
벽을 쌓는 방법을 알면 흙부대 집짓기를 다 배운 셈
제게 허락된 좁은 지면에 집짓기 방법을 소개한다는 게 도무지 적당치 않다. 우선 집의 구조를 살펴볼까요. 집은 땅과 집이 하나가 되게 하는 기초, 기초 위에 방을 만들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벽, 벽 사이에 세상과 통하는 창과 문, 벽 위에 햇볕과 비와 눈을 막아주는 지붕, 생활에 필요한 수도, 전기, 난방 시설들로 구성된다. 흙부대집은 벽을 흙부대로 쌓는다. 흙부대벽 위 아래에 기초와 지붕, 창과 문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사실 흙부대로 벽을 쌓는 방법을 알면 흙부대 집짓기를 다 배운 셈.
자갈도랑 줄기초와 자갈모래부대 또는 강화 흙부대
실제 집 짓기 순서에 따라 기초부터 시작해야겠다. 흙부대 집짓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간단한 기초 시공 방법. 흙부대 집은 자갈도랑 줄기초를 놓는다. 벽체가 놓일 자리를 따라 땅이 얼지 않는 깊이로 흙부대 보다 약간 넓은 도랑을 파고 보온덮게를 깔고 그 안에 자갈과 구멍뚫린 유공관을 넣고 다져서 만든다. 유공관 한쪽은 집 기초보다 낮은 곳으로 빼낸다. 이렇게 만든 기초 위에 두세겹 부대자루에 자갈과 모래를 담은 자갈모래부대나 흙에 석회나 시멘트를 10~20% 골고루 섞어 담고 물을 충분히 적셔 만든 강화 흙부대를 최소 3~4단 이상 쌓아 벽체 하부를 만든다. 이렇게 하면 큰비나 지진, 벽체 습기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담고 쌓고 다지고 깔면서 쌓는다.
흙부대 집 짓기에 사용되는 부대자루는 쌀부대, 순대처럼 긴 쌀부대 튜브, 콤바인망 튜브, 양파망, 마사 부대 등 다양한 부대자루를 사용할 수 있다. 부대자루나 튜브에 흙을 담아 쌓고 공이로 다지고 매단 마다 몰탈대신 철조망을 깔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면서 원하는 높이까지 수직과 수평을 맞춰가며 벽을 세운다. 낱장 부대는 미리 흙을 담아놓고 나중에 한꺼번에 쌓을 수 있고, 긴 튜브 형태는 벽체 위에서 흙을 담아가며 쌓는다. 망사 튜브나 양파망은 찰진 흙을 넣는데 철조망이 필요없다. 양파망을 사용할 경우는 너다섯단마다 철조망을 깔아준다. 모든 경우에 너다섯단 올라갈 때마다 철근, 나무가지, 파이프, 대나무 등으로 만든 쐐기를 수직으로 군데군데 박아주면 견고한 벽체를 만들 수 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아치Arch 창호와 강화흙부대 인방
창호가 들어갈 자리에 틀을 만들어 세운 후 흙부대 벽체를 쌓다가 창호 틀 윗부분에 벽체 하중을 받칠 수 있는 굵직한 나무 상인방을 걸쳐서 개구부를 낸다. 창틀을 고정하는 방법은 앙카볼트를 사용하거나 판재와 각재로 만든 수평연결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집 짓기에서 가장 비용을 줄이기 어려운 부분 중 한곳이 창호(창과 문)다. 인방목 값, 창호 틀, 창유리, 문 값이 만만치 않다. 요즘 사랑채를 짓기 위해 버려진 헌 문짝이란 문짝, 유리란 유리는 다 주어 모아놓았다. 재활용이 답. 그 다음 해결해야 할 부분이 창호 위에 올릴 인방목. 흙에 시멘트나 석회를 20% 정도 섞어 담은 강화 흙부대로 아치를 만들거나 강화흙부대에 철근을 넣은 인방을 만들면 인방에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동강난 프라스틱
대형 하수관으로 원형 창틀을 만드는 방법도 해결책.
장마비엔 예쁜 양산보다 비 잘 가리는 막우산이 최고
흙부대 집을 지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지붕은 제한이 없다. 한옥지붕이든 조립식 주택 슁글 지붕이든, 평 슬라브 지붕이든 지역기후와 각자 선택 나름. 지붕 모양새도 가지 각색. ‘좋은 우산과 장화가 있으면 걱정이 없다.’란 서양 격언이 있다. 방수 방습처리를 잘한 기초와 지붕을 비유한 말이다. 멋지고 세련된 지붕보다 눈과 비, 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잘 막아주는 지붕이 최고다. 단순하고 값싼 지붕이 못쓸 우산이 되란 법은 없다. 흙부대 벽체를 쌓을 때 지붕 모양새를 고려해서 높낮이를 달리 쌓고 지붕구조물을 얹으면 가장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지붕을 올릴 수 있다. 이때 흙부대 벽체와 서까래는 각재와 판재로 만든 수평연결판과 스틸 밴드나 강철선, 철근 쐐기로 연결하거나 한옥 살림집처럼 나무 도리를 얹은 후 지붕구조물과 연결한다. 지붕과 벽체가 구분이 없고 별도의 지붕구조물이 필요없는 돔dome 형태 역시 또 하나의 대안.
볏짚, 흙, 모래, 석회 반죽으로 미장
흙부대 벽체를 쌓고 지붕을 올렸으면 미장 할 차례. 흙부대 벽체 위에 올이 성글어 미장 반죽이 잘 밀려 들어갈 수 있는 그물망이나 철망 라스lath, 화이버매시fiber mesh를 부착하고 미장 반죽을 발라 마감한다. 미장은 보통 2~3차까지 바르게 되는 데 볏짚, 흙, 모래, 석회 등을 섞어 만들고 겹 바를 때마다 더 곱고 가는 흙과 모래를 사용한다. 마지막엔 석회물로 하얗게 마감할 수도 있고 황토물에 발수성이 있는 우묵가사리나 도박이, 율무풀 등을 섞어서 바를 수도 있다. 색소를 넣은 밀크페인트나 석회페인트를 만들어 .다양한 색으로 칠할 수도 있죠. 취향이야 각자 몫.
현대적이고 아주 세련된 흙 방바닥은 가능하다.
황토바닥은 토속적이지만 불결하고 물걸레질이 어렵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은 볏짚과 모래를 섞은 흙반죽을 깔고 여기에 공기중에서 딱딱하게 굳는 아마인유를 발라 방바닥을 만든다. 물걸레질도 가능하고 단단한 바닥을 만들 수 있다. 흙부대 집에는 구들이나 보일러 시공을 한 사례가 많다. 벽난로와 구들을 결합한 서양식 로켓매스히터Rocket mass heater도 요즘 흙부대집에 시도하고 있는 난방 방식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의 시대’, 생태건축 교육 활발
[건축가 없는 건축]의 저자인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인류 역사상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집은 단 5%를 넘지 않았고. 대부분 지역의 동네 장인이나 집에 들어가 살 사람이 직접 지었다.’고 말한다.현대 도시건축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아파트는 거의 완벽하게 전산설계(CAD)로 이뤄진다. 현대건축 기술은 토착건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건축가 없는 건축’의 시대를 만들어낸다. 현대건축은 건축과정에서 집에 들어갈 사람을 소외시켜 버린다. 그러나 대부분 제손으로 짓거나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지은 지역 토착건축은 ‘판에 박은 듯한 상업적인 건축의 포장된 세련미’에서 벗어나 있다. 집을 지은 보통 사람의 개성과 솜씨를 그대로 들어낸다. 손수 집을 짓는 이들은 저도 모르게 상업화, 물질화되는 건축에 인간의 손길이 계속 남게 한다. 많은 이들이 ‘건축가 없는 건축의 시대’ 자신이 살 집을 짓기 위해 건축을 배우려 하고 있고 다양한 생태건축 워크샵과 교육에 활발히 참가하고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은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어떻게 지을까에 대한 생각은 어떤 지역에 얼마짜리 집 또는 아파트를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완벽하게 대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준비하려는 순간 그들 속에 숨겨 있던 건축본능이 되살아나는가 보다. 수십만년 동안 집을 지어왔던 인류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숙이 새겨놓은 건축감각들이 아우성치며 살아난다. 그 아우성만 믿고 집을 짓기에는 아직 자신감이 부족한 이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나고 건축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함께 모여 집을 짓기 시작하고 있다. 인터넷은 대중들을 위한 열려있는 건축학교이다.
흙부대건축네트워크
필자가 운영하는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cafe.naver.com/earthbaghouse)는 흙부대로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이나 사례, 건축방법을 사진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정보와 지식, 그리고 경험은 공유되어야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정신에 입각해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자료를 보는 데도 제한이 없다. 카페가 개설된 지 2년이 못되지만 회원이 5천2백명을 넘었고 이 카페에 올린 정보를 보고 집주인이 직접 흙부대집을 지은 현장들도 80여 곳이 넘는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지역방을 통해 서로 만나 건축을 학습할 수 있는 강좌를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마음에 맞는 이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집을 짓고 있다. 이 카페는 독자적인 컨축 워크샵은 개설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전국귀농운동본부, 정농회, 에너지시민연대, 등과 함께 귀농자나 농촌 거주자들을 위한 생태건축, 대안에너지 워크샵과 강좌를 열고 있다.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cafe.naver.com/strawbalehouse)는 회원이 3만명이나 되는 가장 큰 생태건축 인터넷 카페이다. 이곳은 압축 볏짚단과 짚버무리를 이용한 건축방법과 관련된 자료, 수 많은 현장 사진들을 공개하고 있다. 필자는 이 카페에서 스텝과 주요필진으로 참여해 다양한 생태건축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이 카페는 정기적으로 생태건축 워크샵을 독자적으로 개설하고 있는데 건축워크샵을 거친 동기생들은 서로 자재나 공구를 공동구매하거나 품앗이를 하며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백여채 이상 지어졌다.
기타 인터넷 생태건축 카페들
이밖에 흙과 짚을 반죽해서 집을 짓는 거섶흙집(Cob house)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생태건축 카페(cafe.naver.com/cobhouse), 다양한 흙건축 공법들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모아놓은 흙사랑 카페(cafe.naver.com/earthist), 서민적인 담틀건축을 지향하는 김석균 선생의 흙건축연구소 ‘살림’ (cafe.naver.com/earthist21), 흙건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목포대 건축학과와 생태건축가들이 함께 흙건축 대중화를 위해 설립한 (사)한국흙건축연구회(www.earth.or.kr 또는 cafe.naver.com/eartharchitecture) 등에서 생태건축에 대한 많은 정보와 자료를 구할 수 있다. 때때로 진행되는 흙건축아카데미나 워크샵에 참여할 수도 있다.
생태건축협동조합을 꿈꾸며
- 이탈리아 볼로냐의 건축협동조합 무리(Murri)
이탈리아 볼로냐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5개 도시 중의 한 곳이다. 임금수준은 이탈리아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실업률은 3%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바로 협동조합이다. 볼로냐에만 4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시민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50개 기업 중 15개가 협동조합이다. 이탈리아 전체로는 700만 조합원에 연간 한화로 22조원에 달하는 소비재를 공급한다.
볼로냐에서는 집 장만도 협동조합을 이용한다. 1963년 만들어진 주택건설협동조합 무리(Murri)는 조합원이 되려면 한화로 8만5천원만 내면 등록할 수 있다. 주택건설협동조합은 건설사업과 임대사업도 함께 한다. 건축주도 조합원이고 건축협동조합의 일꾼들도 조합원이다.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건축에 종사하는 이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건축주인 조합원은 경제적인 비용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다. 건축에 대한 대중이해를 높이기 위한 잡지도 발행하고 조합원에 대해 주택마련 대출사업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조금 다르지만 공적부조사업의 일환인 건축분야의 사회적 기업이 3~4개 있다.
-그 밖의 다양한 사회적 건축 집단들
영리목적이 아닌 사회적 건축집단들을 살펴보자. 휴머니티 아키텍쳐(Architecture for Humanity)는 수익과 이익을 다른 사회적 활동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데 가장 효과적으로 난민촌을 짓는 방법에 관한 컨테스트를 연다든지, 빠래트나 포장재로 집을 짓는 방법을 시도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바티송콰르티에(Batir son quartier)라는 주거협동조합은 거주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조합주택을 건설한다. 싸우스마운틴(South Mountain)은 건축스튜디오인데 주로 빈민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건설한다. 사무엘 막비 교수가 주도하던 루럴 스튜디오(Rural Studio)는 건축대학원생들과 함께 빈민지역의 주거개선활동에 주력하는 데 주로 재활용자재와 지역자재를 활용해서 실험적인 집들을 짓는다. 탐스 슈즈의 1+1 플러스 하우스는 주택을 짓는 사람에게 일정 부분 별도의 돈을 받거나 비용을 절약하여 그 자금으로 해외의 빈곤 계층에게 집을 지어주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CNH건설은 건축협동조합으로 회의,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진행한다. 한옥문화원은 문화적 측면과 지배구조, 이익배분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한옥체험과 한옥짓기 교육을 함께 병행한다.
-농촌지역의 생태건축협동조합
농촌지역은 농협과 축협 활동의 경험을 갖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생활협동조합 회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극소수지만 공동육아 시설을 조합방식으로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자활후견활동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준 사회적기업인 건축단들도 지역마다 있다. 남도는 생태건축을 짓기에 좋은 흙과 수목자원을 갖고 있다. 또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귀농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도의 농촌지역에 볼로냐와 같은 생태건축협동조합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집을 지어야 할 귀농귀촌자들도 조합원이고 일자리가 필요한 건축일꾼들도 조합원, 설계자와 건축사들도 조합원, 새로 집을 개보수해야 할 사람들도 조합원이 된다. 이들이 생태건축워크샵을 통해 생태건축기술을 배우고, 때로 함께 품앗이로 집을 짓거나 그 과정에서 기술을 익히고, 조합원 터에 있는 생태건축자재를 활용하며 집을 짓는 건축협동조합은 불가능할까. 집을 원하는 건축주들은 경제적인 비용으로 집을 마련하고 집 짓는 일을 하는 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수익을 얻는 건축문화는 우리가 꿈꿀 느린 세상, 건강한 농촌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타 지역이나 해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외부 업체와 인력을 고용해 건축하기 보다 내부의 자원과 내부의 인력으로 집을 짓는 재지역화건축은 건축협동조합을 통해 견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지는 않을까.
건축협동조합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건축교육운동을 펼치는 건축문화학교를 사회활동으로 전개할 수 있다. 공공시설물에 대해 지역환경과 문화에 적합한 건축코디네이터 집단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공공시설에 대해 돈을 아끼면서 제대로 짓는 실험적 건축을 시도하는 비영리회사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재활용건축자재로만 지어진 특별한 마을회관을 지어볼 수도 있다. 귀농자 집단이나 지역공동체가 함께 품앗이로 지역축제처럼 건축을 하는 공동건축을 시도해볼 수 있다. 지역 내의 중고자재나 재활용자재, 자연건축자재를 모았다가 공급하는 건축자재은행 역시 건축협동조합의 사업 분야가 될 수 있다. 볼로냐의 무리(Murri)처럼 건축 파이낸스 사업도 가능한 데 농협조직과 연계를 고려해볼만 하다. 빈집, 헌집, 폐교, 빈 공장이나 축사 등을 개조해서 판매하는 사업도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 지역의 문화와 기후, 삶의 방식에 맞는 건축양식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보급확대할 수 있다. 지역건축가를 키워내는 사업도 목포대 건축과와 함께 모색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기존 건축회사들이 할 수 없는 건축협동조합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남도의 농촌지역이 그 선두에 설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이렇게 우리 삶을 왜곡하는 부동산이 아닌 관계의 건축을 꿈꿔본다. 누구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곳 느린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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