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른농촌 희망찿기/그린투어(농촌관광)

귀농의 희망? '테마형 체험마을'에 있죠

귀농의 희망? '테마형 체험마을'에 있죠

사람 | 2009/10/13 08:50 | Reported By 선샤인뉴스

[사람사는 향기] 창포체험마을 노재석 위원장 이야기


“테마형 농촌 마을의 모델이 되고 싶다.”


  농촌은 대개 농지(農地)로부터 소득을 창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간 창포체험마을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녹두보다도 더 척박한 곳에 있다는 의미로 ‘녹두밭 웃머리’라 불리던 곳이었다. 때문에 마을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귀농 후 창포체험마을을 개발한 노재석 위원장의 노력 끝에 현재는 젊은 사람들이 귀농을 위해 찾아올 만큼 생기가 넘치는 마을이 되어 가고 있다.

  창포체험마을에 정착한지 10년이 되간다는 그. 자동차 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할 만큼 도시 생활에 적응해서 잘 지내던 그가 어떤 연유로 귀농을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원래 고향은 전주였어. 그리고 취직을 해서 광주에서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지. 귀농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도시 생활에 대한 염증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농촌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졌지.”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귀농을 결심한 그가 대단해보였다. 그처럼 귀농에 성공하려면 후배 귀농자들은 어떤 것이 필요할까.

“귀농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준비라고 생각해. 자기가 어떻게 살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들어오는 게 중요하지. 귀농이냐, 귀촌이냐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동안 도시에서 살아온 자신의 사회경험을 농촌에 잘 접목시킬 수 있는 지혜로 지역도 발전시키고 본인도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겠지. 모든 걸 버리고 귀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연장선상에서 귀농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귀농 했으면 좋겠어.”

"자녀교육? 귀농 후에 더 많은 사랑 줄 수 있지"

귀농을 통해 현재 마을이 발전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그의 눈빛에서 후배 귀농인에 대한 걱정과 그들이 잘 정착하기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현재 노재석 위원장은 대학생 자녀 2명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한 명 있는데 막내는 귀농을 하고 나서 가진 딸이라고 한다. 대학생 자녀는 상관이 없겠지만 막내를 생각하면 자녀 교육 문제가 걸리지 않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금은 농촌도 도시와 많이 연계하고 있는 것이 많아. 인터넷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 농촌은 다른 것보다 정서적으로 여유를 많이 가질 수 있어서 딸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해. 대학생 애들은 지금까지 커오면서 정겨운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아. 하지만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막내는 내가 해외 우수 사례 시찰을 위해 며칠 동안 못 볼 거라고 하니까 평소에는 엄마랑 자다가 나랑 자고 싶다고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어서 시골이 정말 좋은 것 같아. 또 농촌에서만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나는 그래서 도시보다 시골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

농촌 출신인 필자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비록 도시 아이들처럼 많은 양의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농촌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딸이 도시로 떠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난감한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었다.

“광주에서 살 때는 지금 대학생 딸이 피아노를 사달라고 해도 사 줄 수가 없었어. 아파트에서는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막내는 밤이든 낮이든 마음대로 피아노를 치지. 학교 가기 전에도 피아노를 칠 만큼 엄청 피아노를 좋아해. 한 번씩 막내에게 서울대를 가라고 하면서 목표를 심어주기는 하는데 딸이 피아노를 계속 배우고 싶어하는 눈치라서 서울대음대로 가라고 목표를 주고 있지. 본인이 원하는 학교가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왠만하면 전주에 있는 중고등학교에 보내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 통학은 엄마가 태워다 주면 되니까. 교육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지는 않아.”

테마형 농촌마을 성공의 조건

마을 발전계획에 대해 설명중인 노재석 위원장

마을 발전계획에 대해 설명중인 노재석 위원장


농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전북지역의 다른 곳에서도 창포체험마을과 같이 테마형 농촌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선험자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주민들의 의식전환이야. 나는 창포체험마을을 일구기 위해서 대학교 4년 동안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했어. 우선 마을의 이장 같이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키우고, 그들을 통해 사업의 장점을 알려서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는 과정이 중요해. 그래서 일부러 마을 이장들과 함께 해외 선진지역, 우리나라 선진지역에도 많이 다녀왔어. 우리가 추진하는 사업이 왜 필요한지, 성공하면 얼마나 좋은지 그들이 직접 느껴야하니까. 결과는 성공적이야. 주민들의 의식전환 때문에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은 주민들도 많이 참여해주시고 계셔. 앞으로는 주민들도 선진 지역에 견학을 시키고, 교육기회도 제공할 생각이야.”

필자가 인터뷰를 하러 창포체험마을에 간 날은 공교롭게도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창포체험마을의 체험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처음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방송에도 출연했던 다듬이 할머니단의 연주였다.

“현재 다듬이 공연단의 단장이신 할머니의 연세가 80세이셔. ‘난타’ 공연처럼 대화가 없는 공연이지만 학생이 본 것처럼 할머니들의 미소만으로도 메시지 전달이 다 되는 멋진 공연이 바로 다듬이 연주 공연이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소리가 3개가 있었어. 아이 울음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다듬이 소리였어. 악기를 사용하는 다른 공연들처럼 곡을 연주할 수는 없지만 잊혀져 가는 우리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다듬이 공연에 사용되는 돌은 3개가 있는데 하나는 양반들의 옷을 두드리고 위한 돌, 하나는 선비들의 옷을 두드리기 위한 돌, 나머지 하나는 농군의 옷을 두드리기 위한 돌이야. 돌마다 다듬이를 두드리는 방식도 다르고, 소리도 조금은 다르지. 많은 사람들이 다듬이 공연을 보고 잊혀져 가는 것들을 잊지 않으면 좋겠어.”

다듬이를 두들기고 있는 마을 주민들

다듬이를 두들기고 있는 마을 주민들




체험 중심의 테마 농촌마을

창포마을 체험중인 방문객들

창포마을 체험중인 방문객들

창포체험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마을에 방문을 한 관람객들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창포 머리감기와 창포 비누 만들기 등은 연중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계절에 따라 감잎차 만들기 체험, 곶감 만들기 체험, 산나물 채취 체험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정월대보름과 단오에는 축제를 열어 관람객들에게 더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호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진행한 <만경강 달빛 축제>에서 달집을 태우고, 당산제를 지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지. 그리고 연중 참여할 수 있는 창포 비누에 대해 관람객들의 관심이 많아. 천연 비누이다 보니 많이 접해보지 않은 분들이 신기해 하시면서도 자기가 쓸 비누를 만든다는 것 때문인지 많이 좋아하시더라고. 또, 곶감 만들기 체험에 참여한 관람객들에게는 감을 깎고 나서 건조 과정을 거치면 우리가 직접 집으로 배송을 해드리는데 곶감을 받으시면서 우리 마을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실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곶감 만들기 체험도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다보니 연간 50만명 정도가 방문하는 체험마을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업을 시작하기 전보다 경제적으로 많은 수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는 특별히 소득 증진이 없다고 했다.

“아쉽게도 현재는 특별히 소득이 증대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미비한 실정이야. 관람객들에게서 발생한 수익은 대부분 마을을 운영하는 자금으로 쓰이고 있거든. 하지만 자산가치로 계산 했을 때는 조금은 얘기가 달라지지. 창포체험마을 운영을 위해 처음 부지를 매입할 때 당시 평당 약 11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25만원에서 30만원까지 올라갔지. 거기에 창고, 가공시설, 사업에 대한 가치 등을 평가하면 5배 정도는 상승한다고 생각해. 올해 계획대로라면 40억에서 50억 정도의 투자자금이 유치될 예정이야. 앞으로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길 거야. 그렇게 만들어야지.”

‘창포’. 솔직히 필자도 단오에 창포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왜 창포를 체험 마을의 테마로 정했는지, 그리고 창포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역시 창포 전문가였다.

“창포는 우리의 토종 자생식물(自生植物)이야. 전에는 전국의 하천에서 볼 수 있었지. 그러나 개발이 되면서 하천이 오염되고, 생활하수나 쓰레기 등에 의해 파괴되는 창포를 보고 많이 안타까웠어. 그래서 우리 생활에 유용한 창포를 이용해서 관람객들에게 창포의 유용성에 대해 홍보하고 싶었지. 옛 선비들은 창포를 식용으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관상용으로도 길렀어. 창포는 반그늘 상태에서 물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기르기도 쉽고, 향이 좋거든. 창포향을 계속 맡으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정신 안정에도 도움이 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창포로 유명한 덕진연못에 있는 창포가 우리의 토종 창포인 석창포가 아니라 외래종이라는 거야. 우리 재래종은 꽃도 별로 예쁘지 않고, 좀 작거든. 그에 비해서 외래종은 꽃도 예쁜 편이고 키도 크지. 전주시청에 찾아가서 우리가 석창포를 제공해 줄 테니 창포를 바꾸라고 건의를 했는데 검토 해 본다고 하더니 소식이 없네. 천년고도라는 전주에서 외래종으로 매년 단오마다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참 애매한 상황이지. 계곡에 있던 창포를 채취해서 지금 우리가 많이 늘려놓은 상황이야. 관람객들이 오면 창포 화분 만들기를 통해 직접 그 창포를 가져가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창포를 알리고 싶어. 우리 것이 좋은 거 아니겠어?”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농촌에서 지내면서 지금의 마을 모습을 일군 그의 열정이 빛나보였다. 그는 창포체험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면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우선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이겠지. 농업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양파, 곶감 공동가공시설을 세울 계획이야. 그리고 한우 공동 축사와 농가레스토랑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거지. 그리고 관관을 통해서 소득을 창출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어. 생태 체험 관광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그 다음은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상품화 할 계획이야. 그리고 귀농자들을 계속 유입시켜서 마을의 인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현재 귀농 귀촌자 황토집 테마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야. 안정적 소득구조를 만들어서 주민들의 삶도 윤택하게 만들고, 만경강 창포권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어. 이 모든 것들을 이루려면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

농촌은 도시에 비해 정적이다. 창포체험마을을 찾아가기 위한 길에서 본 창포체험마을 근처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창포체험마을은 도시의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낙후된 농촌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귀농인 노재석 위원장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전북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농가, 어가가 많은 만큼 농어촌의 발전역시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진정으로 전북, 그리고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계획대로 발전해 나갈 창포체험마을의 변신을 기대해본다.

/ 이홍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