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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바빠.” “너무 시간이 없어.” 그 말을 버리기 위해 도시를 떠나왔다. 하고
싶은 일, 좋아
하는 일을 하는 데 쓸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지금 그들은 행복하다. 마당에서 차 한 잔의 시간 을 즐기고 있는 변산
'쪼각집' 이철호·홍숙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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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새움 트는
과수밭 사이로 조붓한 길이 있다. 자전거라도 타고 달리면 좋을 길이다.
그 길 깊숙한 곳에 ‘쪼각집’이 있다. 조각보도
조각이불도 아니고 쪼각집. 쪼각 쪼각 이어붙여서 만든 집이라 해서 쪼각집이라 불린다.
익산에서 살다가 부안 변산 운산리에 귀농한
이철호(41) 홍숙자(37)부부가 지은 집. 영헌 (13) 다영(11) 영찬(6) 세 아이의 꿈이 자라는 집이다.
- “정말 새 집 맞아요?”
지붕이고 벽이고 문이고 창이고 어쩐지 삐뚤삐뚤한 것이
어디 바느질로 성글게 꿰맨 자국이라도 있을 것 같은 집. 학교 마루판이며 공사판 합판들이며 쪼만한 판자들을 주워다가 이어 이어 만들었다.
“도시에 가면 집이 될 자재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요.” 그렇게 더 이상은 제 몫을 찾지 못하고 버려진 것들이 그에게 와서
집이 됐다. 집을 다 짓고 나니 준공검사를 하러 온 공무원이 그러더란다. “정말 새 집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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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을 창문에 맞춘 것이 아니라 창문에 집을 맞추었다. 서로 다른 집의 삶의 내력을
지켜보았
을 문과 창들이 낯선 곳에서 한 식구로 만났다. 네 벽을 한바퀴 돌다 보면 그들이 보이지 않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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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 같지 않다” 는 그 말이 그이한테는 참 듣기 좋은 칭찬이다. ‘헌 것’이란 그게 누구의 것이든 ‘새 것’이 담지 못한
시간과 추억, 혹은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이기에. 이 집에 값을 매기는 것은 그에게 무의미하다. “우리 식구 삶을 담겠다고 우리 손으로
지은 집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요.”
옛사람들의 마음자리가 그러했다. 땅이고 집이고 다 ‘빌려쓰고 돌려주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잘 쓰고 돌려드리겠다는 뜻으로 집을 지을 때는 하늘에 고하고 땅에다 고하며 잘 보살펴 달라고 개토제(開土祭)를 지내지 않았던가.
이 집에 규격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관문은 아파트 리모델링 하는 데서 가져왔다. 창문은 고물상에서 헌집 부수고 거둬놓은 것을
사왔다. 하나에 2만원짜리도 있고 8만원짜리는 그 중 최고급이다. 집을 창문에 맞춘 것이 아니라 창문에 집을 맞추었다. 서로 다른 집의 삶의
내력을 지켜보았을 문과 창들이 낯선 곳에서 한 식구로 만난 것이다. 네 벽을 한바퀴 돌다 보면 그들이 보이지 않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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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숙자씨가 만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편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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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요하면 사지 않고 만든다. 이층침대가 있는 방. 숨어들기 좋고,
놀기 좋고,
꿈꾸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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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배인
‘수공’의 흔적들 2000년에 변산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들의 거처는 200만원짜리 콘테이너였다. 그곳에서 집이라는 것을
짓기 시작했다. 완벽한 설계도면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잘하려고 하는 욕심 없으니 무엇이든 즐겁게
덤빌 수 있다는 철호씨. 필요한 것은 대충 뚝딱뚝딱 만들어 버린다. 현관문 앞에 마음 가는 대로 올린 솟대며 뜨락 한구석 나무토막으로 만든
곤충들…. 공장에서 찍어낸 것 아니고 ‘수공’인 줄 누가 봐도 알 만큼 투박하다. 그래서 더욱 정답다.
“잘못 되면 다시 하면 되지
뭐!” 그런 ‘무사태평주의’가 집을 짓는 데 지치지 않는 힘이 됐다. 건강한 성인 두 사람의 노동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았다.
“우린 너무 바빠” “우린 너무 시간이 없어.”
그 말을 버리기 위해 도시를 떠나와 새로 시작한 삶이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쓸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그들은 행복했다.
그이들에게 집 짓는 것은 노역이 아니라 놀이였다.
소꿉놀이를 하듯 맨 처음 지은 집엔 굴러다니는 돌을 갖다가 벽을 쌓았다. 거기에 마루칸을 덧댈 무렵엔 그게 좀 재미없어졌다. 마침 납작하게 쪼갠
듯한 얇은 돌을 쉽게 주워올 수 있었다. 그걸 일일이 합판에 붙여 벽을 만들었다. 돌 하나에 사연이 돌 하나에 추억이 깃든 벽이 됐다.
나중에 지은 사랑채는 황토벽돌을 쌓았다. 그래서 이 집의 벽은 이쪽이 다르고 저쪽이 다르다. 시간의 흔적들을 제 몸에 간직한 집은
어느 한 구석 매끈한 구석이 없다. 헌데 곳곳에 배인 그 ‘수공의 흔적’들이, 그 손길을 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이 집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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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의 박자가 즐겁게 어우러지는 가족. 변산 ‘가족 풍물패’가 작은 무대에 오르면
객석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낯빛이 일순 환해진다. 연주 실력은? “알기에서 즐기기로 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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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도 주방
생겼다! 아 우리도 거실 생겼다! 처음에는 “딱 요기 요만큼이었어” 할 만큼 작은 집이었다. 방 한 칸 뚝딱 만들어
놓고 잠만 자다가 주방이 생겼을 때는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아 우리도 주방 생겼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아 우리도 거실
생겼다! 아 우리도 목욕탕 생겼다! 환호하며 살았다.
미완성의 집에 끊임없이 생각을 보태고 수수 천 번의 손길을 넣으며 비로소
집의 ‘주인’이 된 것 같았다. 도끼질 톱질 대패질에 흙일에 목수일 용접일에…. “못해도 괜찮아! 괜찮아!” 그런 맘으로 붙드니 일이
겁나지 않았다. 세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뚝딱뚝딱 공사판을 놀이터 삼아 컸다. 막내 영찬이는 막 걷기 시작할 무렵 <쇼파워비디오>란
프로에 ‘집짓는 아가’로 등장하기도 했을 정도다.
구들도 직접 놓았다. “안 따수믄 뜯어서 다시 놓으믄 되지.” 철호씨의
‘여유만만’은 한결같았다. 다행히 방은 뜨거웠으나 경사가 맞지 않았다. 밥상 놓을 때 맞춤한 책을 잽싸게 받치는 것은 이 집만의 풍속도.
“방바닥이야 좀 기울면 어때. 마음자리 틀어지는 일도 아닌데. ”
비금도엔 하트 해안이 있다더니, 이 집 아랫목엔 애써 그린 것
같은 하트 무늬가 있다. 잘 구운 빵빛깔 같은 것이 어쩐지 고소한 냄새가 날 것 같은 하트에는 내력이 있다. 막내 영찬이를 출산한 겨울이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서 동네 후배들에게 불 좀 때놓으라고 전화를 했더니 번갈아가면서 군불을 넣었더란다. 결국 깔아놓은 이불을 태워버릴
정도였으니, 그토록 뜨거운 배려와 사랑의 결과물인 이 하트 무늬는 보는 사람에게마다 즐거운 얘깃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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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하려고 하는 욕심 없이 뚝딱뚝딱 즐겁게 만든 솟대. 투박해서
더욱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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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으로 일상의 박자가 즐겁게 어우러지는 이 부부는 대학 풍물패에서 만났다. ‘가족 풍물패’는 그 때부터의
꿈이었다. 세 아이와 함께 작은 무대에 오르면 이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낯빛이 환해진다. 연주 실력은? “알기에서 즐기기로 가고 있는
중.”
‘견디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을 살고 싶었다. 눈뜨면 일하고 해지면 자고 싶었다. 그 소박한 꿈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꿈을 이루었다. 더 큰 집, 더 그럴싸한 차를 버리고 욕심 없이 살자고 마음의 자리를 낮추니 평화가
왔다. 가까이 변산공동체에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의지가 됐다.
돌아보니 도시의 테두리 안에서
‘맘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제 맘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넥타이와 출근시간, 신호등과 경적소리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난 이 삶이
만족스럽다. 해가 뒷산 모롱이를 다 넘도록 단체로 늦잠을 자는 식구들. 이 집 부모는 아이들을 ‘숙제와 지각’의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 속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 익히 아는 학교로 아이들을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얼마간의 정규학교 '체험' 후 홈스쿨링을 거쳐 지금
다영이는 동네 품앗이 공부방에, 영찬이는 전교생 11명이 ‘날마다 재미를 보고 사는’ 변산공동체학교 중1과정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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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사판에서 크면서 ‘집짓는 아가’로 텔레비전에도 등장한 막내 영찬이는 도무지
두려워하는
게 없다. 그물해먹에서 미끄럼틀로, 혹은 지붕 위에까지 종횡무진, 날마다 ‘집 모험’을 하는 영 찬이에게 집은 ‘추억의
힘’을 키우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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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면 혁명
같은 삶.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린 식구들이 다 낙천적이다. 그래서 밥을 잘 묵는다. 밥 많이 묵는 것이 힘이다. 하하”
아이 셋하고 부부가 한 달에 쌀 반 가마(20㎏)를 먹으니 쌀이 많이 든단다. 촌이라고 통닭 피자 배달이 없으랴만 단호하게 군것질거리를
없앤 결과다.
겨울에 털신 신고 온 가족 행차할라치면 지서리 큰 도로만 나가도 한번 돌아보는 이들이 있다. 허나 세상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지 오래. 그러고 나니 ‘내 식대로’ 행복이 성큼 다가왔다. 이쯤에서 만족한다. 소한테 쟁기질 가르치면서 젤 중요한
것이 멈추는 자리를 알게 하는 것이라 했던가. “워워!”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르고 함부로 헤매는 마음을 붙드는 그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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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힘’을
키우는 집 만날 한량 같은 철호씨지만 그이는 농부다. 귀농한 이래로 수렁물에 잠기는 논, 트랙터 빠지는 논, 그런
또랑논을 어느 때는 열두 마지기도 했다. 물 보러 다니는 게 하루일과였던 때도 있었다. 형편 따라 작년에는 열 마지기 지었던 농사를 올해는 삼십
마지기 짓게 됐다. 자급자족이 목표다. 아이들 또한 먹고 입고 사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꾸려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아빠가 집을
지으면서 자주 물은 것은 ‘이 집이 놀 만한 집인가’였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아이들이 잘 노는 집이다. 집안 곳곳에 자기만의 숨어들
구석이 있고 비빌 구석이 있는, ‘집 모험’이 가능한 집, 어른이 되어 추억할 거리가 많은 집. 못쓰게 된 그물을 구해 와 나무에 해먹을
매달고, 폐교 운동장에서 버려진 미끄럼틀을 굳이 끌고 온 이유다.
지난 겨울에 쓴 다영이의 글짓기를 본다. <어른들은 하나둘
일이 없어지고/ 어른들도 눈싸움 시작하고/ 아이들은 하나둘 일이 많아진다/ 그건 바로 놀기일.>
‘놀기일’을 잘하는 쪼각집의
아이들. 여름이면 엄마 아빠랑 지붕 위에 평상 갖고 올라가서 별을 보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창문이 삐뚤삐뚤한 이 집의 추억은 세상을 즐거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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