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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식(50)씨. 배 농사를 지으면서 그를 모르면 안 된다. 그는 나무보다 흙을 믿는 사람이다. 누구라도 만나면 그는 자신이 흙 가꾸는 비결을 아낌없이 들려준다. |
최씨는 이른바 귀농자다. 영덕이 고향인 그는 군대에 갔다 와서 서울에서 귀금속 사업을 하다가, 그의 표현대로 '쪽박 차고' 땅을 좀 사 두었던 안성으로 내려왔다. 어려우면 농사짓는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농사짓는 힘이면 절대 사업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데는 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5년 전, 처음에는 사과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배 재배가 사과보다 좀 쉬워 중간에 배로 바꾸었다. 최씨가 생산하는 배와 사과의 50%가량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한다. 나머지는 농협으로 낸다. 개인회원이 400명 정도 되는데 농사방법이나 사진을 함께 보내 고객관리를 한다.
소비자 행사도 개인적으로 준비해 펼친다. 안전하고 맛있으면 최고라는 생각으로 했더니 꾸준히 단골로 이어지고 그 소비자가 다시 신규소비자를 몰고 온다. 3월 되면 물건이 떨어진다고. 항상 과일 값을 고정했다. 그래서 수확기 때는 다른 것에 비해 비싸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싸다. 최씨는 사업을 해서 그런지 소비자 심리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최씨는 닭똥, 소똥, 버섯톱밥, 한약재, 가랑잎, 풀, 짚, 갈대 같은 유기물 재료에 흙살림골드를 잘 섞어 발효시켜 매년 150톤 정도의 퇴비를 밭에 뿌린다. 나무의 수세를 봐가며 도장지가 많고 좀 수세가 세다 싶으면 적게 주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따라 뿌리는 퇴비의 양을 조절한다.
과일 맛 내는 데는 톱밥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버섯 톱밥은 어느 정도 부식된 것이고 값도 싸서 짧은 기간에 바로 쓸 수 있다. 풀도 야적해서 옛날 식으로 토종퇴비를 만들어 가능하면 매년 쓴다.
여러 재료를 구하러 다니느라 그의 발걸음은 사방으로 뻗친다. 생선냉동창고에서 생선을 5톤 얻어와 액비를 담고 막걸리 찌거기도 50톤 정도 얻어온다. 게 가공공장에서 매년 20톤 정도 게 껍질을 얻어와 키틴을 만든다. 어디든 재료가 되는 곳이면 쫓아 들어가 구한다. 쫓아 다닌만큼 재료 구하기는 쉽다. 돈 주고 산 적은 별로 없다고 한다. 오히려 재료가 있는 쪽에서 치워주었다고 고마워한다고.
가능하면 가을에서 겨울까지 발효시킨다. 재료들은 쌓으면서 거적을 덮지 않는다. 여름과 가을에는 수분을 공급해야 하지만 겨울에는 수분공급에 애로가 있다.
그는 과수 하는 분들에게 꼭 권장하는 재료가 있는데 바로 해초다. 2년째 사용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실험하다가 작년에 전면적으로 휴면기에 1번, 초기에 2번 등 3번 살포했다. 계곡 근처 나무에서 매년 냉해가 있었는데, 해초를 뿌리자 냉해 현상이 사라졌다. 기형과도 적다.
안성배연구회 회원에게도 권해 해초를 쓴 농가만 냉해를 안 입었다. 꽃눈은 영하 1도만 내려가도 어는데 해초는 심해 풀이라서 추운 곳에 강한 유전인자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농약은 배는 6회, 사과는 7회 정도 친다. 6월에 봉지 싸고는 안친다. 그 다음부터는 친환경농자재로만 관리한다. 유기농자재는 농약 사용하듯 하면 안 된다. 한번 칠 때는 흠뻑 맞을 정도로 쳐야 한단다. 양분조절은 어느 자재든 어느 정도 해결하는데 전반적인 방제관계를 빨리 개선해야 심도 있는 유기농이 발전할 것이라고 주문한다.
친환경농가에서도 수확량을 안 줄이려고 자재를 많이 넣어 과다 영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잘못이라고 한다. 영양을 과다하게 준 과일과 자신의 과일을 비교하면 저장성이나 육질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최씨는 액비도 안 만들어 쓴다. 염류집적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라게 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칼슘제는 전혀 써본 적이 없다. 토양에 충분한데 주면 한쪽의 균형만 깨질 뿐이다.
그는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자기 땅의 5%는 퇴비장으로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그의 퇴비장에는 80톤 정도의 퇴비가 잘 익어가고 있다. 야적한 높이는 1∼2미터를 넘지 않는다. 많게는 5번까지 스키드로드로 뒤집기를 한다. 그렇게 뒤집어도 40∼50cm만 발효되기 때문에 밭에 나갈 때 잘 뒤집어서 실어나간다.
▲ 퇴비장, 여러 자연재료가 섞여 발효가 되고 있다. |
ⓒ 이우성 |
그는 매년 2번씩 토양검사를 한다. 검사 결과를 두고 회원들과 심도 있는 토의를 한다. 그가 흙을 최우선으로 가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0년 전 3년간이나 무농약재배를 시도하다가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했다. 자그마치 3억원 가량이 날아갔다.
"욕심이 컸지요. 토양은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뭐가 되겠어요? 망하고 빨리 뒤를 돌아보니까 땅이 살아나면 병충해가 억제된다는 걸 알겠더라구요."
그때부터 토양 만들기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견학도 다니고 공부도 많이 했다. 기술보다는 이론정립을 우선했더니 기술은 금방 터득할 수 있었다. 10년 배울 것을 5년 안에 배울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은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지금 유기물 함량을 6%대까지 끌어올렸다.
기본농업에 충실하면서 유기농업을 해야지 무대포로 해서는 자기만 손해라고 전한다. 돈 때문에 쉽게 달려들어서는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한다. 뜯어고칠 것은 마음자세요, 생각이라는 것이다.
생산비에 비해 유기농 과일 값이 따라주지 않으니 소비자 목표를 정해 거기에 맞추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유기농에서 생산비를 줄이는 것은 힘이 든다. 유기농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그것도 목표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상류특수층을 겨냥한 유기농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친환경농사 짓는 농민은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사필름은 흙에 묻어도 썩지 않고 200년은 간다. 그래서 그는 반사필름을 깔지 않는다. 그는 일체 외국여행은 자제하고 소비를 최대한 줄인다. 이제 농민들도 빠른 시간에 기술을 정립하고 정신을 무장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농업식민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 고집과 주관을 갖고 자기 농사는 철저히 짓는 것이 제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저농약으로 흙살림인증을 받았고, 20여 명 되는 회원을 가진 흙살림원곡지회 회장으로 있다. 농촌지도사, 안성새농민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품평회에서 수상경력도 많다.
부인 김정희(49)씨도 상농사꾼. 농사짓는 보람은 어디든 얽매이지 않고 다닐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하고자 하는 일에 만족하는 삶, 그것보다 편한 것이 어디 있으랴.
"눈을 감는 날 때까지 토양을 살리면서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그는 이제 꿈이 하나 생겼다.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관광농업을 하고 싶단다. 앞으로는 농촌의 자산인 향수, 시골정서 등이 상당한 수입도 올리고 중요한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기회가 되면 고향인 영덕같이 바다가 있고 계곡이 있는 농촌지역으로 내려가 옛 농촌의 형태가 남아 있고 순수한 마음의 주민들과 함께 순수한 순환농업을 하고 싶단다. 어릴 때 추억을 나누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를 만들 준비를 지금부터 착실히 하고 싶다고 전한다.
형편이 어려워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도와주고 싶다. 지금은 꿈이지만 가능할 것도 같다는 확신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굵다.
농사짓는 사람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그의 선 굵은 목소리에서 빛을 본다. 주춧돌 같은 생각,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니다. 그에게서 한국 농업의 등대를 본다. 그 빛이 안개 낀 한국농업의 바다를 환히 비출 것을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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