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2014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 나의 목표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운동하기, 하루 물 2L씩 마시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등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너무나 소소한 것들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언젠가는 꼭 해야지라고 마음만 먹고 여태까지 미루고 있었던 일이 하나 있다.
왜 진작 안 하고 미뤄왔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돋보이면서도 재밌고 너무나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교도소에 갇혀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 바로 집 주변 새들의 겨울나기를 위한 먹이통을 설치하는 일이다.
▲ . 필자 머리 위에 잣을 올려놓자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내려앉앗다. | |
ⓒ 김어진 |
내가 처음으로 집 주변의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기 시작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미국에서 10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때였다. 강 건너편으로는 캐나다가 보이고 사방이 숲과 들판밖에 없던 뉴욕 주의 한적한 시골이었는데 새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던 곳이다. 물론 사람들과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10개월간 지냈던 대부분의 기억들이 좋게 남아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10개월간 나를 돌봐주셨던 호스트 엄마 패티는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시던 분이셨다. 넓은 수영장 크기 만한 개인 숲에는 라마 월리와 그녀의 애마 카티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풀어놓고 기르셨고 인공 새집과 먹이통을 잔뜩 달아놓으셔서 집 마당에는 언제나 새들과 동물로 가득했다. 사실 집 주변 새들과 더불어 사는 이 버드피딩(Bird feeding)도 그녀에게서 배운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집 주변의 자연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가 발달하여 집집마다 새들을 위한 먹이통들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근처 마트에 가면 개나 고양이 사료를 팔듯이 새들을 위한 씨앗들도 한 포대기씩 팔았고 먹이통들도 아주 다양했다.
새들 마음껏 먹으라고 씨앗들을 부어놓을 수 있는 접시형, 하나씩 하나씩 빼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통형, 심지어 꽃의 꿀을 빨아먹고 사는 벌새들만을 위한 벌새 부리에 알맞게 만들어진 벌새 전용 먹이통도 있었다.
▲ . 손에 먹이를 놓고 펴보이자 곤줄박이가 올라왔다. | |
ⓒ 김어진 |
▲ . 먹이통에서 해바라기씨를 빼가는 박새 | |
ⓒ 김어진 |
집 앞에 설치해 둔 먹이통이 8개나 되어 새들에게는 잔칫상이나 다름없었기에 매일 아침 나는 왁자지껄 떠드는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다양했다. 떼로 몰려와서 요란하게 먹어대는 골드핀치,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왔다가는 야생 칠면조, 한밤중에 씨앗을 다 털어가는 너구리, 뿌려놓은 씨들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많은 블루제이와 청설모들, 겁이 많아서 아무도 없을 때 슬쩍 오는 숲비둘기들과 굴뚝새, 또 이들을 노리려고 나타나는 쇠황조롱이까지.
다양하고 정신없는 손님들로 붐벼대는 덕분에 아무리 할 일이 없는 무료한 날이라도 창문 밖만 바라보면 심심할 수가 없었다. 또 미국 박새들이 찾아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서 손 위에다 씨앗을 올려놓고 펼쳐 보이곤 했다. 유난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들이라 이러고 있으면 손 위로 날아와 씨앗을 잽싸게 하나 물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곤줄박이라는 예쁜 새가 사람 손 위에 올라오기도 한다.
▲ . 매우 협소한 베란다 먹이통. 직박구리 한 마리가 찾아왔다. | |
ⓒ 김어진 |
새들과 같은 장소에 어울려 산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직접 해보면 삶을 한층 더 보람차게 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즐거운 일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하기로 마음먹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하고 신년 목표로 삼고 있다니….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당장 해보자.
미국 시골만큼이나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 도시에서도 보이는 새들이 있다. 직박구리, 곤줄박이, 박새, 쇠박새, 진박새, 오목눈이, 참새, 까치, 쇠딱따구리 등 흔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보이지 않는 우리 이웃들이다. 이 녀석들이 나의 주 타깃이다.
미국 사람들처럼 집 앞에 넓은 마당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에겐 베란다라는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기에 적합한 장소가 있다. 그러나 수요가 없어서 그런지 미국처럼 새 전용 먹이통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직접 만들면 되지 문제될 건 없었다. 실제로 내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는 베란다 난간에다가 새 먹이통을 설치하여 이미 새들과 더불어 사시는 분들이 여럿 계신다.
대부분 안테나 또는 난간에 메달 수 있는 화분대를 이용하여 먹이통들을 만드셨는데 우리 집에는 화분대도 없고 안테나도 없어서 그냥 집 안에 굴러다니는 적당한 목재를 찾아서 적당히 베란다 난간에다가 묶어버렸다. 보기에는 매우 협소하지만 내 눈에는 매우 그럴싸하게 보였다. 그 위에다가 먹다 남은 귤을 몇 조각 올려놓으니 금상첨화. 이제 새들이 날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 . 박스로 만든 큰 먹이통에는 직박구리처럼 덩치가 큰 새들이 찾아왔다. | |
ⓒ 김어진 |
그러나 나의 정성이 약간 부족했는지 새들은 내가 설치해놓은 먹이통을 쉽게 찾지 못 하고 끼엑끼엑 울며 지나치기 일쑤였다. 층수가 2층이기 때문에 새들이 찾기에 그리 어렵지도 않는 위치인데 뭐가 문제일까. 새들이 먹이통을 찾을 수 있도록 근처에 있는 나무에다가 귤 조각들을 꽂아도 봤지만 효과를 보진 못 했다. 안 되겠다. 먹이통을 여러 개 만들어야겠다.
우선 먹이통을 놓는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베란다는 새들의 눈에 띄질 않으니 안 되겠고 집 앞에 있는 나무들이 적당해 보인다. 여기라면 새들이 쉽게 발견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먹이통을 만드는 일 뿐이다. 만드는 과정은 간단했다.
사실 먹이통이라는 것이 한 가지 모양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만들면 되는 일이다. 바구니를 걸어놓아도 좋고 접시를 꾸며서 올려놓아도 좋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유분방하게 자신만의 먹이통을 만드는 것이다. 재미도 있고 더불어 산다는 뜻도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아이들 교육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 새 전용 먹이통에 골드핀치들이 몰려왔다. | |
ⓒ 김어진 |
나 같은 경우에는 박스와 우유곽을 사용하여 먹이통을 만들었다. 매주 있는 분리수거 날 먹이통으로 쓸 만해 보이는 박스들이 있기에 그냥 주워왔다. 그 다음 새들이 씨앗을 빼먹고 갈 수 있도록 칼로 구멍을 찢고 옷걸이를 이용하여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으면 끝. 아주 간단하게 완성이다. 재료 또한 재활용 쓰레기들을 이용했으니 모양은 좀 허접하지만 이만하면 친환경 먹이통이라 해도 되겠다.
총 2개를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는 작은 새들을 위해서 조그만 우유곽을 이용하고 또 다른 하나는 직박구리나 딱따구리처럼 큰 새들을 위해서 좀 큰 박스를 이용했다. 또 사람들마다 각자 식성이 다르듯이 새들도 선호하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에 작은 새들을 위해서는 근처 매장에서 사온 해바라기 씨들을 놓고, 직박구리를 위해서는 집에서 먹다 남은 귤을 올려놓았다. 그 외에도 호두, 잣, 쇠기름 등 새들에게 줄 수 있는 음식은 다양하다.
이렇게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기본적인 이유는 겨울에는 새들이 먹이를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 여름에는 주지 않는다. 오로지 겨울에만 준다. 새들이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새들이 앞으로 스스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해보면 알겠지만 새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어서 그만두기가 아쉽다. 그러나 진짜 새들을 위해서라면 잠시 여름 동안은 먹이나누기를 멈췄다가 다시 겨울이 오기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 . 미국에선 먹이통에 딱따구리들도 종종 찾아오곤 했다. | |
ⓒ 김어진 |
집 앞에 먹이통을 설치하면 그 즉시 바로 새들이 몰려올 줄 알았는데 집이 후미진 곳에 위치해서 그런지 새들이 찾아오기까지 약 2주 정도의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먹이통에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는 걸까 싶은 걱정도 들었었는데 그냥 시간이 약이었다.
드디어 박새와 직박구리가 날아와 씨앗들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치해놓은 먹이통에서 해바라기 씨를 빼가는 박새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와우~. 이제부터는 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새들이 찾아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라. 꽤 재밌다. 자연을 정복해야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어울려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문화가, 내가 보았던 미국만큼 발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 새들을 쫓아내고 씨앗을 독차지했던 청설모들 | |
ⓒ 김어진 |
▲ . 벌새 먹이통에 벌새가 찾아왔다. 이런 것도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
출처 : 하늘내린터 귀농귀촌 힐링캠프
글쓴이 : 하늘내린터(김황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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