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 깊숙이 제 몸을 파묻으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잭 캐루악처럼 건강한 고독을 만끽하기 위해 산장의 산지기가 되고 소로우처럼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숲 속, 호숫가 옆에 오두막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이곳 현리, 사람들은
그저 자연이 좋아 산속에 스스로 길을 냈다.
한병호 작가의 작업실
외딴 숲, 자연과 하나가 되다
>> 산등성이 바로 밑에 만들어진 미니 정원. 볕이 잘 들지 않아 늘 서늘한 이곳엔 주로 양치식물을 심었다.
9월에서 10월, 다시 11월로 습관처럼 종이 달력을 넘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가을이 언제 와있었는지 그리고 가을이 어느새 또 이렇게 가고 있는지.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다 마른 낙엽을 짓이기고 가시투성이 밤송이를 까다가 코끝, 손끝에서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때, 그리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비로소 계절은 제 얼굴을 내민다. 이렇게 가을을 절감하며 끝도 없이 들어간 산속, 더 이상 갈 길 없이 거대한 자연과 마주쳤을 때, 마침내 가평군 현리에 위치한 일러스트레이터 한병호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어느새 산 중턱 너머까지 온 듯 산봉우리도, 하늘도 이곳에선 그리 멀지 않다. 작가는 2002년, 하늘과 산?돌과 나무만 있던 지금의 작업실에 처음 들어왔다. 각종 나무와 꽃, 연못, 텃밭까지 잘 가꾼 마당과 정원이며 본체 건물 외에도 별채로 지어진 작업 공간, 통유리로 된 데크까지 지금의 모습을 완성하는 데 꼬박 8년이 걸린 셈이다.
>> 별채로 마련한 작업 공간. 흙과 시멘트로 손수 지은 이곳에서 작가는 일러스트 외에 자르거나 붙이는, 대형 작업을 한다.
“처음 설계부터 벽을 바르고 지붕을 얹는 일까지 모두 제 손으로 했어요.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작업실이며 마당의 계단, 불 피우는 아궁이까지 모두 투박하고 삐뚤삐뚤한 것이 아귀도 잘 맞지 않아요. 불안불안하죠.” (웃음)
작가의 말대로 건물 외관이며 실내, 배치된 가구 어디에도 정석은 없다. 땅속에 큰 고무 대야를 묻어 만든 연못에선 혹한의 추위 속, 연꽃이 겨우내 잠을 자고 나무를 주워 만든 다리에 합판을 얹어 완성한 야외 탁자는 어른 셋이 앉을 만큼 튼튼하다.
>> 본체에 연결해서 지은 또 다른 작업실. 원목을 소재로 한 심플한 외관이 돋보인다.
실내의 가구는 어디 하나 짝이 맞지 않으니 거의 직접 모두 만들거나 주워다가 색을 칠하고 손잡이를 달며 갖다놓은 것들이다. 작업실 역시 처음에는 살림집도 겸해 한 채만 지었지만 하나둘 늘리기 시작한 것이, 일정한 컨셉트를 갖기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살리며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 냈다. 뒷마당 쪽으로 공간을 내 만든 데크는 통유리창이 실내와 야외를 자연스레 연결해 앉아만 있어도 사방에 산수화, 수채화가 펼쳐진 듯 멋진 풍광이 연출된다. 겨울을 대비해 설치한 난로 옆에는 마른 장작이 얌전히 쌓아 올려져 있고 한쪽에는 화로와 커다란 솥단지가 마치 빌트인 가구처럼 세팅되어 있기도 하다. 비가 오거나 혹한 탓에 야외 정자로 나가지 못할 경우에도 이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간단한 요리 등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미니 주방인 셈이다.
왼 쓰지 않고 버려진 장독이나 항아리 등을 이용하여 운치 있게 꾸민 마당.
오 재작년 심은 사과나무, 작은 묘목 빨갛고 탐스러운 열매가 열렸다
데크 외에 또 새로 지어진 두 채의 작업 공간은 용도에 따라 그 쓰임이 구분된다. 주로 용접과 같이 대규모 작업을 하기 위한 별채 작업실이 흙과 돌 로 전통적이면서도 소박한 풍경을 연출한다면,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오밀조밀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공간의 외관은 원목으로 되어있어 심플하며 이국적인 느낌이다. 본채 건물과 이어져 동선이 용이한 이곳엔 높은 천장 대신 또 다른 공간, 다락방이 내어져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동화나 만화 속에 등장했던 비밀 아지트를 발견했을 때처럼 묘한 기대감에 올라가 보니 온통 희게 칠해진 벽, 대형 스크린과 편안한 소파, 각종 LP와 CD들이 눈에 띈다.
>> 자연과 어울어져 동화된 작은 계단
흙과 돌 로 전통적이면서도 소박한 풍경을 연출한다면,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오밀조밀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공간의 외관은 원목으로 되어있어 심플하며 이국적인 느낌이다. 본채 건물과 이어져 동선이 용이한 이곳엔 높은 천장 대신 또 다른 공간, 다락방이 내어져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동화나 만화 속에 등장했던 비밀 아지트를 발견했을 때처럼 묘한 기대감에 올라가 보니 온통 희게 칠해진 벽, 대형 스크린과 편안한 소파, 각종 LP와 CD들이 눈에 띈다.
“전에는 아이들이 작업실에 간다고 하면 곧잘 따라오곤 했는데 좀 크고 나니까 귀찮아하더라고요. 같이 곤충도 채집하고 근처 강가에 물고기도 잡으러 가는 대신 이제는 영화 보러 작업실 놀러 가자고 이야기해야 그나마 따라 나서요.”
>> 겨울을 대비해 데크에 설치한 난로, 산에서 주워온 나무들을 땔감으로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작업 중간, 중간 휴식을 위한 장소려니 생각했는데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 초등학교 때 처음 이곳에 와 아빠와 함께 낚시를 다니고 직접 그린 물고기 그림이 책에도 실린 큰딸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작가는 자연과 더불어 꽤 오랜 시간을 보내온 셈이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뛰어놀던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아 언제고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자연의 품이다.
>> 앞마당, 불을 지피는 아궁이부터 바위틈의 새집까지 모두 작가의 손길이 닿아있다.
특히 2001년 발간된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는 근 10년간 강원도 깊은 산속, 미산 계곡을 드나들며 완성한 생태 그림책으로 자연과 환경에 기울인 관심과 열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와 어름치, 쉬리, 돌고기, 꺽지 등 민물고기 18종을 꼼꼼히 그려낸 관찰일기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자연의 존재를, 그리고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직도 작업실 주위의 벌레들을 채집, 관찰하고 지붕 밑이며 기둥 위, 바위 틈 사이 곳곳에 새집을 만들어 부화를 돕는 일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언젠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거실에 들어온 독사를 잠자리채로 살짝 들어 놓아 줬다는 이야기를 마치 이웃의 방문처럼 덤덤히 말할 만큼 이미 그는 자연과 가까웠다. 지금에야 이곳에 모신 부모님 때문에 텔레비전 안테나도 설치하고 보일러 가동에 휴대폰도 연결되는 각종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초창기, 서울에서 작업실에 내려오면 내려오면 일단 잠적부터 하던 그였다. 자연과 나 둘만이 숨쉬는 곳, 나무를 자르고 옮기거나 벽돌을 쌓으며 경험했을 노동의 신성함, 그리고 고요함 속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창작의 원천에서 건강한 고독을 즐기며 말이다.
>> 건물 본체에 있는 작업실 겸 서재. 군더더기 없이 널찍한 공간으로 책장부터 소파, 책상까지 모두 버려진 가구들을 줍거나 직접 만들었다.
최근 수달에 관한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대한민국에서 수달이 살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멸종 위기 상태로 직접 육안으로 보기란 더더욱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연과 최대한 가까운 곳, 밀접한 주제로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그에게 포기나 희망의 부재는 성급한 판단이다. 작업실에 마치 문패처럼 걸려진 ‘날지 못하는 새’라는 문구 역시 꺾여진 꿈이나 비상할 수 없는 절망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새들이 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오히려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산짐승과 인간들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 즉, 우리가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그 의미를 곡해하거나 또 무언가를 동경하며 오히려 자신의 소중한 무엇을 잊고 살 수 있음을 그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 ‘날개 없는 새’의 형상. 내년 초에 전시를 가질 예정이다.
비단 자연뿐 아니다. 작가는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것들, 눈여겨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으며, 태초에 존재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도깨비와 범벅장수>, <꼬꼬댁 꼬꼬는 무서워> 등과 같은 그림책에서 그는 자신만의 도깨비를 그리고 낫이나 인두, 녹슨 숟가락, 빗자루 털들을 이용해 만들어 전시를 하기도 했다.
어딘가 어리숙하며 귀엽기까지 한 그의 작품들은 사실 이제 ‘도깨비’라는 단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존재를 각인시킨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최근 전시를 준비하며 작업하고 있는 ‘날지 못하는 새’ 역시 호미부터 실타래, 문고리, 작두 등 전통 농기구와 소품들을 약간 구부리거나 피는 최소한의 작업을 통해 그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외에도 작은 솔방울이나 씨앗, 돌멩이부터 잔뜩 소금물을 먹고 떠내려온 해변의 나뭇가지까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완성된 작품들은 작업실 이곳저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일러스트 작업 외에도 그는 옛날에 쓰던 농기구나 전통 생활용품을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이면 꼭 작업실에 들른다고 했다. 비록 하나둘, 새로운 집이 지어지고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의 번잡스러운 걸음도 잦아졌지만 아직은 자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를 따라 작업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어느 곳에서나 가을 그 자체가 느껴진다. 깎아지듯 급격한 경사의 뒷마당 아래나 텃밭 위로 솟구치는 산봉우리 사이, 코끝에서 폐로 온몸 구석구석 퍼지는 공기 역시 계절의 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 가구부터 작품까지 주로 대형 작업을 위해 마련된 별채의 내부 모습. 다양한 공기구가 구비되어 있다
공간의 컨셉트를 물을 때마다 필요와 쓰이는 용도에 따라 지어진 집이라 별다른 것이 없다며 손사래 치던 작가의 말대로 작업실은 외딴 숲 속, 투박하게 제멋대로 지어진 어느 산지기의 산장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벽이며 천장, 바닥과 같은 내부는 물론 지붕과 기둥, 앞뒤 마당까지 곳곳에는 그 산지기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묻어난다. 또 버려진 물건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주변의 사물을 이용해 만든 살림도구며 기기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의 삶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몇 해 전 심은 사과나무에서 열린 것이라며 내온 탐스러운 사과는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었던 달콤함이 혀에 감기고 속살처럼 부드러운 껍질이 잘근 씹힌다. 자칫 놓치고 말았을 가을의 뒷자락을 이곳, 현리에서 늦게나마 붙잡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참 좋은 계절,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멋진 삶이라고.
일러스트레이터 하현이, 강미선 부부의 집
깊은 산속, 나만의 드림 하우스를 짓다
>> 설계부터 건축, 완공에 이르는 모든 작업에 남편이 직접 참여해 완성시킨 드림 하우스.
한병호 작가의 작업실에서 흙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새하얀 2층집은 이곳 현리에 둥지를 튼 일러스트레이터 하현이, 강미선 부부의 보금자리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릴 만큼 파란 잔디며 잘 가꾸어진 정원, 테라스의 흔들 그네가 전원생활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집은 설계부터 남편 하현이 작가의 꼼꼼한 손길 아래 탄생됐다. 아래층에는 응접실과 부엌, 손님방과 아이방이 위층에는 작업실과 부부 침실이 위치하는 집 안의 내부 역시 최소한의 가구와 미니멀한 인테리어로 새하얀 캔버스처럼 깨끗하게 펼쳐진다.
>> 햇볕이 잘 드는 거실 풍경. 최소한의 가구 배치와 나무 소재의 데커레이션은 심플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연출한다.
처음 이들이 현리에 온 것은 5년 전, 한병호 작가의 권유로 내려오게 되었다. 부부 모두 개인적인 작업이 대부분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라 생활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지만 젊은 부부가 서울을 떠나기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들은 현리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최근 이웃에 살던 또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조금은 심심해진 것 외엔 별다른 불만도 불평도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부 모두 외출을 즐겨 하지 않고 집 안에 있길 좋아해 오히려 이 고요함을 즐기는 편이라고. 아내 강미선 역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가 아닌, 개인적인 작업을 하고 있기에 꼭 도시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 2층에 위치한 부부의 작업실.
“이곳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땐, 진짜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의 산이며 하늘, 자연 모두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이제 곧 학교에 가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공부야 자기가 소질이 있으면 어디서든 잘하겠죠.”
여느 엄마들처럼 그 역시 자식에 대한 욕심이 적지는 않을 터. 하지만 부부는 자신들까지 경쟁이 살벌한 사교육 현장에 발을 디딜 마음은 없다고 했다. 현리에도 초등학교가 있을뿐더러 최근에는 수영장과 같은 체육관 시설과 어린이 도서관 등 유용한 부대시설이 많이 건립되고 있어 오히려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밝고, 씩씩하게’라는 부부의 소박한 바람대로 7살 현빈이는 집게를 들고 다니며 떨어진 밤송이에서 능숙하게 알밤을 빼내고 멀리까지 공을 차다가 강아지에게 관심을 돌리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에 빠져든다.
>> 나뭇가지나 솔방울 등 주변의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 하현이 작가가 만든 다양한 캐릭터.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드림 하우스’를 꿈꾸기 마련. 더욱이 내 손으로 설계부터 공사, 마무리, 완성까지 모두 거쳐 머릿속에 늘 그리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에 이들에게 집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남편의 드림 하우스에 기꺼이 함께해 준 아내와 부엌이 너무 좁아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곧 확장 계획을 실현할 남편, 다른 또래보다 나무며 꽃, 흙과 친한 7살 현빈이가 사는 이곳이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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