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농촌 희망찿기/농촌 마을발전 자료

[스크랩] 마을 만들기 제언

하늘내린터 원장 2009. 6. 20. 14:16

장세훈│서울신문 기자

지난 1년여 동안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마을들을 다녀봤다.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는 농촌을 되살리겠다는 주민들의 의지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지만,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나 절실한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흙 속 진주’에 가깝다. 우리 농촌이 갖고 있는 무수한 장점들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방문객은 접근성이 떨어져 ‘못’ 가는 게 아니라, 보고 즐길 게 없어 ‘안’ 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농촌 현장에서 느낀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짚어봤다.

 

‘거지 근성’을 버리라
“정부에서 언제 얼마나 지원해준다고 합니까?”
“정부에서 돈이 내려와야 뭘 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부가 지원하는 개발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주민들은 물론, 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자주 꺼내는 ‘단골 표현’이다. 이는 대부분의 농촌이 정부 지원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원인을 찾다 보면 그만큼 부족한 게 많은 탓도 있지만, 농촌 지원에 한없이 관대했던 중앙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같은 ‘원인 찾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역 개발을 중앙정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른바 ‘거지 근성’을 버려야 할 때다.
개발은 지역자원에 대한 ‘재발견’에서 시작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자원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지역자원은 가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소득이 없으면 재투자 재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 개발 계획은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 있고, 주민들은 행정기관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용 가능한 지역자원(하드웨어)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농민의 말이 떠오른다. “정부보조금 받아서 농사지은 사람 상당수는 망했다. 오히려 융자 받아가며 자기 돈으로 농사지은 사람이 성공했다. 쉽게 하려고 하면 얻는 것도 적다. 힘들어도 자기 힘으로 직접 해야 효과가 크다.”

 

재투자 위한 공동생산기반시설 갖추라
지역 발전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게 아니다. 상황 변화에 따라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재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 여부가 중요하다. 의지만 있고, 이를 뒷받침할 재원이 없다면 주민들의 느끼는 상실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주민들이 갹출하는 데도 한계는 있다.
재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공동생산기반시설을 갖추는 것이다. 공동생산기반시설 운영으로 얻은 수익금 일부를 기금 등으로 적립한 뒤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된다. 소득이 골고루 분산되는 만큼 지역 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다시 공동체의식을 복원하는 데도 톡톡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역 발전의 선순환 구조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독불장군’이 설 땅은 없다. 배타성을 버리라
뛰어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휘자 없이 연주자 개개인의 능력에만 맡기면 자칫 불협화음을 낼 수 있다. 반대로 훌륭한 지휘자가 있어도 이를 뒷받침할 연주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에 가깝다. 여기에 관객의 호응과 관심은 완성도 높은 연주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지역개발사업에서도 상생보다는 갈등이 번지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주민들은 행정기관이나 외부단체와의 협력을 우려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행정기관과 외부단체는 주민들의 우려를 ‘고집불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 발전도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마을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하다. 주민 스스로 지역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거쳐 체계적인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행정기관 지원으로 결실을 맺는 ‘3박자’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의 룰’을 만들라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수확은 고사하고, 논밭을 갈아엎었다는 상처받은 ‘농심(農心)’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제는 농촌도 소득원을 다양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려고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주식시장에서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장밋빛 청사진’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 때문에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갈 수 있는 ‘게임의 룰’이 필요하다. 지역발전이라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게임의 룰’부터 정해야 한다.
예컨대 개발 이익이 특정인에게 집중되거나, 개발을 빌미로 환경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마을 자치규약’을 꼼꼼하게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마을에서 필요로 하거나 시급한 사업들의 우선순위를 정한 ‘단계별 마을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개발 이익, 나눠야 커진다
개발의 우선순위를 외지인의 대규모 투자에 두고 있는 현실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대규모 투자는 고용창출 등에 일부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주민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는 오히려 역기능을 가져올 수 있다. 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할 소득기반이 특정인에게 몰리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방문객 유치를 위한 투자비용이 늘어나면 그만큼 비용 회수 부담이 커지고, 재정력을 갖춘 소수에게 수익의 대부분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이 골고루 잘 사는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비용 부담을 최소화시키거나 분산시켜야 더 많은 주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저비용 고효율’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해외 선진 마을 대부분은 외부 투자가들에게는 다소 배타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대형 시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문객 유치 전략,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사시사철 고르게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방문객이 마을을 찾기를 기대하는 것은 ‘꿈’에 가깝다. 농촌은 관광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특화된 계층의 차별화된 수요에 맞출 필요가 있다. 관광버스로 상징되는 단체관광객은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주민들에게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잠재적인 방문객의 범위를 좁혀야 마을 개발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나갈 수 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한곳에 며칠씩 머무를 수 있도록 전통문화, 고유 음식,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포장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농촌, 산촌, 어촌에서는 소득 증대를 위해 ‘방문객 끌어 모으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 방문객 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한 실정이다. 수요가 공급 능력을 초과하면 방문객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느냐는 양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주민들과 방문객이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느냐는 질 중심의 사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눈을 즐겁게 하라
양은냄비에 담긴 구수한 설렁탕은 상상하기 힘들다. 외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공공디자인은 바로 음식의 맛을 배가시키는 그릇과 같다.
개발은 곧 환경 훼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자연자원 등 환경보전을 위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자연 속 농촌의 모습은 대부분 ‘흉물’과 다름없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은 초가지붕을 벗고 슬레이트를 얹었다. 흙과 돌을 버무려 쌓아올렸던 담장은 블록 담장으로 대체됐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농촌 황폐화의 주범은 슬레이트 지붕과 블록 담장으로 대표되는 시멘트다. 집들이를 준비하는 신혼부부의 마음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한 주거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

 

눈속임은 죄악, 소비자를 감동시키라
딸기는 할인매장이나 슈퍼에서 ‘구입목록 1순위’ 중 하나다. 워낙 좋아하는 과일이기 때문에 먹음직스럽게 포장된 모습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사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포장을 뜯은 뒤 불량 딸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다시는 사나 봐라’ 하는 후회를 느끼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이처럼 지역특산물이나 농수산물 등을 포장할 때 박스 위에는 품질이 좋은 상품을 올리고, 아래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넣는, 이른바 ‘속박이’를 경험하지 않은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눈속임은 농민들에게 단기적으로는 소득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상처받은 소비자가 같은 상품을 다시 구입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신뢰 저하, 소득 하락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매장에서 구입한 상품이 아니라 직거래 과정에서 속박이 같은 경험을 한다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욱 클 수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기 위한 정직한 자세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 : 백년후에도 살기좋은 마을 - 정뱅이 마을
글쓴이 : 정뱅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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